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다시 봤다
지하철 2호선을 걸으며, 나는 세상을 다시 봤다
지하철 2호선을 걸었다.
단순한 도전이었고, 재미로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걷는 동안 나는 생각보다 많은 걸 봤고, 더 많은 걸 느꼈다.
세상은 생각보다 넓었다.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도, 이렇게나 다양한 환경과 삶이 공존하고 있다는 걸 두 발로 직접 체험했다. 그런데 동시에 깨달은 게 있다. 이 넓은 세상도 결국 하나의 ‘우물’이다.
땅이 다르고, 사람 옷차림이 다르고, 분위기가 달라도 본질적으로는 반복되는 구조와 리듬 속에 사람들이 갇혀 살아간다.
그래서 여행이 필요하고, 우리 사회엔 외부 환경에서 온 사람들이 필요하다.
다른 우물을 보는 것, 그게 우리가 세상을 넓히는 방식이다.
걷는 동안 이런 생각도 했다.
이 땅 위에 빽빽이 들어선 빌딩과 아파트에는 얼마나 많은 돈이 쏠려 있는가.
그런데 그 안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마치 공장처럼 학교, 학원, 집만 오간다.
살아 있는 것보다, 생산되는 것 같은 느낌이 강했다.
마치 사회가 사람을 찍어내는 구조처럼 보였다.
그렇게 찍혀 나온 사람들은 기업으로 향했고, 사회가 원하는 모양들은 결국 돈 많은 기업들이 인건비를 내고 팔려갔다.
그런 와중에 문득 생각했다. 또 생각보다 서울에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은 적었다.
외곽, 경기도 사람들이 서울의 땅값을 떠받들고 있다는 현실.
그건 도시라는 구조의 허상 같았다.
밤이 되자 택시가 거리를 장악했다.
한강을 처음 넘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잠실 쪽 한강을 바라보며 걷는 그 순간엔 울컥했다.
내가 지금 여기까지 왔구나.
역시 뭐든 시작만 하면 어느 정도는 해내게 되어 있다.
완벽하게 2호선을 돌진 못했지만, 그날 나는 진심으로 행복했다.
그러면서 사람과 자동차가 없는 방배, 사당을 지나며 느꼈다.
이곳은 무섭다.
어떤 거리에는 사람 냄새보다 공기 중에 침묵이 흐른다.
결국 사람이 모여 살아야 인프라도 생기고, 땅값도 오르고, 삶의 질도 올라간다.
단순한 부동산 논리가 아니라, 도시의 본질을 보는 감각이 생겼다.
오래 걸으면 어깨가 아프다.
그리고 알았다.
죽어라 걸어도 진짜로 죽지는 않는다.
자정이 넘은 거리엔 편의점 불빛만 남는다.
누군가는 아직도 일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막 일을 끝냈다.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살아간다.
그런데 묻고 싶다.
다들 정말 돈 때문에만 사는 걸까?
자영업자들은 너무 힘들어 보였다.
잘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없는 걸까?
그 생각이 마음에 계속 남았다.
지금 한국 사회는 이미 삶의 퀄리티는 높다.
이 이상은 사치일 수 있다.
잘 사는 사람에게도 고충이 있고, 못 사는 사람에게도 고충이 있다.
그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 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나는 청춘이 찬란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청춘다운 청춘을 느낄 수 있는 시기는 대학 1, 2학년 단 두 해뿐이다.
그 이후부터는 현실이 너무 빠르게 들이닥친다.
책에서만 배움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다.
그냥 걸어도 인생을 배울 수 있다.
걸으면 보인다.
커플, 친구, 동료들이 길거리를 채우고 있다.
솔로들은 어쩌면 방 안에서 휴대폰이나 들여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외로움은 눈에 안 보이는 방식으로 퍼져 있다.
집안이 잘 살면, 나도 잘 살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릇이 크면 결국 자기 길을 뚫고 나간다.
문제는, 그릇이 큰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
왜냐면 불확실성에 몸 던지는 건 무서우니까.
그래서 부모가 사업하면 자식도 사업하는 경우가 많은 거다.
그게 익숙한 삶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다수가 옳다"라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이제 믿지 않는다.
각자의 인생은, 각자가 직접 행하는 것이 진짜 정답이다.
결국 인생도 똑같다.
나는 그렇게 2호선을 걸으며,
내 인생을 다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