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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게 Apr 02. 2022

온 더 로드 On The Road
#세계여행기

10. 지구의 이방인들 - 3




배는 오후 1시가 다 되도록 출발하려는 조짐조차 없다. 연착이 된다는 둥 만다는 둥의 방송도 들리지 않는다(물론 방송이 됐어도 우리가 놓친 걸 수도 있다). 대기실 분위기는 긴장감이라곤 전혀 없어서 조급해하는 우리가 오히려 이상해 보일 지경이다. 


하는 수 없이 다크가 대기실을 돌던 직원에게 가서 상황을 묻고 돌아왔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요. 대충 눈치로 봐선 출항이 지연되는 거 같긴 한데……”


해원 언니와 엘레라는 걱정스럽게 서로를 쳐다봤다. 제시간에 출발할 거라고 기대는 안 했지만, 결국 또 이렇게 되나. 


“됐어. 어차피 제시간에 가긴 글렀고, 두세 시간 기다리는 건 늘 있는 일이잖아. 난 그냥 마음 편히 있을래.”


난 배낭을 의자 다리에 묶은 뒤 뻐근한 어깨를 빙빙 돌렸다. 반쯤 체념한 나머지도 각자의 배낭을 의자에 묶고는 대기실 바닥에 퍼져 버렸다. 


1시가 지나고 2시가 지나고, 무려 4시가 되도록 배는 출발하지 않았다. 이따금 갑자기 사람들이 한 뭉텅이씩 몰렸다가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는데, 대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지루해진 엘레라는 갖고 있던 캐스터네츠로 박자를 맞추어 추는 이탈리아의 전통춤을 보여주었다. 해원 언니는 마음에 들었는지 엘레라에게서 열심히 춤을 배웠다. 


바닥에 앉아 전자책을 꺼내 읽던 나는 갑자기 누군가 머리를 만지는 손길에 놀라 휙 뒤를 보았다.  뒤엔 호기심 가득한 눈빛의 어린아이들이 내 머리카락을 쥐고 있다. 그런 아이들과 우리를 바라보는 히잡을 쓴 여인들이 뒤쪽 대기실 기둥에 기대앉아 있었다. 


문득 카이로의 타히르 광장에서 니캅을 쓴 여인들이 훤히 내놓은 내 긴 머리칼을 훑듯 만지고 지나간 기억이 났다. 


‘그때는 남자도 모자라서 여자까지…?’ 싶어 어이가 없었는데, 이번엔 어린아이들이어서 그런가? 불쾌감보다는 귀여움이 앞선다. 


그들은 요르단의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이었다. 어머니와 큰딸의 적극적인 점심(?) 초대로, 나는 넓적한 빵인 피타와 치즈를 얻어먹었다. 


나는 감사의 뜻으로 포장을 뜯지 않은 펜과 수첩을 건넸다.   간단한 메모를 위해 쓰려고 한국에서 넉넉히 챙겨 온 것들이다. 그러자 큰딸은 내게 히잡 안의 머리를 정리할 때 쓰는 머리띠를 선물로 주었다.


큰달은 서툰 영어로 어째서 우린 히잡을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우린 이슬람교도가 아니라서 그럴 이유가 없다.”라고 대답했다. 큰딸로부터 내 답을 전해 들은 어머니는 전혀 이해를 못 하는 표정이다.  


문득 카이로 술탄 호텔의 아비어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저 정도는 아니지만 아비어도 비슷한 태도였었지. 나는 조금 말을 바꾸어 “우리의 신은 히잡 착용을 요구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그제야 두 사람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금 ‘과연 모태신앙…!’ 하며 내심 감탄하고 말았다. 


점심을 대접해준 가족도 떠나고 시간은 흘러 흘러 기어이 저녁 7시가 되었다. 그 사이 나는 두 이집트인 노인에게 차를 얻어 마셨다. 


엘레라와 다크는 과연 오늘 내로 요르단에 갈 수 있을지 걱정 중이었다. 북적대던 대기실도 이제는 텅텅 비어 사람이 없다. 


“이대로라면 지금 출발한다고 해도 자정에 도착하겠어요.”


