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괜찮아

by 서광


2024년 8월

일본에서 귀국 후 일본어 강사, 무역 회사, 관광 공사, 면세점 매니저, 쉼 없이 달려오던 직장 생활의 마침표를 드디어 찍었다. 마지막 직장이었던 면세점을 희망퇴직을 하고, 수고한 나에게 주는 보상 휴가로 퇴직금으로 엄마와 부르나이 공화국을 다녀왔다. 실업 급여를 받으면서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도보 7분 정도의 도봉 여성 센터를 놀이터 삼아 여러 가지 교육을 듣게 되었다. 우연이었을까. 아님 운명이었을까.

24년 9월 23일 '셀러 양성 교육'을 듣게 되었다. 6회만 진행하는 교육이었다. 수공예를(뜨개, 가죽, 디저트, 목공예, 도자기, 아크릴 키링) 하는 취미로 하는 엄마들이 모여서 협동조합을 만들어 정부 지원 사업을 받아서 소소하게 플리마켓을 운영하며 수익을 창출한다는 교육이었다.

경력 단절 여성에게 기회를 주고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서 성취감을 높일 수 있다고 열띤 강의를 했다. 협동조합 운영으로 '혼자'가 아닌 '우리 '로 성장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지막 날 교육 수료 후, 둥글게 둘러앉아 자기소개와 1년 목표를 발표하고 서로 협업하고 싶은 셀러가 있으면 명함을 주고받았다.

난 이제는 직장 생활은 취업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되어 창업을 해야 하나 생각하던 참이어서 어색하지만 나와 맞을 법한 셀러분과 명함을 주고받긴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연락을 하지는 못했다. 한 달쯤 지나, 쇼핑 중독에 빠져 우연히 구매한 알록달록한 헤어 제품과 컬러풀한 양말을 사용해 보니 만족도가 높아 여기저기 선물을 했다. 선물 받은 사람들의 추가 주문이 늘어나면서 앗! 판매해 볼까? 생각이 들었다.

10월에는 지역 축제, 플리마켓 행사가 많아 접이식 매대를 사서 지역 행사에 참여했다.

어린이집 체육대회가 열리는 '초안산 생태 근린공원'이 나의 첫 번째 플리마켓이었다.

10시~15시까지 3~7세 어린이가 주 고객이었다. 매대에 어린이 헤어제품과 형형색색의 양말들이 꼬마 손님들 맞이로 분주하게 디피 되어 있었다. 100원~3,000원으로 수익을 내볼 생각이었다. 면세점에서 몇백만 원짜리 제품을 장갑 끼고 설명하던 내가 꼬마 손님을 대상으로 판매를 하다니 내 모습이 너무 웃겼지만, 아이들의 순수함에 활기찼던 첫 경험이었다.

“아아 이거 너무 예뻐요”

“이거 얼마예요?”

“이거는 500원. 저건 2천 원, 거울도 있으니까 머리에 착용해 봐요”

“00야, 이거 진짜 이쁘지? 00야 이거 나한테 어울려?”

“ 두 개 다 사고 싶어요. 근데 돈이 좀 모자라요. 어떡하지?”

“그럼 있는 돈만 내요. 이모가 줄게요. 친구랑 또 놀러 와.”

“와아 너무 감사합니다.”(꾸벅)

이렇게 꼬마 손님들도 우리 매대만 북적북적했다. 첫 플리마켓에서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들어냈다. 꼬마 손님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와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꼬마 친구들이 각자의 친구들과 엄마들을 데리고 오는 기적이 일어났다.

5시간 동안 30만 원 이상 판매 된 것이다. 면세점에서 몇백만 원짜리 판매를 해도 그건 내 것이 아니었지만, 오늘 판매된 건 (100개 판매) 내가 사장이니 순수익이 80% 이상 되었다. 객 단가가 낮아 가볍게 생각했던 첫 플리마켓은 성공적이었다.

1인 기업으로 수익 창출을 해보기로 결정하고 본격적으로 교육을 듣기 시작했다.

소상공인 리더스 아카데미, 작은 창업을 위한 기획 과정, 디자인 플랫폼을 활용한 홍보 실무, 생성형 AI를 활용한 사업 소개서 제작, 정부 지원 사업 필승 바이블, 소상공인 세무 관련 교육, 창업을 위한 바리스타 등 1인 기업에 도움이 될만한 교육을 플리마켓과 같이 병행하며 듣고 마켓에 필요한 포스트, 명함을 만들며 적극적인 경제 활동을 했다.

처음 셀러 양성 교육을 들은 지 1년이 지났다. 얼마 전 여성센터에서 같이 수업 들었던 셀러 분을 우연히 만났다. 수공예를 만들어 1년 동안 소극적인 마켓을 진행했다고 한다. 수공예로 만들다 보니 가격 경쟁에 맞지 않아 수익이 없어 너무 힘들다고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수업 이후에 협동조합에서 진행하는 마켓만 나가고 다른 마켓은 어떻게 알아보는지 몰랐다고 한다. 내 사업인데 경쟁사 제품, 제품 트렌드, 마켓 정보조차 검색하지 않았다는 게 놀라웠지만, 자기만의 답안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긍정적인 위로를 전했다.

내가 처음 플리 마켓을 한다고 했을 때 가족은 물론 주위 사람 누구 하나 응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보따리를 이고 지고 날씨에 영향을 받으며 다니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평생 남들을 의식하며 살아온 부모님 이 시니, 엄마는 울기까지 하셨다고 한다. LG도 치약, 비누로 시작했으니, 시간이 지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소상공인에서 중견기업까지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집중과 열정을 다해 보고 있는 중이다. 이 또한 경험을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 않는가.

25년 한 해 동안 더위와 추위에서 플리마켓을 같이 동행해 준 나와 남편에서 보상휴가로 제주도에서 핫하게 크리스마스도 보냈다. “집중”과 “쉼”의 적절한 균형을 맞춰 가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쉼”으로 또다시 열정을 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26년 1월 7일부터 3월 30일까지(주 1회 수요일) 여성센터 1층에서 창업 매대를 운영하고 있다) 올 한 해는 붉은말의 해이니 만큼 힘찬 도약으로 알차고 야무지게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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