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정상회담] 한일 양국의 외교 셈법

-이재명 정부의 외교-

by kuyper

이재명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는 셀카를 남기더니 일본의 다카이치 총리와는 드럼을 함께 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차마 드럼을 잘 친다는 말은 할 수 없지만!) 2026년 1월, 동북아 지역의 외교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외교란 겉으로는 화기애애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지략들이 숨겨져 있다. 이번 한일정상회담도 마찬가지다.


한일정상회담의 장면, 이슈, 그리고 질문


지난 며칠간 언론을 통해 스쳐간 이번 한일정상회담과 관련된 이미지들을 정리해보면, 크게 3가지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scene)은 양국 정상이 함께 드럼을 치는 모습이다. 외교라는 것이 공동선언의 문구 하나를 두고 엄청난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전쟁터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하나의 장면으로 각인되기도 하는 것이 외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1970년 당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수상은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이 하나의 장면은 2차 세계대전의 가해국이었던 독일이 피해국이었던 폴란드 전체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는 것으로 비치며 데탕트를 여는 신호탄이 되기도 했다. 물론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의 드럼 연주가 이런 외교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역사적 관계 그리고 진보적인 이재명 대통령과 (극)보수적인 다카이치 총리의 정치적 노선을 고려하면, 두 정상이 한일 양국의 시민들에게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로는 충분해 보인다.


사진_1.jpg <사진-1>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정상회담을 한 뒤 환담장에서 드럼 합주를 하고 있다.(출처: 한겨레21)


다음으로 한국 입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슈(issue)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양국 정상의 합의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은 조세이 탄광 희생자 DNA 공동 감정에 합의했다. 이 탄광은 일제 강점기인 1942년 수몰 사고로 인해 183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3명 가운데 무려 136명이 당시 조선인이었다. 양국은 지난해 6월 유골 4점이 발견되며 이번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942년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고 당시 조세이 탄광에서 희생된 조선인들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갔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강제징용의 역사적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일본 극우 집단의 정치적 지지를 근간으로 하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 합의에 동의했다는 것은 우리 정부로서는 의미 있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사진_2.jpg <사진-2> 다카이치 총리가 이재명 대통령의 호텔까지 나와 환대를 하고 있다. (출처: 주간조선)


마지막으로 정상회담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시지 않는 질문(question)이 있었다. ‘일본의 다카이치 총리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왜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거야?’라는 질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정상회담 동안 이재명 대통령이 묵는 호텔 앞에 나와 ‘직접 영접’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당초 호텔 측 영접이 예정돼 있었으나 총리 영접으로 격상된 것’이라고 설명했고, 주간조선은 “일본 총리가 외국 정상을 자신의 고향에서 직접 영접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로, 일본 언론은 이를 ‘오모테나시(일본 특유의 환대)’의 상징적 장면”이라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사진_3.jpg <사진-3> 마지막까지 다카이치 총리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극진한 인사를 하고 있다. (출처: 동아일보)


그 누구보다 일본을 잘 아는 듯한 조선일보의 명쾌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다카이치 총리의 지나친 환대는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았다. 여기에 화룡점정은 이재명 대통령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다카이치 총리의 마지막 애절한 인사였다. 분명 두 정상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은 김혜경 여사와 함께 의전차량에 올라탔다. 그렇게 마무리될 것 같던 정상회담은 다카이치 총리가 다시 다가서면서 끝나지 않았다. 마치 이 장면은 군대 복귀를 하는 남자친구를 떠나보내기 싫어하는 여인의 모습과 흡사해 보인다.(영상링크 참고) 몇 차례 이 장면을 보면서 ‘이게 일본식 외교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도대체 일본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두 국가의 외교 셈법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이번 한일정상회담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상회담 이후 양국은 각각 이번 회담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한국은 대통령실에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브리핑 형태로, 일본은 외교부에서 한일정상회담 보도문 형태로 정리했다. 이 두 공식문서를 보면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이자 이슈는 4가지였다. 1) 셔틀외교의 복원, 2) 경제협력으로 대표되는 비전통안보 이슈, 3) 군사협력으로 대표되는 전통안보 이슈, 그리고 4) 과거사 문제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 이슈들을 파편적으로 다루고 있어 양국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외교적 셈법을 가지고 임했는지 분석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양국의 공식문서의 이슈별 순서와 그 내용을 살펴보면 온도차가 분명하다.


사진_4.png <사진-4> 대통령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브리핑 사진 추가 (출처: 대통령실)


먼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브리핑은 내용이 제법 길다. 브리핑의 전반부는 정상회담 전반적인 일정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고, 후반부는 실질적으로 이번 회담의 이슈별 성과를 제시하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그 성과를 4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셔틀외교를 통한 양국 정상 간의 유대와 신뢰를 강화했다.

둘째, 보다 견고하고 성숙한 한일관계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실질 협력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했다.

셋째, 과거사 현안과 관련하여 인도주의 차원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넷째, 이번 정상회담은 국제 정세가 그야말로 요동치는 현 상황 하에서 우리의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어떻게 실천해 나갈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하겠다.


사진_5.png <사진-5> 일본 외교부의 이번 정상회담 관련 내용 사진 추가 (출처: 일본 외교부)


반면 일본 외교부는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내용을 간략하게 8가지 항목으로 정리했다. 1번과 2번 항목은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개괄적 소개이며, 실질적인 이슈는 3번부터 8번까지라고 할 수 있다.