다크가 걱정하며 말한다. 우린 일단 대기실 출구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터미널 직원들이 주로 드나드는 곳이니 뭐라도 얻어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과연 자리를 옮기고 30분도 채 되지 않아, 제복 차림의 직원이 다가와 묻는다. 


“왜 아직도 배에 타지 않은 겁니까?”


저건 또 뭔 소리람. 


“아무도 출발한다고 말해주지 않았잖아요.”

“지금 몇 번이나 방송 나왔고 배들은 떠났는데 못 들었단 말입니까?”

“아랍어를 몰라요. 영어 방송이 나오질 않으니 알 수가 없었죠.”


열 받은 엘레라가 쏘아붙였지만, 직원은 아랑곳 않고 쯧쯧 혀를 찬다. 아무래도 우리가 타야 했을 배를 놓친 것 같은 상황에 모두가 황망해지고 말았다. 


“요르단행은 벌써 두 번째 배가 출항했어요. 오늘 출발하는 배는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곧 떠나니 어서들 일어나시오.”


우리는 가타부타 따질 겨를도 없이 황급히 배낭을 짊어지고 직원을 따라 일어섰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이 배를 안 타면 해원 언니는 본의 아닌(…) 불법체류자가 되고 우린 내일까지 대기실에서 노숙해야 할 판인 것은 확실히 알겠다. 


대기실에서 배가 정박한 선착장까지는 꽤 멀었다. 우리는 숨을 헐떡이며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죽어라 뛰었다. 다크가 가장 먼저 우리가 타야 할 배를 발견했다. 사실 어렵지도 않았다. 정말로 거대한 항구를 통틀어 선착장에 남아있는  여객선이라고는 그 배 딱 하나뿐이었으니까. 


“맙소사.”


해원 언니가 놀라서 입을 벌린다. 여객선은 거대했다. 인천항을 떠나는 국제여객선만 한 크기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우리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컸다. 대형 버스와 트럭이 줄지어 들어갈 만큼. 


그때 승선 화물을 체크하던 선박 승무원이 우르르 달려오는 우릴 보고는 대뜸 고개를 저었다. 그는 선박이 이미 정원을 채웠으니 더 태울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배를 놓친 것은 저희 책임이 아니라 우리들 탓이라는 것이다. 할 말은 많지만 틀린 말도 아니어서 모두 말문이 막혔다.


그때 우리를 인솔해 온 터미널 직원이 그래도 금일 티켓을 가진 외국인들이니까 태워달라고 부탁한다. 터미널에서의 퉁명스럽던 태도와 달리 의외로 우리를 돕는 일에 적극적이어서 고맙다. 어쨌든 둘은 우리를 우두커니 세워둔 채로 10여 번이나 옥신각신했다. 결국 보다 못한 엘레라가 폭발했다.


“이봐요. 애초에 그쪽이 원래 예정 시간에 배를 출발시키지 않아서 우리가 놓친 거나 다름없는데 이제 와서는 정원 다 찼다고 우릴 못 태우다뇨! 장난해요?”


승무원은 엘레라의 불 같은 기세에 움찔하더니 결국 승선을 허락했다. 어쩌면 외국인과 쓸데없는 마찰을 일으켜봤자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아무리 뻗대도 뒷돈(…)은 주진 않을 것 같은 분위기라 포기했던 걸 수도 있다. 


여하튼 엘레라 덕에 우리는 모두 무사히 배에 올랐다. 미리 배정받았던 좌석은 이미 날아갔으므로 입석만 가능했다. 승무원은 있을 만한 곳을 알려주겠다며 우릴 데리고 앞장섰다. 


우린 미어터지는 1층 객실을 지나 2층 객실로 올라갔다.    승무원은 2층 객실 끝까지 가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그렇게 그를 따라 우리가 나간 곳은 ……, 

갑판이다. 


“여기요.”


승무원은 그 말 한마디를 툭 던지고는 가버렸다. 우린 시커먼 연기를 콸콸 내뿜는 바로 옆의 배기구를 쳐다봤다.  그런 우릴 놀리듯 습하고 끈적한 바닷바람이 사정없이 얼굴을 후려친다. 


