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때리게 웃긴, 욕망의 집
* 하단 포스팅에는 영화 거미집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SNS에 우스갯 소리로 떠도는 이야기가 있다. 한 영화를 볼 값으로 두개의 영화를 볼 수 있다고. 무릎을 치며 맞는 말이라고 깔깔 거렸다. 보기 전 친구가 보여준 평점에서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린다는 말에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보고나서는 웃으면서 정말 재미있는데 추천은 못한다고 얘기 했다. 그런데도 이 영화 수다를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걸 못 쓰면 평생 고통 속에 살게 될 것이 분명하다.' 김감독의 말을 빌려 여러분과 수다를 떨기 위해 말한다.
내용은 단순하다. 예술병에 푹 빠진 김감독이 영화 내용을 싹 다 바꿔 새로 찍는다. 이걸 찍지 않으면 안된다며 배우들을 모은다. 배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스텝도, 영화를 이루는 세트도, 엑스트라도 모인다. 영화 하나를 이틀만에 찍기 위해 여러 압력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 이 영화는 분명히 코미디다. 블랙코미디를 듬뿍 녹여 낸 이야기이다. 블랙코미디의 정의는 무엇인가. 비극을 유머로 승화하는 게 아닌가. 이 영화가 그렇다. 1970년 대 영화계 부조리가 드러나 있다. 그 부조리들이 영화에 녹여지며, 웃음으로 승화한다. 이 시대에 보면 불편했을 상황도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거다. 그것 뿐인가, 김감독이 추구하는 이야기 자체가 부조리 였다. 현실의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서로의 욕망이 폭발하여 인간적인 비참함을 드러내는 영화.
우선 각 배역들은 자신만의 비참한 상황에 갇혀있다. 주요 인물들만 먼저 살펴볼까. 한유림은 누군가의 아이를 품은 채 촬영에 임해야했다. 힘든 장면에서도 힘들다 이야기 해도 들어주는 건 부담스러운 강호세 뿐. 신미도는 어떤가. 물려 받아야하는 회사가 있건만, 숙모에 밀려 물려 받지 못했다. 영화 내 에서 툭하면 신미도는 이야기한다. '책임 지면 되잖아!' 김부장은 답답해한다. '네가 어떻게?'. 그럼 강호세는? 아내가 있는 상황에서도 두 여자를 사랑한다며 자기 아이를 임신했다 생각하는 한유림에게 지극정성이다. 근데, 자기 아이가 아니란다. 그럼에도 한유림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이다. 김감독은? 가장 비참한 불구덩이에 있다. 이명 때문에 약을 먹는데, 싼마이 영화나 찍어낸다 이야기를 듣고, 거기다 아래 있는 조감독은 곧 다른 감독 아래로 들어간단다. 이것만 찍어내면 나는 걸작을 찍는데 말이다. 여기서 유일하다시피 멀쩡한건 이민자와 오여사 같은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 이들밖에 없다.
비참한 상황에 갇힌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이 욕망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거미집 같지 않은가. 서로의 욕망이 부딪치며 폭발하는 모습이. 비유해보자면 이렇다. 욕망은 거미줄이 되었고, 거미줄이 짜여져 만들어진 거미집 속, 욕망에 갇힌 것이다. 그래서 약을 뿌린 영화가 되는거다. 욕망이 이렇게나 드러나니 자극적일 수 밖에. 대한민국이 한번도 보지 못한 열광적인 영화일 수 밖에!
거미집은 욕망의 집을 뜻한다. 백회장이 시나리오를 보고 이야기한다. '왜 넣은거야?' 굳이 이 장면을 넣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하자 김감독은 눈치만 본다. '필요하니까 넣은거지.' 과연 필요 했을까? 전혀 아니라고 본다. 거미집속 거미집, 극중극에서 화재 장면이 나올만한 이유가 없었다. 전체 내용을 우리가 본 게 아니니 어떠한 상징이 있을수는 있겠지만. 정말 반공영화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고, 금고 장면이 나온 이유는? 그건 좀 납득 가능하다. 거미 연출을 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모양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김감독이 이 내용을 넣은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이 사로잡힌 장면이였기에, 벗어나기 위해 담아낼 수 밖에 없었다.
