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성공 공식은 개인의 능력과 재능, 노력의 결과로 평가해 왔다. 나는 이러한 요소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러한 요소들은 성공의 필요조건이다. 경쟁이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 지상주의, 한국인을 규정하는 노력 신화는 지금까지 학교 교육을 비롯하여 삶 전체를 통틀어 결정적 이유가 되어 왔다. 그렇게 성공은 매우 개인적인 문제로 귀결되었다.
평범한 집안의 대학 수능 만점자, 온갖 역경을 딛고 고시에 합격한 사람들, 배고픔을 이겨내고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 이들의 성공 신화를 바라보는 공통된 인식이 있다. 우리들에게 꿈과 희망, 가능성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좋은 대학 나오면 좋은 직장이라는 공식에 따라 학교에서 경쟁적 교육은 모든 학생에게 능력과 재능, 노력에 대한 신화를 미화하였다. 실패에 대한 결과를 학부모와 학생에게 책임을 전가하였다, 그들이 사회로 진출하여서도 어느 수준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사회적 구조와 시스템이 형성되었다. 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은밀하고, 공고하게 구축되었으며, 그것들이 작동하는 원인을 규명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이 과정에서 학벌주의, 엘리트 우월주의, 혐오와 차별 등 갖가지 부작용이 사회 곳곳에 만연되었으며 결국 불평등이라는 괴물을 키웠다.
그렇다면 왜 경쟁과 불평등의 근원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범 교육평론가는 그 이유를 해방 이후 평등한 토지 분배에 있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 실시된 농지개혁은 토지를 소수 지주가 독점하던 구조를 해체하고, 다수에게 비교적 고르게 분배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 인해 한국 사회는 출발선에서의 극단적 계층 격차가 크지 않은 사회로 형성되었다. 이 평등한 토지 분배는 사회 전반에 “노력과 선택에 따라 위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강한 기대를 만들어 냈고, 이는 곧 모두가 경쟁에 참여하는 구조를 낳았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자식 교육을 시키기 위해 논밭을 팔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토지와 자산이 더 이상 결정적 차이를 만들기 어려워지자, 사회적 서열을 가르는 핵심 장치는 자연스럽게 다른 영역으로 이동했다.
그 역할을 맡은 것이 교육이었다. 교육은 비교적 공정해 보이고, 제도적으로 관리 가능하며, 짧은 시간 안에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수단이었다. 채사장의 「시민의 교양」에서는 교육의 문제는 결국 경쟁이 공정하다는 착각을 심어주면서 개인의 문제로 전가하는 수단으로 작용하였다. 학교는 동일한 교과서, 동일한 시험, 동일한 평가 기준을 제공함으로써 출발선의 평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교육방식, 자원 접근성,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여력 같은 보이지 않는 조건의 차이는 제도 밖으로 밀려난다. 이 구조에서 실패는 시스템의 산물이 아니라 개인의 결함으로 해석된다. 시험에서 낮은 성적을 받은 이유는 교육 과정의 설계나 평가 방식이 아니라, 노력 부족·태도 문제·의지의 결핍으로 설명된다. 높은 성적을 받은 학생은 좋은 일자리에서 대우를 받으며 능력주의의 모범이 된다. 그 결과 성공하든 실패하든 경쟁의 결과를 사회적 조건이 아닌 개인의 책임으로 내면화하고, 사회는 불평등을 비판하기보다 “공정한 경쟁의 결과”로 정당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문제를 감수하면서도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욕망하고 성장하고 싶어 한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조직이나 기업에 속해 있는 인간들은 목표와 비전을 세우고 전략과 실행에 매진한다. 공무원들은 어떠한가. 개인의 영달이나 이익보다는 공익을 위해 봉사하고 직업적 소명을 다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개인으로서 인간과 조직의 일원으로서 인간은 지향하는 바는 동일하다. 자신의 성장과 일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갈구하면서 살아간다.
인간의 욕구는 이렇게도 평등한데 왜 어떤 사람들은 삶을 주도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면서 살아갈까. 가난을 이겨내고 부를 거머쥔 사람들, 끈기와 열정으로 승리를 획득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성공 신화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도 물론 아니다. 이런 특출한 사람들이 아닌 평범한 삶 속에서도 더 높은 수준으로 성장한 사람들이다. 이 세상은 삶을 주도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조직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준다.
20:80의 파레토 법칙이 말해주듯이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20%가 좀 더 적극적으로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갖추어 변화를 이끌어 내고, 80%는 그들이 설계된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아간다. 물론 80% 사람들도 20%의 사람들처럼 나름대로 그들의 능력과 역량의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20%의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길래 성공의 계단을 밟아가며 올라가는가에 대한 궁금함과 부러움이 드는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20%의 영역에 도달하기 위한 성공의 조건을 글쓰기를 통해 알아내고 싶어졌다. 다음 장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들을 통해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이 아닌 시스템을 읽고 이해하고 설계하는 사람들의 사례와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