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을 쓰게 만든 것
"엄마 저 왔어요."
명절을 맞이하여 KTX 2시간 30분을 타고 밤 10시 즈음 본가를 찾았다.
다들 오랜만에 집(본가)을 찾으면, 익숙한 집 향기가 반가울 때가 종종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 향을 맡을 생각에 설레어하며 문을 열고 집을 들어갔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덜 익숙한 집 향(香)을 맡았다.
"뭐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일단 부모님께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엄마가 외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라며 안방문을 여셨다.
전혀 모르고 있었다.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계실 줄은.
왜냐면, 외할머니댁은 우리 집에서 꽤 먼 곳에 위치했고, 그렇기에 (불효지만) 많아봐야 1년에 2번 정도 찾아뵙는 게 전부였기 때문에 더 놀랐던 것이다. 그래서 집 향이 평소 향기와 약간은 달랐나 보다.
어쨌든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던 나는 얕은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 저 왔어요. 잘 지내고 계셨죠?"
그러자, 외할머니는 생긋 웃으시며 내 손을 잡아주셨고 살짝 끌어당겨 안아주셨다.
앉아계시던 할머니께 나는 안겨서 잠깐 그대로 있었다.
"오느라 힘들었지? 우리 찬우."
그러시고는 약간 붉어지시는 눈으로 내 얼굴을 보고, 다시 안아주고를 몇 번 반복하셨다.
그렇게 할머니와 나눴던 몇 번의 눈 맞춤과 포옹은,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이번 엄동설한의 겨울 동안 시리게 얼어붙은 내 몸과 마음을 모두 녹이기에 충분했다.
28살이 된 나는 여태껏 사랑을 그렇게 믿지 않았다.
가족, 연인, 심지어 나 자신과도 사랑에 서툴렀고, 사랑을 온전히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할머니와 나의 짧은 인사동안 만났던 사랑은 선명했다.
너무나 따뜻했고 깨끗했다.
그렇게 몇 마디를 더 나누고 할머니께 안녕히 주무시라는 말을 드리고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다.
"이곳에서 계속 지내실 것 같단다." 엄마가 말했다.
"잘 됐네요." 내가 말했다.
다른 형제자매보다 할머니를 더 사랑하시고, 그래서 더욱 모시고 살고 싶어 했던 우리 엄마였기에, 또 그걸 알고 있던 나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여쭙지는 않았다.
이러한 변화에 용기를 낸 엄마도, 그 용기에 힘을 얹어준 아빠도 존경스럽고 감사했다.
결혼한 두 딸과 막 독립한 막내아들(나)의 빈 공간과 기운을 외할머니께서 채워주시는 것. 그것도 우리 부모님 입장에서는 참 알맞고 아름답다 느꼈다.
"늦었으니 주무세요. 저도 옷 갈아입고 좀 쉴게요." 엄마께 인사를 드리고 나는 남는 방에 짐을 내려놓았다.
옷을 갈아입으며 생각했다.
이 따뜻한 사랑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간직하여 틈날 때마다 이 감정을 말로 전할 자신이 없어.
강렬한 기억도, 그때 떠오르던 멋진 단어도 결국, 그것들의 세기는 약해지고 서서히 잊히지 않을까.
그러면 글을 쓰자.
마침 이유 없이 글쓰기를 시작하려 했는데, 근사한 이유가 생겼다.
"이 소중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오랫동안 가져가기 위해"
나중에는 다른 이유들도 많이 생기겠지.
글을 쓰는 지금은 명절이 마무리되어 갈 때이고, 위치도 본가에서 올라온 서울이지만, 아직 그때의 집 향기와 사랑의 감정을 선명히 기억한다.
"사랑"이란 것이 잊혀지거나, 나를 속인다는 느낌이 들 때, 이 글을 다시 꺼내볼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