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아버지는 지금 돌이켜 보면 참 특이한 분이셨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현직생활을 하시다가 공무원 시험을 봐서 다시 공무원 생활을 조기퇴직 때까지 하셨다. 지금은 북망산천 고향 어딘가에 묻혀계시지만 초등학생 시절 생각을 보면 자상하게도 아침에 나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학교까지 데려다주셨다. 그 당시 운동한다고 하다 발을 다친 기억이 난다. 자전거 뒤에 앉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얼마나 엉덩이가 아프던지. 어느 날 내가 엉덩이가 아프다고 하니 무슨 나무판자 같은 것을 자전거 뒤에 붙여줘서 편안하게 학교까지 왔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며 할아버지의 영향이 지금도 크다. 나의 이름을 바로 할아버지가 작명소에 가서 1만 원 주고 지었다고 하니 나의 평생을 할아버지의 그늘 아래에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할아버지는 몇 가지 이해 안 되는 행동을 하셨다. 바로 조기퇴직이다. 그 당시 아버지가 직장을 잡으시면서 퇴직을 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나이 50에 퇴직을 했다고 하니 신기하게도 올해 나의 나이와 같다. 즉, 할아버지는 한창 벌 수 있는 나이에 직장을 그만둔 것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할아버지가 지방의 고위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이다. 어머니께서 항상 그 말씀을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하셨다 "너는 나중에 직장 잡으면 절대 일찍 그만두지 마라!" 장남이었던 아버지의 어린 동생들의 학비를 모두 도맡아 지원하시며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는지 어머니께서는 그게 한이 된 듯싶었다.
사실 지금의 나는 일직 그만 둘래야 그럴 수도 없다. 나도 딸린 식구들이 있는데 나이 50에 그만두면 애들 교육비와 핸드폰 비 마저 못 낼 형편이니 그만둘 수도 없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둔 것이다. 나중에 삼촌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할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지역 수재였으며 교사생활도 하셨고 어떻게 공무원이 되면서 탁월한 업무 수행으로 지역 최고의 공무원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윗 분이 도지사밖에 없었다고 했으니 일반직 공무원 체제는 잘 모르지만 지금의 부지사 급이었던 듯싶다. 그런데 도지사가 바뀌면서 갑자기 한직으로 발령이 났다고 한다. 지금으로 따져봐도 어디 연구소장으로 그리 나쁘지 않은 자리인데 전에 근무했던 곳이 도의 정책을 결정하는 핫한 곳이니 할아버지가 받은 스트레스는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아버지마저도 결혼해서 살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돈을 벌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 길로 직장을 때려치우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50세 이후에 집에만 있었다고 하니 어머니의 고생이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에 "예, 저는 절대 그만두지 않겠습니다!" 어머니께 다짐을 했다. 그런데 지금 내가 할아버지 나이인 50세가 되어 보니 와~ 정말 속 뒤 틀리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후배가 나보다 빨리 승진하는 모습을 보거나 친분 있던 선배가 윗사람이 되어 뭐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내가 이 꼴을 보려고 계속 직장에 근무해야 하나?'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 또한 일찍 직장을 그만둔 할아버지를 비난했는데 내가 나이 들어 그 입장이 되어보니 십분 이해가 되었고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나에게 굽신거리던 후배가 내 윗사람으로 앉아 있는데 세상 어느 누가 그 상황을 견딜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은 참 묘한 면이 있다. 나의 할아버지가 그랬듯 나 또한 그 상황이 비슷하게 전개된다. 나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할아버지처럼 더러운 꼴 보기 싫으니 그만 두면 내 몸과 마음이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초등학생인 나의 막내 아이의 미래의 처가 얼마나 나를 원망할까? "할아버지는 한창 돈 벌 시기에 후배가 윗사람이라고 직장을 때려치웠다"라고.
이미 결론은 지어진 일일수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마음고생하며 직장에 다닐 수밖에 없다. 그게 나의 숙명이고 할아버지의 실수를 씻어내는 일이다. 어느 누가 이런 말을 했다. 조상의 잘못은 후손이 열어주는 것이다. 딱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