흔히 예술은 자기 표현의 영역이라 한다. 김감독에게 금고란, 인간의 욕심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상징이였다. 금고에서 돈을 꺼내 가는 백회장과 마주친 불길 안에서, 김감독은 제가 훔친 시나리오를 숨긴다. 그렇다. 그 때를 자신이 떠올리기에 인간의 욕심들이 마주쳐 폭발이 일어난 순간으로 기억된 것이다. 그 순간은 김감독의 치부와 같다. 목놓아 외치는 '다 내가 썼다고!'가 부정당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그는 금고 장면을 영화에 넣어 영화란 것도 모르는 관객들에게 보여줌으로 제 욕심을 숨기고 싶어했다. 오래 이야기 할 수록 변화하듯이, 오래 상영될 수록 빛 바래는 필름 처럼.
화재 이야기를 하기 전, 거미집에 대해 얘기할 수 밖에 없다. 영화 공간 내내 모든 곳에 거미집 같은 부분이 숨겨져 있다. 세트의 천장, 창문의 구성, 계단 위에서 아래를 내려볼 때, 김감독 사무실의 하얀 테이프들, 김감독 집의 거미를 그린 종이들. 한유림의 난 거미가 싫어. 라는 내용까지. 자, 여기서 거미는 무엇일까. 거미줄이 욕망이라면 거미는 그것을 뽑아내는 인간들이다. 김감독은 지독한 인간혐오자다. 인간을 싫어하며 자신을 애틋하게 여겼다. 욕망에 충실한 인간들을 싫어했다. 그래서 배우의 입을 빌려 얘기 하지 않는가. '인생..무상..' 김감독도 알고 있는 것이다. 제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들이 욕망에 의거한 것이고, 제 자신이 이룬 게 아니기에 아무 의미가 없던 것임을. 그래서 신감독의 그림자 아래에서 나오지 못한다. 신감독님. 신감독님. 애절하게, 부르트게, 그를 부르자 그가 나온다. 하지만 관객들은 모두 알고있다. 그건 신감독이 아니다. 김감독의 자신을 애틋해하는 마음일 뿐. 자기 위로와 겹쳐져 나온 환상을 신감독이라 여기고, 깨달음이라 말한다. 어떻게 봐도 우스운 상황일 수 밖에 없다.
화재는 훨씬 단순히 풀 수 있다. 오여사가 자신의 남편을 죽이기 위해 선택한 수단. 언제나 오여사는 말했다. '훨씬 전에 죽었어야 했어.' 그것은 김감독이 자신의 욕망을 향해 말하는 것과 같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했던 점이다. 신감독이 죽어서 트라우마로 남은 탓에 불을 쓰는건가? 그래서 데뷔작에서도 '불같은 사랑' 이라는 제목을 쓴건가? 그러나 김감독은 그런 섬세한 인물이 아니었다. 단순히 불이 자신의 욕망을 지워주길 바랐던 것이다. 욕망으로 짜여진 거미집을 활활 태워 불타 사라지도록. 그게 성공했다 보나? 전혀 아니다.
세트장의 저 수많은 거울을 보라. 어떤 배우도 거울을 언급하지 않는다. 자신의 추악한 욕망이 드러나는 거울을 설치해놨지만 금고(욕망)을 찾느라 바빴다. 김감독 또한 극중극에서 거울을 비추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나서 영화의 끝은? 모든 인물이 자신의 욕망에 얽혀 죽은 장면으로 나온다. 거미줄은 사라지지 않았다. 불조차 꺼졌다. 욕망이 가득하게 남는 것으로 끝을 낸다. 아, 김감독의 영화(욕망)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든 영화 촬영이 끝난 뒤, 세트를 바라보는 김감독의 뒷모습은 마치 거미집에 갇힌 것 같았다. 욕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이었지만, 결국 벗어나지 못했다. 김감독의 영화는 박수 갈채를 받았지만, 그것이 정말 걸작이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저 박수를 받으며 끝이 난다.
관객들은 모두 저마다의 평을 내릴 것이다. 김감독의 영화는 걸작이었다. 아니다, 졸작이었다. 마치 처음 등장했던 영화의 영자도 모르는 평론가들 처럼 말이다. 그것 또한 감독이 의도한 것일테니 마음껏 평론해도 된다. 거미집은 그런 영화였다. 웃기긴 한데, 너무 골때리게 웃겼다. 블랙코미디가 너무 블랙이었던 나머지 그 까만색들 사이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낸 사람만이 한번 더 웃을 수 있었다. 뭐 어떤가. 웃으면 된거고, 우리는 하나의 영화값으로 두 개의 영화를 봤으니. 땡 잡은 거나 마찬가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