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불안해 하는가

영적 갈증과 우울감 속에서 부르는 희망의 후렴구

by Joseph H Kim

우리의 시편 여정이 어느덧 제2권의 문을 여는 시편 42편에 이르렀습니다. 어제 묵상했던 41편이 배신의 아픔을 노래했다면, 오늘 시편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는 한 영혼의 가장 깊은 갈증과 영혼의 독백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혹시 극심한 갈증을 느껴본 적 있으십니까? 타는 듯한 더위 속에서 물 한 모금 없이 오랜 시간을 보냈을 때, 우리의 온몸과 생각은 오직 ‘물’이라는 한 가지에만 집중됩니다. 세상 그 어떤 진수성찬도, 명예도, 재물도 그 시원한 물 한 잔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영혼에도 이런 갈증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시편 42편은 바로 그 ‘영혼의 갈증’을 노래하는 시입니다. 시인은 아마도 포로로 잡혀갔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북쪽 헤르몬 산 근처에 있습니다. 그는 과거에 하나님과 함께 예배하며 누렸던 그 친밀한 교제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현재는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조롱하는 사람들의 소리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시는 하나님과의 단절감, 즉 영적 우울감 속에서 신음하는 한 영혼이, 어떻게 자기 자신과 대화하며 억지로라도 희망을 붙들려고 몸부림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솔직하고도 위대한 신앙의 자기 대화법입니다.


시편 42편 (현대인의 성경)

1 하나님이시여,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 내 영혼이 주를 찾아 헤맵니다.

2 내 영혼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니 내가 언제나 나아가 하나님의 얼굴을 뵐 수 있겠습니까?

3 사람들이 온종일 나를 보고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조롱하므로 내가 밤낮 눈물로 음식을 삼고 있습니다.

4 내가 전에 기쁨으로 찬송하며 성일을 지키는 무리를 거느리고 하나님의 집으로 갔던 일을 생각하면 내 마음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째서 그렇게 낙심하며 불안해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신뢰하여라. 나는 내 구원의 하나님을 다시 찬양할 것이다.

6 내가 슬픔에 깊이 빠졌으므로 요단 땅과 헤르몬산과 미살산에서 주를 기억합니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덮었습니다.

8 그러나 낮에는 여호와께서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노래가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살아 계시는 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9 내가 나의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께 “어째서 나를 잊으셨습니까? 어째서 내가 원수들의 압제를 받으며 슬퍼해야 합니까?” 하고 말하겠습니다.

10 내 원수들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며 온종일 나를 조롱하니 내 뼈가 쑤시는 것 같습니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째서 그렇게 낙심하며 불안해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신뢰하여라. 나는 내 구원의 하나님을 다시 찬양할 것이다.


시편 42편은 어떤 시입니까?


시편 42편은 시편 전체의 제2권을 여는 첫 시편으로, 성전 예배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극심한 영적 갈증과 슬픔을 노래하는 ‘개인의 탄식시’입니다. ‘고라 자손의 마스길(교훈시)’이라는 표제어가 붙어있으며, 이 시를 쓴 이는 성전에서 봉사하던 레위인으로 추정됩니다.


이 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5절과 11절, 그리고 바로 뒤 시편 43편 5절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후렴구’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원래 시편 42편과 43편이 이 후렴구로 연결된 하나의 시였을 것으로 봅니다. 이 후렴구는 시인이 자신의 낙심한 영혼을 향해 스스로 말을 걸고 격려하는 독특한 형식을 보여줍니다.


말씀 속으로


1. 영혼의 갈증, 눈물의 양식 (1-4절)

시는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כְּאַיָּל תַּעֲרֹג, 케아요 타아로그)”라는 강렬한 이미지로 시작합니다. 이는 평화로운 갈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입니다. 시인의 영혼은 바로 그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갈망합니다.


그의 고통을 더욱 깊게 만드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입니다. 그는 과거에 기쁨으로 예배의 행렬을 인도하며 하나님의 집으로 나아갔던 일을 회상하며 마음의 고통을 느낍니다. 둘째는 현재의 조롱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그의 신앙의 근간을 흔드는 가장 아픈 비수입니다. 결국 그는 밤낮으로 ‘눈물’을 양식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2. 영혼을 향한 자기 대화법 (5절, 11절)

이 깊은 절망 속에서 시인은 놀라운 행동을 합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함몰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서 자기 자신에게, 즉 ‘내 영혼’에게 말을 겁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째서 그렇게 낙심하며 불안해하느냐?” 그는 먼저 자신의 감정(낙심, 불안)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공감해 줍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처방을 내립니다. “너는 하나님을 신뢰하여라(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감정에 지배당하지 말고, 너의 시선을 감정의 원인이 되는 ‘상황’에서 모든 것의 해결책이 되시는 ‘하나님’께로 돌리라는 명령입니다.


그리고 그는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나는 내 구원의 하나님을 다시 찬양할 것이다.” 아직 찬양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장차 반드시 다시 찬양하게 될 것임을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3. 고통의 심상(心象), 희망의 노래 (6-10절)

시인이 처한 북쪽 지방의 지리적 환경은 그의 내면 풍경과 그대로 겹쳐집니다. 요단강의 거대한 폭포 소리와 깊은 바다는, 마치 자신을 덮치는 하나님의 파도와 물결처럼 느껴집니다(7절). 그는 압도적인 고통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고통의 한복판에서도 그는 믿음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한결같은 사랑(חֶסֶד, 헤세드)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노래가 나와 함께 있으니…” 그는 여전히 자신을 잊으신 것 같은 하나님을 향해 “나의 반석이여,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면서도, 밤에는 그분을 향한 노래를 멈추지 않습니다.


삶의 자리에서


시편 42편은 하나님이 멀게만 느껴지는 영적 침체기를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실제적인 위로와 지침을 줍니다.


첫째, 영적 갈증은 자연스러운 신앙의 과정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느껴지지 않는 무감각함이 더 큰 문제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깊은 갈증을 느낀다는 것은, 당신의 영혼이 여전히 살아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갈증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사슴처럼 필사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하십시오.


둘째,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믿음으로 답하십시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세상은(때로는 내 안의 의심이) 이 질문을 던집니다. “네가 믿는 하나님이 있다면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시편 42편은 이 질문에 대해 논리적인 신학 답변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분을 다시 찬양할 것이다”라는 믿음의 결단으로 답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응답은 변명이 아니라, 신뢰의 선포여야 합니다.


셋째, 당신의 영혼에게 진리를 설교하십시오. 이것이 시편 42편의 가장 위대한 교훈입니다. 우리의 감정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합니다. “너는 혼자야”, “이제 끝났어”, “하나님은 너를 버리셨어.” 이 감정의 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시인처럼 당신의 영혼에게 말을 거십시오.


“내 영혼아, 왜 이렇게 불안해하니? 하지만 들어봐. 하나님은 여전히 너의 구원이시고, 너는 그분을 다시 찬양하게 될 거야.”


이 ‘영혼을 향한 자기 설교’를 훈련할 때, 우리는 감정의 파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목마른 사슴처럼 제 영혼이 주님을 갈망합니다. 주님을 만날 수 없어 답답하고, 세상은 제게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제 영혼이 낙심하고 불안하여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시간, 제 감정이 아닌 주님의 신실하심에 제 소망을 두기로 결단합니다.

주님은 여전히 저의 구원이시요 저의 하나님이시오니, 제가 주님을 다시 소리 높여 찬양할 그 날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낮에는 주의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고, 이 고통의 밤에도 제 입술에 찬양의 노래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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