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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덫에 걸리다.

항상 나를 지켜준다던 진돗개 같은 남자가, 들개처럼 으르렁거렸다.

by 김하루


덫에 걸린 것 같다.


정신없이 결혼식을 마치고 우리는 작은 아파트에 신혼집을 차렸다.

비록 집은 작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독립된 나로서 평범하고 따뜻한 가정을 만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서툴지만 살림에 정성을 쏟았다. 향긋한 빨래 냄새로 집안을 채우고, 아직은 낯설었지만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으로 저녁상을 차리며 미소 짓는 얼굴로 그를 기다렸다.


현관 비밀번호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자, 드라마 속 아내들처럼 현관으로 마중 나가 그의 겉옷을 받아 들고 어깨를 툭툭 털어주었다.


“배고프지? 밥 차려놨어.”


그는 아무 말 없이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마쳤다. 그리고 안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더니 외출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 술 약속 있어.”


순간 귀를 의심했다.

분명 내가 ‘저녁 차려놓을게’라고 문자를 보냈을 때, 그는 짧게 ‘알았어’라고 답했었다. 그런데 지금, 차려놓은 식탁을 스치듯 지나쳐 신발을 신고 나가버렸다.


나는 얼이 빠져 토끼눈으로 현관을 바라보다가, 결국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밤 12시가 넘어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식탁 위 음식들은 식어 굳어갔고, 나는 접시를 치우면서 ‘내가 뭘 잘못한 걸까’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에서 수십 가지 이유를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그래. 다시 일을 해야 되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터넷 창을 켜고 밤늦게까지 일자리를 찾아 헤맸다.






다음 날, 마음에 드는 일자리에 이력서를 냈고 곧 면접 일정이 잡혔다.

‘아직 난 살아 있어.’라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풀려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정장 투피스와 블라우스를 꺼내 반듯하게 다림질한 뒤, 설레는 마음으로 옷장 앞에 걸어두었다.


주말 아침, 그는 늦잠을 자고 일어나 부엌에서 물을 마시더니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야, 이 옷 뭐야? 너 어디 가?”


불쑥 튀어나온 ‘야’라는 호칭이 마음을 찌르는 듯했지만, 나는 애써 밝게 대답했다.


''내일 면접 보러 가려고. 집에서 30분 거리야. 왠지 잘 될 것 같아. 나도 빨리 돈 벌어서 같이 행복하게 살자''


그 순간, 그는 내 앞에 다가와 옷장 앞에 걸어둔 블라우스를 들고, 옷깃을 양손으로 거칠게 움켜쥐더니 쫘악하고 찢어버렸다.

순간 공중으로 단추들이 반짝이며 흩어졌다.


내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놀라 뒷걸음질 치는 나를 향해 그는 눈을 부릅뜨며 고함쳤다.


“여자가 어디 집 밖으로 나가! 얌전히 살림이나 제대로 해!”


내 귀는 멍멍해지고, 눈은 토끼눈처럼 커지며 입은 벌어진 채 다물어지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하얘졌다.


항상 나를 지켜준다던 진돗개 같은 남자가, 들개처럼 으르렁거렸다.


나는 도망치듯 방으로 달려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스스로를 설득하듯 중얼거렸다.


‘저 사람이 피곤해서 그런 거야. 그냥 기분이 안 좋았나 봐’


그러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 세상을 잘 몰랐던,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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