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본능 그 즈음에
욕망의 신발, 익숙함의 착시
십만 원이라는 선을 그었다.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백화점의 신발 매장은 온통 유혹으로 가득했다. 반짝이는 가죽, 부드러운 스웨이드, 세련된 디자인.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예쁜 신발들은 하나같이 내 예산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욕망의 속삭임은 끈질겼지만, 나는 애써 시선을 돌렸다.
결국 한 시간여의 실랑이 끝에, 예산 안에서 겨우 마음에 드는 신발을 골랐다. 발에 신어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예전에 신던 낡고 초라한 운동화가 문득 눈에 들어온다. '한때 내게 최고의 편안함을 주던 신발이었는데.' 몇 달 전까지는 세상에 둘도 없는 녀석이었지만, 지금 새 신발 앞에서 그 자리는 빠르게 퇴색되고
멀어져 간다.
새 신발은 가볍고, 발을 부드럽게 감싸며, 걷는 내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듯한 기분을 안겨준다.
이 순간, 깨닫는다. 아, 내가 원했던 것이 바로 이거였구나. 이 새로운 감각, 이 상쾌한 기분. 익숙함에 가려져 있던 설렘이 다시 터져 나온다.
인간의 마음이란 이토록 간사하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안주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것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것을 향해 돌진하고 싶어 한다. 어제는 만족했던 것이 오늘은 구식이 되고, 어제는 최고였던 것이
오늘은 눈에 차지도 않는. 이것이 욕망과 본능이 교차하는 지점의 민낯일 것이다.
분명하다. 또 몇 달이 지나면, 나는 다시 새로운 신발을 고르고 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새로운 신발이 주는 한순간의 만족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음을 알면서도, 나의 발은 또 다른 설렘을 찾아 매장 문을 두드릴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다음 신발을 꿈꾼다. 그것이 바로 '나'라는 존재의 끊임없는 욕망이자 본능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