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쯤 친누나로부터 전화가 왔다.
"작은 아버지 댁에 들려 인감도장을 찍어줘"
인감도장이라고 하면 권리관계로 매우 중요한 일이 생김에 틀림없었다. 사실 자초지종을 듣고 나니 웃음이 나왔다.
나의 할머니의 아버지, 즉 외증조 할아버지께서는 또 그 지역의 유지셨다. 그 당시 할아버지께서는 둘째 부인이 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작고하셨으나 할머니는 첫째 부인의 소생이었고 생활하는데 팍팍했으나 둘째 부인의 소생들은 매우 윤택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역시나 예상대로 할아버지 중 한 분께서 도박과 술로 모든 재산을 탕진하시고 작고하셨고 그렇게 매우 어려운 형편으로 생활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자손들 중 누군가가 온라인 조상땅 찾기를 통해 시골에 외증조 할아버지의 100평가량의 땅을 찾았다고 한다. 모든 재산을 탕진한 문제의 할아버지께서 100평의 땅이 더 있었다는 것은 모르신 듯싶었다. 그것의 처분에 대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외증조 할아버지의 자손의 자손의 자손인 나에게까지 인감도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누나, 그래서 내 몫이 몇 평이 나되?"
"음... 1평이야"
웃음이 빵 터졌다. 그동안 자손들이 늘었기 때문에 100평을 자손 숫자대로 나누다 보니 나에게 1평이 배정된 것이다. 그 1평 때문에 나의 인감도장이 필요한 거구나!, 그런데 이상했다. 둘째 부인의 소생들은 매우 잘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시골의 100평도 필요할까? 싶었다. 여하튼 약속한 날짜에 맞춰 나는 작은 아버지와 여러 명의 자손들의 인감도장을 갖고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나이가 지긋하신 아줌마 한 분이 와 계셨다.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 아줌마는 남편의 사업실패로 가정이 깨지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고 한다. '아무리 잘 살았던 분들도 시간이 지나니 모두 못살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나는 아무 말 없이 준비한 서류에 순서대로 도장들을 찍고 있었는데 작은 아버지와 그 나이가 지긋하신 아줌마 사이에 보상 문제로 시비가 붙었다. 즉, 명의를 모두 줄 테니 적절한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차라리 아무 조건 없이 도장을 찍었다면 아무 문제없었을 거라 지금 와서 생각 든다. 말싸움은 점점 더 심해져서 화가 난 작은 아버지께서 내가 정성 들여 도장 찍은 서류를 찢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나는 놀라 얼른 그 자리를 피했고 어른들끼리 심한 인심공격 발언을 서슴없이 주고받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결국 계약은 파기가 되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적절한 보상 없이 명의를 요구한 아주머니일까? 보상을 안 들어준다고 서류를 찢은 작은 아버지 일까? 잃어버린 조상땅을 찾아 달라고 요구한 누군가인가? 돈 때문에 가족들끼리 싸운다는 이야기는 명절날 TV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땅 1평 때문에 물보다 진하다는 혈연으로 게다가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 보았던 친척끼리 막말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속이 답답하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제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에 있다고 하나 돈에 의해 친족끼리의 싸움은 피해야 할 것이라 생각 든다. 그것이 내가 손해를 보는 일일지라도 그게 맞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