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야연> 리뷰
영화와 외국 드라마를 주로 방영하는 케이블 채널에서 우연히 보게 된 영화이다. 채널을 막 돌렸을 때는 푸른 대나무숲을 배경으로 검은 갑주를 갖추고 얼굴을 가린 무사들과 흰 옷에 가면을 쓰고 비무장한 인물들의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다. 독특한 의상과 액션에 시선을 빼앗겨서 처음에는 액션에 중점을 둔 무협 영화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며 액션이 가미된 복수극과 로맨스, 권력 투쟁으로 이어져서 흥미진진해졌다. 이후 OTT에서 이 영화를 찾아서 처음부터 다시 시청하였다. 중간에 연결이 되지 않아서 전개가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고, 액션의 비중이 늘면서 오히려 지루해지는 단점도 있으나 결말이 만족스러워서 이 후기를 쓰기로 하였다.
이 영화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을 덴마크에서 중국으로 무대를 옮겨 각색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스토리가 전체적으로 비슷하다. 왕인 형을 살해하고 형수를 차지한 동생과 아버지를 살해한 숙부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왕자가 극을 이끌어간다. 숙부의 악행을 폭로하는 왕자의 연극과 왕자를 외국으로 보내어 도중에 제거하려는 음모도 똑같이 일어난다.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황후가 왕자의 어머니가 아닌 짝사랑하던 여인이고, 그녀도 주요 등장인물 간의 갈등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제목인 야연, 밤의 연회는 인물들이 저마다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싸움이 절정에 달하는 무대이다.
태자 "무란"은 사랑하던 여인 "완아"를 아버지가 황후로 책봉하자 상심하여 황궁을 떠나서 가무로 마음을 달랜다. 3년 뒤 무란은 아버지가 전갈 독으로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미처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숙부가 보낸 근위대 우림위의 습격을 받는다. 함께 춤추던 기예단의 희생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무란은 복수를 다짐하며 황궁으로 돌아간다. 숙부는 검소하던 형의 황궁을 금으로 장식하고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을 공개 처형하며 새 황제로서 권위를 세우려 한다. 그리고 완아를 자신의 황후로 삼는다. 숙부가 학정홍(=오석산. 마약의 일종.)과 전갈로 만든 독으로 아버지를 살해했음을 알게 된 무란은 완아의 황후 책봉식에서 그를 폭로하는 연극을 공연하고, 숙부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무란을 거란에 볼모로 보낸다. 조정 대신 "은 태상"의 딸이자 무란의 정혼자였던 "청녀"는 자신도 동행하기를 청하지만 완아는 그녀에게 매질을 가하고 유배를 명한다.
우림위와 함께 거란으로 향하던 무란은 도중에 가짜 태자의 행렬을 발견하고, 숙부가 또다시 자신을 제거하려는 수작을 부렸음을 깨닫는다. 우림위가 무란을 죽이려는 찰나 청녀의 오빠인 "은준"이 나타나서 무란을 구한다. 은준은 무란에게 완아의 명을 받았다고 밝힌다. 사실 완아는 숙부를 제거하고 자신이 황제가 될 생각이었고, 청녀를 볼모로 잡고 은준에게 무란을 구하게 하여 강제로 공범으로 만든 것이었다. 무란이 죽었다는 은준의 거짓 보고를 받은 숙부는 은 태상 부자를 파직하고 유배형에 처한다는 교서를 작성하고는 대신들을 모두 불러 모아 연회를 연다. 완아는 숙부의 술에 탈 독을 준비하여 손톱 밑에 감춘다. 은 태상도 이를 기회로 완아를 제거하여 황위를 찬탈할 작정으로 독을 묻힌 단도를 준비한다. 완아가 독을 탄 술을 숙부에게 권하고 숙부가 그를 마시려던 순간, 청녀가 죽은 무란을 위로하는 가무를 하겠다며 가무단과 함께 연회장에 들어선다. 숙부는 감동적이라며 술잔을 청녀에게 건넨다. 완아의 만류에도 청녀는 독주를 한 모금 마신 뒤 극 초반에 무란이 기예단과 함께 부르던 노래와 춤을 가면과 복장까지 그대로 갖추고 선사한다. 몸에 독이 퍼진 청녀가 쓰러지자 가무단 틈에 껴 있던 무란이 청녀의 죽음을 슬퍼하며 모습을 드러낸다. 무란은 숙부에게 검을 겨누지만 숙부는 완아가 자신을 죽이려 했음을 깨닫고 절망하여 스스로 남은 독주를 마신다. 완아는 무란을 새 황제로 추대하려 하나 무란은 치를 떨며 거부하고, 그 틈을 노려 은준이 단도를 빼들고 완아를 노린다. 무란은 독이 묻은 단도의 날을 손으로 잡아서 막다가 중독되어 쓰러지고 완아는 무란의 검으로 은준의 목을 찌른다. 그렇게 완아는 바라던 대로 황제가 된다. 그러나 그녀의 삶 또한 어디선가 갑자기 날아든 무란의 검에 의해 한낮의 꿈처럼 허무하게 막을 내린다.
완아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잊혔을까? 네 아버지가 나를 황후로 맞았을 때부터였어. 네가 떠나고 날 그렇게 부르는 이가 없다 보니 차츰 잊은 것 같아. 그러다가 숙부한테 다시 시집갔고 완아는 다시 귀한 황후가 되었지. 앞으로는 아무도 황후라 부르지 않겠지. 사람들은 나를 황상이라 부를 것이다.
짐이 왜 그리 붉은색을 좋아하는지 아느냐? 이 붉은색이 인간의 타오르는 욕망 같아서다. 그래, 욕망과 같지. 얼마나 많은 목숨이 희생되었을까? 오직 짐만이 이 불꽃에 찬란하게 빛나리라.
