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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 겁쟁이의 꽈배기 도전

베트남 무늬 가디건 : 무늬 뜨기에 도전하다

by 최지현
무늬는 예뻤지만, 늘 겁이 났다. 그래서 나는 가장 단순한 기법으로만 옷을 만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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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 없이 심플한 옷


대바늘에서 겉뜨기와 안뜨기를 단마다 번갈아 되풀이하는 것을 메리야스 뜨기라고 한다. 이 기법만으로도 옷을 만들 수 있다. '니트'라고 하면 다양한 무늬가 들어간 옷을 떠올리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심플한 옷을 더 많이 만든다. 그런 옷들만 고집하게 된 이유는, 차트를 보거나 익숙하지 않은 기법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특히 수정이 어려운 대바늘 특성상 무늬 뜨기는 '언젠가' 하겠다고 미뤄두는 나만의 숙제였다.


사실 나도 화려한 무늬가 들어간 니트를 만들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늘 망설였다. 그러다 뜨개 친구들의 다양한 작품을 보면서 마음에 용기가 조금씩 자라났다. 무늬가 있어도 초보자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책에서 꽈배기 무늬가 심플하게 들어간 가디건을 발견했다. 꽈배기는 예전에 목도리를 만들며 한 번 해봤던 터라, 이번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밝은 곳에 비춰봐야 겨우 코가 보이는 예쁜 색이다
빛에 비춰봐야 겨우 코가 보이는 예쁜 색

도전인 만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진초록색 실을 골랐다. 사실 초보자에게 어두운 색 실은 추천하지 않는다. 코의 모양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색이 너무 마음에 들어 그 점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렇게 무늬 초보자인 내가 진한 초록색 실로 꽈배기 가디건을 뜨기 시작했다. 코를 잡았으니, 이제는 되돌리기엔 아까운 상태.



‘포기는 없다’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긴장한 탓인지 무늬를 틀리지 않고 잘 나갔다.



무늬를 틀리자마자 남편이 가져다준 맥주

그런데 익숙해지고 긴장이 풀리자 속도는 붙고, 실수가 생겼다. 무늬가 살짝 어긋나 삐져나왔다. 대부분의 뜨개인이라면 풀고 다시 떴겠지만, 나는 겁이 나서 그냥 그대로 진행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이었다.

그 후 마음을 다시 가다듬었다. 속도를 내고 싶었지만 그러면 또 실수할까 봐, 집중력이 흐트러질 땐 과감히 쉬어가기로 했다. 평소보다 훨씬 더딘 속도였지만, 덕분에 큰 실수 없이 몸판을 완성했다. 그리고 소매를 뜨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남편이 베트남 여행을 제안했다




망고주스 먹으며 사람 구경 in 베트남

주말부부로 지내던 남편에게 2주간의 휴가가 생겼다. 이전까지 동남아는 내게 안 맞을 것 같아 꺼렸지만, 갑작스러운 여행지로는 더할 나위 없었다.

“꽈배기도 떴는데, 동남아라고 못 가겠어?” 하며 생긴 용기였다.


소매는 겉뜨기만 하면 됐기에 여행 중에도 부담 없이 이어갈 수 있었다. 주말부부를 졸업하고 맞이한 첫 휴식기. 베트남의 선선한 날씨 속에서 맘껏 걷고, 이야기 나누고, 뜨개질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자면, 밥을 먹고 돌아와 숙소에서 커피를 마시며 소매를 뜨던 시간이었다. 평소엔 업무전화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던 남편의 전화기가 조용했고, 내 손에는 자라나는 카디건 소매가 있었다. 정말 꿀 같은 시간이었고, 그 자체로 ‘쉼’이었다.


행복은 가까이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다.


거창한 이벤트보다,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일상을 나누는 그 시간이 더 좋았다. 시원한 그늘 아래 앉아 뜨개질을 하며 쉬는 여유, 사람들을 구경하며 도란도란 나눈 이야기들.

그 평범한 순간들이 오히려 가장 선명하게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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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도 열심히 뜹니다. 사람 구경과 함께


여유로운 여행을 하며 충전을 가득한 후에 한국에 돌아와서야 가디건이 마무리되었다. 완성 후에 무늬가디건은 내 뜨개 작품 중 유일하게 '드라이'를 맡기는 영광을 받게 되었다. (털 빠짐이 심해서 드라이가 필요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늘 부담을 느꼈던 내가, 벽을 하나씩 넘어가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완성된 꽈배기 가디건은 내게 단순한 옷 한 벌이 아니라, 작은 용기와 추억의 결정체가 되었다.




10편의 글로 뜨개 작품 하나하나에 스며든 나만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눌 수 있어 행복했다.

마지막 10편까지 함께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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