3. 양 정상은 한일관계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역내 안정(regional stability)을 보장하기 위해 함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한 한일 간 안보협력(security cooperation)뿐 아니라 한미일 3국 간 안보협력을 포함한 전략적 조율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4. 양 정상은 경제 및 경제안보 분야에서 전략적이고 상호 이익이 되는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관계 부처 간 논의를 심화해 나가기로 했다. 아울러 공급망(supply chain) 협력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논의했다.

5. 양 정상은 국경을 초월한 조직적 사기 범죄(transnational organized frauds) 대응에 관한 협력을 가속화하기 위해 관련 문서를 작성하기로 의견을 같이했다.

6. 양 정상은 야마구치현 우베시의 조세이(長生) 탄광에서 발견된 유해와 관련하여, DNA 감식 협력에 대한 양국의 노력이 진전되고 있는 점을 환영했다.

7. 양 정상은 지역 정세(regional situations)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핵·미사일 문제를 포함한 대북 정책을 논의하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한·일은 물론 한·미·일 3국 간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또한 다카이치 총리는 납치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이재명 대통령의 지속적인 이해와 협력을 요청했으며, 양 정상은 이러한 노력의 중요성에 뜻을 같이했다.

8. 양 정상은 앞으로 셔틀외교(shuttle diplomacy)의 적극적 추진을 포함해 양국의 긴밀한 소통을 지속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정상회담에 대한 양국의 브리핑과 보도문을 보면 항목은 다르지만 그 내용은 앞서 말한 4가지를 다 담고 있다. 그러나 이 4가지 이슈에 대한 무게는 분명 다르다. 먼저 순서가 정반대다. 한국은 ‘셔틀외교-경제협력-과거사 현안- 국제 정세’로 이어진다면, 일본은 ‘안보협력-경제협력-범죄대응 협력-과거사 현안-지역 정세-셔틀외교’로 구성된다. 즉, 한국 정부는 실질적인 협력을 강조한 반면, 일본은 군사적 안보협력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한국 정부는 실질적인 협력과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에 집중했다. 인공지능, 지식재산권 보호 등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과 우리 경찰청의 주도로 지난해 출범한 국제 공조 협의체의 체계화 등과 같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협력에 집중했다. 또한, 양국의 안보 협력을 다루는 마지막 네 번째 항목에서도 한국 정부는 안보(security)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경제 분야의 협력에서는 경제 안보(economic security)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한국 정부는 한일정상회담 이전에 열린 방중을 언급하며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강조했다.


반면 일본 정부는 실질적인 협력보다는 한·일은 물론 한·미·일 안보협력에 방점을 두었다. 우리 정부가 강조했던 협력의 내용이었던 (일본 외교부 자료의) 4, 5, 6번 항목은 비교적 짧지만, 안보 협력을 다루고 있는 3번과 7번은 내용이 가장 길다. 특히 이 안보협력과 관련해 2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우리는 국제 정세라는 표현을 쓰지만 일본 정부는 역내(regional)라는 표현을 쓴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을 지속적으로 언급한다는 점이다. 전자는 일본 정부는 한국을 끌어들여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일본의 속내이며, 후자는 최근 일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미국을 향한 하나의 메시지이자 한국과 손을 잡고 한미일 3국 협력을 재건하고자 일본의 또 다른 속내라고 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한·중·일’ 발언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한일정상회담 이후 언론을 향해 이재명 대통령의 ‘한·중·일’ 발언을 이해할 수 있다.

사진_6.jpg <사진-6> 지난 13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가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공동언론발표문 전문을 보면, 발표문 말미에 양국의 안보협력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발언한다.


“양국은 또한 지역·글로벌 현안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하고,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한일·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인식을 함께했습니다.


저는 동북아 지역 한중일 3국이 최대한 공통점을 찾아 함께 소통하며 협력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한일·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말하는 첫 번째 문장은 일본 정부에서 이야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저는’으로 시작하는 다음 문장이 바로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향해 강조한 내용일 것이다.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일본 정부가 역내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일 그리고 한미일 협력이 중요하다고 한데 대해, 이재명 정부는 그러한 대결적 구도보다는 한중일 3국이 어렵겠지만 최대한 공통점을 찾는 협력적 구도로 외교를 하겠다는 선언이다. 더 나아가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페이스 메이커를 자청하며 북한과 미국 사이의 다리 역할을 말한 것처럼, 역내에서 중국과 일본의 대결과 갈등에 한국 정부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재외교를 하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한일정상회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카이치 총리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낸 환대(오모테나시)는 일본이 처한 외교적 현실에서 한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역내에서 점점 더 버거운 상대가 되어버린 중국, 최근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예전처럼 일본의 입장을 대변해주지 않는 미국을 향해 일본은 한국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중국에게는 견제의 메시지를, 미국에게는 간청의 메시지를 보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분명하고 차분하게 대응했다. 안보에 치중한 대결적 외교가 아닌 실질적 협력에 기반한 실용 외교를 펼치겠다고. 그리고 어느 한 편에 서는 외교는 하지 않겠다고. 현재로서는 한중정상회담에 이어 한일정상회담으로 한국의 몸값은 코스피처럼 우상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전 10화[한중정상회담] 거대 담론에 매몰되지 않는 이재명 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