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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고른 실? 강아지 니트 제작

한풀이 강아지니트 : 완벽한 성산이 니트 만들기

by 최지현

집에 남는 실이 생겼다. 그 실은 엄마가 실 쇼핑몰에서 직접 고른 것이었다. 실을 살 때까지만 해도 엄마의 숄이나 목도리를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엄마 취향이 나와 다름을 알게 되었고 엄마에게 뜨개 선물을 하지 않게 되면서 그 실은 애물단지가 되었다. 내 옷을 뜨자니 색 자체가 내 취향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주자니 마음이 선뜻 가지 않는 그런 실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오래도록 해보고 싶었던 작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미래 나의 공방에는 반려동물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꼭 있었으면 한다. 그중 하나가 반려견 니트 제작 수업이다. 수업을 위해서는 여러 샘플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실로 강아지니트를 떠보기로 했다. 또한 성산이가 실 색이 잘 어울리는 색이라 더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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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바늘 옷(왼쪽) , 대바늘 옷(오른쪽)


성산이가 기성복을 입으면 '허리가 길어 슬픈 강아지'라는 말이 생각난다. 기성복 등길이가 성산이 몸에 비해 너무 짧다. 직접 만든 니트도 두 가지나 있지만 등길이와 팔길이를 너무 짧게 만들었다. 이 두 니트의 아쉬움이 자꾸 눈에 밟혔던 터라 새로운 니트 만들기는 여러모로 더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 완벽한 성산이 옷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치수를 재고 공부하면서 성산이 니트를 뜨기 시작했다. 견종에 비해서는 작은 편이라 금방 완성할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공부하면서 뜨다 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렸다. 제대로 떠야 한다는 압박감에 평소 뜨는 작품들보다는 재미가 떨어졌다. 그래서 예상과 달리 느리게 진행되었다.


너무 크게 만들어진 옷
계산은 틀리지 않았는데 옷 모양이 왜 그러지?

정확히 계산하고 작업했는데 자꾸 모양이 이상했다. 하지만 맞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중간점검 없이 몸판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자고 있는 성산이에게 직접 입혀봤다.


아뿔싸! 커도 너무 크다.

확인해 보니 코 늘림이 필요 없는 구간에 아주 착실하게 코 늘림을 해버렸다. 이건 입힐 수 없는 옷이었다. 사실 이대로 허리선에 고무줄을 넣어서 변형을 해볼까 싶었지만 어차피 안 되는 거였다. 옷이 발에 걸려 성산이가 걷기 불편해했다.


이 사이즈를 입는 친구를 찾아볼까 몇 시간 정도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친구를 찾아주기에는 너무나도 넉넉한 품 외에는 성산이한테 잘 맞는 사이즈였다. 제대로 맞게 뜨려면 전부 다시 풀러야 했다. 고생해서 거의 다 떴는데 무(無)로 돌리려니 화가 났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남편은 다른 거 뜨고 있으면 자기가 다 정리해 주겠다고 했다.(그는 나의 뜨개 고충처리반이다.) 망쳐버린 니트를 남편한테 맡겨둔 채로 나는 다른 걸 떴다.


몸판 완성! 잘 맞는다.

몇 시간 후 남편에게 니트에서 공이 되어버린 실을 받았다. 그렇게 성산이 니트를 다시 시작했다. 원인을 알았으니 이번에는 자신 있었다. 아마 이 니트를 내가 풀었다면 한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텐데 다른 일을 하면서 기분을 환기하고 나니 힘이 났다.


'더 완벽하게 뜨려고 그런 건데 뭐.'

담백한 그의 말에 짜증 났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다시 코를 잡고 실수했던 부분을 체크하면서 다시 시작했다. 며칠 후 드디어 완성했다! 드디어 반려동물 옷 만들기 수업 샘플이 완성되었다. 만약 수업을 하게 되면 몇 벌을 더 만들면서 계산하는 법, 여러 기법들이 철저하게 숙지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도 제대로 된 성산이 니트를 만들어줬다는 마음과 직접 계산해서 만들었다는 사실에 자신감이 붙었다. 방치해 놓았던 실이 성산이 니트를 만드니 이뻐 보였다. 이 실 덕분에 꿈에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을 추가하게 만들게 된 것이다. 같은 실로도 이렇게 마음가짐이 다를 수 있구나 싶었다.



완성! 활동성 굿! 디자인 굿!


거의 다 완성된 작품을 다 풀러야 했을 때 혼자 그 과정을 거쳤다면 어땠을까? 아마 남편은 '금방 다시 만들었을걸? 성산이 거잖아. '라고 말할 것이다. 나도 기꺼이 만들어 낼 사람이란 건 알지만 잠깐이라도 망쳐버린 성산이 옷을 두고 쉬어간 것이 참 좋은 과정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쉬어감으로써 더 빨리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뜨개를 하면서 쉬어가는 법을 배우고 연습한다.



쉬어가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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