“끝내주는 생일이군.”


엘레라가 허탈하게 중얼거린다. 거의 욕하듯 뱉은 말이라 작게 말했어도 또렷이 들려서 우리 셋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늘이 엘레라 생일이에요?”


엘레라가 해탈한 얼굴로 말한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와디무사의 친구들 집에서 생일파티를 열고 있어야 하죠.”

“그럼 그냥 지나칠 수 없죠. 이렇게 빌어먹게 환상적인 생일이 또 어딨겠어요!” 


한껏 밝은 톤으로 말한 다크는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곧 양손 가득 무알콜 맥주와 샌드위치, 스낵 따위를 사서 돌아왔다. 선박 어딘가에 매점이 있었나 보다. 엘레라가 감동한 눈으로 그를 본다.


“이럴 필요 없는데.”

“어떤 상황이라도 생일은 기념해야죠. 생일 축하해요, 엘레라.”


지당하신 말씀이다. 우린 엘레라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며 깊게 포옹해주었다. 그 사이 드디어 배가 항구를 떠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왈칵왈칵 매연을 쏟아내는 배기구를 피해 최대한 먼 갑판 구석에 앉아 무알콜 맥주와 샌드위치를 먹고 마셨다. 


그러다가 갑판의 다른 쪽을 서성이던 일본인 배낭여행자들도 얼렁뚱땅 합류했다. 아카바에 내려 와디무사까지 가는 차편을 구하려면 인원이 많을수록 유리하니, 오히려 좋다. 


엘레라 말로는 와디무사까지 가려면 항구에서 미니밴을 빌려야 한다. 그런데 두당 금액이 아니라 차량 한 대 당의 요금이란다. 이런 걸 어쩜 이렇게 잘 아나 했더니, 엘레라는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 사는 건축 디자이너였다.  





우리를 태운 배는 밤 11시 무렵에야 요르단의 아키바 항에 도착했다. 갑판에서 바라본 아카바는 우아한 금빛으로 빛난다. 이집트 누웨바처럼 작은 마을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도시 테가 난다. 


줄이고 뭐고 없이 입구로 한꺼번에 와르르 몰려든 승객들 틈바구니를 가까스로 빠져나와 하선에 성공한 우린 터미널에 모였다. 승선 후 제출했던 여권을 돌려받기 위해서다. 여권 검사와 비자 취득은 전부 배 안에서 일괄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나저나 참 재밌는 일이다. 언젠가부터 비행기나 배가 아니라 이렇게 육로로 국경을 넘는 것이 당연해졌다. 


한국은 말이 반도지, 사실상 섬나라나 다름없지 않나. 해외를 가려면 반드시 바닷길 아니면 하늘길을 선택해야 하니까.  그런데 라오스 이후부터는 비행기보다도 육로를 통해 국경을 넘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어느덧 아무렇지 않게 이웃 동네 마실 가듯, 옆 나라에 가자는 이야기를 하게 됐다. 


게다가 이제 요르단에서부터 시작되는 중동-스페인까지의 모든 여정은 육로만을 거칠 것이다. 그럼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해지겠지. 


여권을 돌려받는 절차는 의외로(?) 빨리 끝났다. 이민국 직원이 몇 번씩 왔다 갔다 했지만, 누웨바 항에서 7시간이나 기다린 것에 비한다면 이 정도는 그냥 찰나다.


항구 밖으로 나오니, 역시나 호객꾼들이 어김없이 달려든다. 우리는 그들을 제법 익숙하게 물리치며, 아랍어 가능자인 엘레라의 도움을 받아 적당한 가격의 와디무사 행 미니밴에 올랐다. 


총 7명이 탄 미니밴은 턱없이 비좁아서, 나는 차문 바로 옆의 대충 만든 간이 좌석에 엉덩이를 반만 걸쳤다. 모두 알아서 적당한 불편함을 감수한 채로 자리잡기를 마치자, 밴은 곧 와디무사를 향해 출발했다. 


다리가 저려오고 졸음이 쏟아지지만, 그대로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요르단의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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