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시작한 유아점토놀이 강사로 25년 동안 매일 수업 보따리를 싸며 나의 수업을 기다리는 열정팬이 있는 어린이집, 유치원으로 수업을 다니고 있다.
오늘도 여전히 수업 시간에 6세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너무 재미있지? 나는 쪼물딱이 제일
좋아!" 하면서 모둠별로 회의가 열린다.
수업이 끝나고 다른 교실로 이동해야 하는데도 남자 친구 한 명이 가지 말라고 문을 꼭 닫고 문 앞을 지키고 있다. 감동의 순간이지만 다음 수업시간이 급해서 여유를 부릴 틈 없이 점토 가지고 다시 수업 오려면 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을 하고 다른 교실로 이동을 한다.
점토놀이 강사로 다수의 교재를 발행하며 인터넷이 없던 시절 작품 사진과 점토 설명이 들어간 교재를 비싼 가격이었지만 홈페이지와 남대문 재료상을 통해 1000권이 완판 되었다. 그 후 추가로인쇄를또했으며대학교 강의를 가기 위해 그때 당시 강의용 전문교재가 없는 것이 아쉬워서 "유아 점토놀이 활동집" 교재를 또 발행했고 그 이후 유아교육과 특강 교재로 사용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은 그때 출판했던 교재들이 재고가 되어 좁은 사무실 한편에 박스에 담겨 쌓여 있다.
그동안 사무실 이사를 다니면서도 작품은 버리거나 기증할 수 있었는데 책은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올해 4월 양천 50플러스 센터에서 "내 인생 트롯 만들기" 강의를 들으며 강사였던 나 자신도 새로운 나의 재능을 발견했고 함께 교육받는 동기생 분들의 열정에 감동받고 내가 그동안 계획했던 "경력단절녀 1년 만에 전문강사되기"에서 " 인생 2막 행복한 점토놀이 강사되기"로 방향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
트롯 만들기부터 시작한 강좌 듣기는 그동안 가르치기만 했던 나에게 배움의 도전을 주었다.
금요일 강사역량강사 수업으로 스피치 강의도 들었고, 여러 야간 강좌도 들으면서 교육생의 기분은 어떨지에 대해 알아보고 나도 배움도 얻고 옛말대로 "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라!"
는 뜻으로 바쁜 스케줄 중에도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그러던 중 양천 50플러스 두드림 강사 하반기 모집 공고가 떴다. 물론, 각종 서류와 강의계획서, 자기소개와 절차가 다른 곳의 강좌에 비해 상세히 기재하게 되어 있었다.
도전을 해볼까? 하기에는 공고 맨 밑 하단에 나와있는 규정 "강사료는 회차당 5만 원"이라는 말이 잠시 나를 고민하게 하였다.
강사료로 책정된 금액에 대한 욕심보다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강사료 규정이 너무 낮아서 기분이 불편했고 또한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했다.
하지만, 뭔가 나도 이런 열정 있는 교육생들과 소통하며 교육한다면 어떨까? 남은 나의 인생에서 그동안 해오던 유아점토 강사일을 보따리 들고 수업을 다니기에는 하루하루 체력이 소진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앞으로 또 다른 의미 있는 일을 계획하며 나의 재능과 에너지를 분산 투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젠 50이 되어보니 남은 삶은 지혜롭게 소통하면서 함께 행복하며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고, 소외되어 있는 많은 아이들에게 점토놀이의 경험을 느끼게 하고 아이들이 더욱 밝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보탬이 되는재능 나눔 봉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며 두드림 강사 모집 원서를 작성했다.
어버이날이라 시댁인 안동에 가서 아침 상을 차리는데 안동뉴스에 "이야기 할머니"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었다. 뉴스를 대충 보았기에 서울에서 오래전부터 어린이집 유치원에 이야기 할머니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안동은 이제 하나보다 라고 생각하고 역시 지방이라 늦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서울에 와서 두드림강사 모집 지원서를 계획하는데 내가 어떤 방향으로 50플러스 분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해야 할지에 대한고민을 하다가 갑자기 안동에서 봤던 뉴스가 생각이 나서 이야기 할머니 사업을 검색했다.