사람의 얼굴에는 희로애락이 다 드러나서 위대한 예술가는 생명이 없는 가면을 쓰고 연기한다는 무란의 말에 완아는 최고의 연극은 가면을 쓰는 게 아니라 자신의 얼굴을 가면으로 바꾸는 것이라 반박한다. 그 말을 증명하려는 듯 완아의 연극은 가히 경이로웠다.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부터 연극인지 혼란스럽게 하였다. 돌아온 무란을 반갑게 맞이하여 품에 안아 위로하고 황권을 되찾으라 격려할 때는 진심이었는지, 숙부가 독주를 마시고 자신의 무릎 위에서 숨을 거두자 터뜨린 울음은 진정 죄책감과 슬픔이었는지, 무란을 새 황제로 추대하려다 그가 죽자 울부짖은 것조차 연극이었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완아에게 마음을 빼앗긴 남자들의 최후는 하나같이 비참하다. 선황제는 완아를 황후로 삼았다가 형수를 탐한 동생의 손에 죽었다. 형을 죽인 동생은 형수의 연극에 감쪽같이 속아서 그녀의 마음을 얻었다고 믿는다. 그러다 형수의 본심을 깨닫고는 형제와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가며 틀어쥔 권력과 삶을 더 이어갈 이유를 잃어버린다. 아버지에게 빼앗긴 여인을 숙부에게 또 빼앗기고 아버지마저 잃은 태자는 절대 낫지 못할 상처를 입고 네 살 어린 그녀에게 깍듯하게 모후(母后)라 부르며 거리를 둔다. 그럼에도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여 자신을 위로하는 완아를 무심코 끌어안고, 그녀에게 날아드는 칼을 대신 막아냈다가 가련한 삶을 마친다. 자신을 연모하던 남자들이 모두 죽고 완아는 연회장에서 오열하지만 그녀의 마지막 독백을 보면 처음부터 모든 것이 연극이었던 듯하다. 잠시나마 후회와 고독으로 보였던 완아의 눈물은 역시나 희열과 탐욕이었다. 그리고 마치 무란이 죽어서도 그녀를 막으려 한 듯 검이 날아들어 완아의 연극을 끝낸다.
- 이보다 더 독한 독이 있느냐?
- 네.
- 무엇이지?
- 사람의 마음이요.
원작을 모르더라도 이 작품의 배경이 된 시대만 보면 헤피엔딩으로 끝맺기 어렵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영화의 도입부에 설명이 나온다. 반란과 지방의 독립으로 당이 멸망하고 중원 대륙이 분열된 오대십국시대이다. 영화의 무대인 나라는 국호는 언급되지 않고 그 시기의 신흥 국가 중 하나라는 설정이다. 오대십국은 약 반 세기에 걸쳐 분란을 겪다가 조광윤이 이룩한 새로운 통일 왕조 송에 의해 봉합되고 일부는 거란에 병합된다. 피를 나눈 형제가 서로 죽이고 죽는 패륜과 사랑하는 여인과 아버지를 잃은 아들의 복수, 사람의 마음을 간사하게 이용해 권력을 쟁취하려는 욕망이 뒤엉킨 싸움의 종착지는 더 강대한 세력에 의한 종말이었다. 완아에게 날아든 칼날이 바로 그를 상징한다. 골육상잔이 벌어진 덴마크 왕국을 접수하여 왕위에 오르는 노르웨이의 왕자 "포틴브라스"처럼 조광윤과 거란이라는 새 시대의 주인들, 그리고 역사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완아의 욕망과 그를 채우려 벌인 연극이 다 덧없음을 보여주는 결말이다.
추악하게 얻은 권력을 죽음으로 빼앗기는 완아의 최후는 중국 유일의 여황제이자 정변으로 폐위된 측천무후는 물론 <반지의 제왕>의 사우론과도 겹쳐 보였다. 과거와 현재의 여러 독재자들도 떠올랐다. 제2의 측천무후를 꿈꿨던 완아도 그들처럼 권불십년의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역사란 늘 그렇다. 오대십국을 끝낸 송과 거란도 여진과 몽골이라는 신흥 강자의 등장으로 종말을 맞았다. 이후 여진이 세운 금도 몽골에게 멸망하고, 제국의 국호를 원이라 지은 몽골도 한족의 반란과 분열을 통합하여 명을 건국한 주원장에 의해 도로 초원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명은 농민 반란으로 망하여 만주족 누르하치가 세운 청(후금)으로, 청은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탈, 공화정을 수립하고 전제군주제를 끝낸 신해혁명을 거쳐 중화민국으로 이어졌다. 설령 무란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황위를 이었거나 가문을 지킬 권력이 필요했던 은 태상이 황권을 쥐었더라도 결말은 바뀌지 않는다. 영원한 것은 없다. 애초에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 권력을 손에 넣고 자아도취에 빠져서 까맣게 잊어버릴 뿐이다. 완아가 무란과 청녀처럼 가여운 희생양들을 밟으며 달려가 닿은 목적지는 낙원이 아닌 나락이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신의 생명이 끊어지고 피로 물든 막이 내리는 순간에야 깨달았으리라.
황후가 되기 이전 완아의 삶이 어떠하였는지 보여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대체 무슨 계기로 그토록 권력을 갈구했는지 엿볼 수 있었을 터. 황후로 간택되지 않았더라면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서 그에게 이름으로 불리며 함께 평온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완아도 숙부도 동정하고 싶지 않으나, 그것이 별수 없는 인간의 모습이기에 연민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