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끝 촉각으로 되찾는 감성의 잔뿌리
필사하면 으레 손글씨를 떠올린다.
하얀 백지 위에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쓴 글씨.
펜 끝이 종이를 사각사각 스치며 남기는 미세한 마찰음.
그 장면이 필사의 정석처럼 여겨진다.
요즘 필사가 유행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기억력, 어휘력, 이해력, 집중력 향상이라는 실질적인 이점 때문이다.
박문환 박사는 필사를 "스마트폰이라는 시각적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시대에 가장 효과적인 처방전"이라 말한다.
즉, 시각에 빼앗긴 촉각을 되찾는 '손의 귀환'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맨발은 우리를 가장 원초적인 감각의 세계로 이끈다.
손끝 촉각을 되찾으려는 노력만큼이나 발끝 감각을 되살리는 일 역시 절실하다.
왜냐하면 손은 20년 전에 스마트폰에 빼앗겼을지 몰라도, 발은 수천 년 전부터 신발이라는 문명 속에 갇혀 왔기 때문이다.
처음엔 당연히 손으로 필사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발의 귀환을 부르짖으면서 손으로만 글 쓰는 것이 모순처럼 느껴졌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맨발로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왕 맨발 걷기 하는 김에 그 깨달음을 맨발로 백사장에 써 보는 일도 좋겠다 싶었다.
맨발 걷기에서 가장 큰 수확은 메말랐던 감성을 되찾았다는 데 있다.
흙을 밟고 모래를 느끼며 풀잎을 스칠 때마다,
어린 시절, 이유 없이 설레던 감정의 결이 다시 살아났다.
그래서 감성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책을 선택했다.
바로 '어린 왕자'였다.
이 책은 내게 깊은 감성을 흔들어 놓았던 유일한 도서다.
현실적인 이유도 한몫했다.
너무 두꺼우면 중도 포기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27년 된 책사모 모임에서 토론한 적이 있어 내용은 친숙했다.
그래도 몇십 년 만에 다시 정독했다.
과거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글귀들이 불쑥불쑥 마음을 붙잡았다.
시간이 건넨 선물이었다.
책 전체는 무리였기에 미리 읽고 필사할 문장 10개를 추렸다.
발로 필사하는 내 모습은 어땠을까?
처음엔 상상만으로도 멋쩍었다.
누가 봐도 우스꽝스러워 보일 터였다.
체면을 살펴야 하는 나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강행했다.
남의 시선보다 내 안의 순수한 감각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이 들수록 감성을 잃는다.
쉰 고개를 넘기면 감성의 잔뿌리마저 바스러지듯 말라버리기 쉽다.
이유야 여럿이다.
복잡한 현실과 생계의 무게 속에서 마음은 점점 각박해진다.
딱딱한 콘크리트 위를 걷는 발처럼.
챙길 물건은 단출했다.
돗자리와 캠핑 의자, 영혼을 촉촉이 적셔 줄 '어린 왕자' 한 권.
그리고 펜 대신 맨발.
백사장 위에 발끝으로 문장을 옮겨 적는다.
모래의 미세한 입자가 발바닥 아래서 사박사박 흩어진다.
한 획 한 획 쓱쓱 그어 나가는 동안 나는 온전히 지금 여기에 머물러 있었다.
손글씨와 달리 발은 온몸의 감각을 깨운다.
글자는 기록이 아니라 체험이 되고, 필사는 사유이자 치유가 된다.
어린 왕자는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 문장은 내게 감성의 이정표처럼 다가왔다.
맨발 필사는 메말라버린 감성의 잔뿌리를 발끝의 촉각으로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다.
모래와 발, 문장과 마음이 맞닿는 순간,
잠들어 있던 신경들이 와르르 깨어난다.
잊고 있던 나의 순수한 감각과 연결되는 순간이다.
맨발 필사.
강추한다.
당신의 감성은 머리가 아닌 발끝에서 먼저 살아날지도 모른다.
맨발로 남긴 한 문장은 손으로 쓴 수백 줄보다 오래, 깊게 남는다.
그것이 내가 경험한 맨발 필사의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