깜짝 놀랐다. 글쎄 이야기 할머니 사업이 안동에서부터 시작이 되었고 2009년에 경북에서 30명으로 시작하였으며 한국 국학 진흥원에서 운영하며 문화체육부에서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30명에서 시작한 이야기 할머니 사업은 현재 3000명이 넘으며 이야기 할머니가 되기 위해 지역별로 평균 경쟁률이 많게는 50대 1이 넘는 곳도 있다고 했다.그렇게 그 사업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나에게 번뜩이는 생각이 났다.
무르팍 교육인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이 있다면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점토놀이 수업을 할머니가 아닌 중장년층 어른들이 행복한 점토놀이 강사로 봉사도 하고 일자리를 창출해 가는 형태로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퍼즐이 맞춰지고 있는 듯했다. 내가 시작한 트롯 만들기 수업으로 50플러스 센터를 알게 되었고 다른 강좌들도 들어가며 그분들의 열정적인 수업태도와 서로 소통하고 수업이 끝나고 난 후 커뮤니티도 활성화할 수 있었다.
서울시는 각구별로 있는 50플러스 센터를 활용하여 강의를 한다면 인생이막을 앞둔 신중년층에게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주고 점점 줄어드는 어린이집, 유치원의 아이들도 감소하고 있어강사 파견이나 양질의 교육을 부담 없이 경험하게 할 수 있는 교육이 된다면 자라나는 유아들에게 재미있게 기억할 수 있는 놀이 수업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사 지원서에 이 강좌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은 있었으며 지난 시간 동안 가정을 꾸리면서 열심히 살아온 50플러스 교육생들에게 나의 어릴 적 기억을 되살리고 엄마로 아빠로 열심히 살아온 것을 경력으로 삼아 앞으로 남은 노년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점토놀이 할머니, 할아버지 강사가 되어 오랫동안 나의 새로운 직업에 기회를 마련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행복한 시간을 준비시켜 주고 싶다고 썼다.
그리고 나의 재능과 경험, 교육 노하우를 많은 교육생들에게 새로운 자기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하고 추후전문 직업인이 되는 길을 알려주는 멘토가 되기 위해 지원했다고 했다.
1차 서류 심사에서는 합격을 했다는 통보를 받았고 최종 면접을 보는 날은 수업을 가는 날이라 시간 조정을 하고 가장 마지막 시간대에 면접을 봤다.
5분 시연과 5분 질의응답의 시간을 합쳐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0분이었다.
이런 긴장감은 오랜만에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10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그 시간 안에나의 열정과 나의 목표를 모두 보여 드릴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확실하게 나의 교육목표를 전달했다. 취미로 가르치지 않고 전문가를 육성하며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방법을 계획하고 노력하겠다고 했다.
나의 열정을 확인했다는 말씀을 해주신 심사관님들의 대답 후에 며칠 후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내려놓고 시작하는 50대에 내가 욕심을 낸다고 모두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혼자 한다고 나만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20대 때부터열정만으로 정신없이 달려온 지금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20대에서 40대까지는 눈앞에 보이는 일에만 집중하며 쌓아온 나의 많은 경험한 자료들이 이젠 필요한 사람들에게 소중한 자료로 쓰일 때가 되었다.
50대에 시작하는 일은 내 몸이 지치지 않고 마음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며 살아가야 한다는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10월 가을 학기에 시작하는 4회 차 두드림 강의가 벌써부터 설렌다.
어떤 분들을 만나고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도 기대가 되며 또 나는 이 강좌를 통해 무엇을 배우게 될까? 하는 생각도 미리 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오솔길을 만들고 그동안 열심히 달려온 나의 25년만큼 남은 점토강사로서의 25년 인생의 목적지를 위해 종착지가 없는 새 돛을 달고 출렁이는 바다에 배를 띄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