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실종이 아니라 그것이 원래 정치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사실 한국정치의 다이나믹을 고려한다면 매 순간이 정치의 계절이겠지만, 2021년 서울과 부산시장 선거. 그리고 2022년 3월의 대선을 고려하면 확실히 2021년은 정치의 계절이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열린민주당, 국민의당 등을 비롯한 정당들의 죽고 죽이는 정치가 살벌하게 펼쳐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정치 평론가들의 다양한 비판과 제언들을 마주한다. 여기서 내가 우려하는 것은 진보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평론가들의 고상한 비판들, 예를 들면 정치가 실종되었다느니 혹은 교과서적인 훈수를 두면서 자신의 주장과 견해를 따르지 않는 정당과 정치인들을 하수처럼 여기는 비판들이다. 벌써부터 그런 글과 논의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근데 그거 참 하기 쉬운 그리고 스스로가 식자층처럼 보일 수 있는 좋은 기술이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는 것은 집단 간의 전쟁이 휴전에서 전면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지난 정경심 교수를 향한 법원의 4년 선고,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인용은 사실상 양 진영의 극심한 대립의 신호탄을 알렸다. 즉, 앞으로 진흙탕의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매일 포털의 헤드라인은 정치와 관련된 부정적 인식을 안겨주는 기사들로 도배될 것이다. 이에 많은 시민들은 한국의 정치는 후진적이라며 그 갈등 자체에 혀를 내두르는 일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생산성 없는 국회와 갈등을 야기하는 것 같은 청와대 행정부, 180석의 거대한 몸집을 가지고 타협 없는 정치를 하는 것 같은 여당, 그리고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비판을 위한 비판에 몰두하는 것 같은 야당의 존재들을 보고 있자면 과연 정치인이라고 하는 이들이 일반 시민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정치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진보적 스탠스를 취하는 평론가 또는 글을 쓰는 사람들의 선비적 태도가 사뭇 불편하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국민의힘으로 대변되는 한국 보수를 싫어하는 뉘앙스를 가지면서도 궁극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민주/진보 계열의 못마땅함이다. 정치의 원론적 정의, 민주주의 등과 같은 좋은 이야기를 하며 그들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분들의 비판이 이론적으로 합리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정치는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갈등들을 정치적으로 타협점을 만들어 갈등을 해결하는 것인데 오히려 여당과 정부가 갈등을 부추기고 있으며 이는 대립과 극단의 정치를 야기하는 정치의 실종을 낳고 있다고 비판하거나 야당 정치인들과 싸우지 말고 그들과 협치의 정치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여당과 정부가 너무 무능하다는 식이다. 맞는 말이고 좋은 말이지만 나는 이런 논의를 보면 나는 묻고 싶다. 어떤 정치를 생각하느냐고. 그리고 그러한 정치를 진정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고. 그러면서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국 축구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해 기성용이 날렸던 묵직한 한 마디가 떠오른다.
현실의 정치는 전쟁이다. 피 터지는 전쟁이다. 지나친 현실주의자의 말처럼 들리겠지만, 내가 이기면 상대는 지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면 상대가 이기는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두 명의 시장이 탄생할 수 있는가? 대선에서 아무리 선거 캠페인을 잘해서 49.9%를 득표한다 하더라도 그 후보자는 50.1%를 얻는 상대 후보에게 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정치다. 따라서 이 전쟁은 아군과 적군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단지 상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설득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특정 정치집단의 방향성에 동의하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전쟁에서 중도는 사실상 존재할 수 없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상대가 존재하는 싸움이며, 그 싸움에서 중도에 서거나 양쪽을 비판하는 것은 그 사회에 실존하는 시민이기를 거부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진보적 스탠스를 취하며 고상한 비판을 늘어놓은 사람들의 교과서적인 논의를 볼 때면 그들은 정치의 본질을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생각한다, 그런 정치는 교과서에서는 존재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또한, 내가 속한 집단의 치부를 지속적으로 드러내며 고상한 비판을 하는 모습은 왠지 전쟁터에서 지금 총알을 피해 가며 싸우고 있는데 안전한 벙커 안에서 양복을 입고 무전기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고 훈수를 두는 것과 다름없다. 전략을 세울 때는 내부적으로 피 터지게 비판적 논쟁이 필요하지만, 전쟁터에서는 같이 피 터지게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결론은 정치는 전쟁이다. 그리고 그 전쟁은 적군과 아군이 존재하는 것이 상수다. 그 싸움에서 전략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언제나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치의 실종’과 같은 이야기를 하며 갈등 자체가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비판은 현실이 아니라 교실에서 했으면 좋겠다. 정치는 갈등이며,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