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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Sep 14. 2024

접촉 위안

백석, <고향>에 나타난 병의 치유 방법

  외로움은 홀로 되었다는 인식에서 발생되는 정서입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타인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지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에 외로움을 느낍니다. 이 외로움이 오래 지속되면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고, 육체적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외로움이 병의 원인이 되고, 접촉으로 병을 치유하는 문학 작품을 1930년대 백석 시인의 ‘고향’이라는 시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씨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백석, <고향>     


  이 시는 서사적 얼개가 있는 작품입니다. 고향이 평안도 정주인 화자는 혼자 북관(함경도)에서 지내다가 병이 났습니다. 병원을 찾아갑니다. 수염이 긴 의원은 한참 동안 맥을 짚더니 화자에게 문득 고향을 묻습니다. 병의 신체적인 원인을 발견하지 못한 의원은 병의 원인으로 심리적인 측면에 주목한 질문입니다. 평안도 정주라고 하니 그곳이 아무개 씨 고향인데 그 사람을 아느냐고 묻습니다. 아버지라고 답합니다. 화자의 아버지를 매개로 화자와 의원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다시 맥을 짚는 의원의 손길에서 화자는 아버지를 느끼고 고향을 느끼고 친구를 느낍니다.

  화자의 병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것에 기인합니다.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의 외로움이 병의 원인이라고 의원은 판단했습니다. 병의 원인을 알았기에 의원은 고향을 매개로 맥이라는 심리적 육체적 접촉으로 병을 치료합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접촉 위안’이라고 합니다. 화자의 병이 타향에서 고향과의 접촉의 부재가 원인이니 고향과의 접촉을 통해 위안을 주면 병이 회복된다는 의원의 의술이 화자의 병을 낫게 한 것입니다.    

  

  심리학에서 ‘접촉 위안(contact comfort)’은 위스콘신 대학의 ‘해리 할로우(Harry Harlow)’의 실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할로우 교수는 ‘헝겊엄마와 철사엄마’ 실험을 했습니다. 새끼 원숭이를 가슴에 우유병을 달고 먹을 것을 주는 ‘철사 엄마’와 먹을 것은 주지 않지만 부드러운 감촉을 주는 헝겊 엄마와 한 우리에 있게 합니다. 새끼 원숭이는 먹을 때만 철사 엄마에게로 가고 대부분의 시간을 헝겊 엄마와 함께 보낸다는 실험 결과를 얻었습니다. 연구자는 철사보다는 헝겊이 훨씬 부드럽고 따뜻하기 때문에 새끼 원숭이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헝겊엄마에게서 위안을 얻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따뜻한 애정이 듬뿍 담긴 신체적 접촉은 마음의 위안을 준다고 해서 ‘접촉 위안(contact comfort)’이라 합니다. 간혹 유아들이 자신만의 쪽쪽이나 담요나 인형을 자신의 신체에 접촉해야만 편안함을 얻고 잠들 수 있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도 부드러운 접촉이 마음의 위안을 주는 접촉 위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생물학적으로도 증명됩니다. 사람의 피부에 ‘C-촉각 신경섬유’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신체적 접촉을 할 때 가장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이 신경섬유가 활성화될 때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마음의 안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 생물학적 소견입니다.  

   

  옛날 아이가 배가 아플 때 할머니는 아이를 무릎에 눕히고 아이 배에 손은 얹고 손바닥으로 배에 원을 그리듯 쓸면서 ‘할머니 손은 약손’이라고 되뇝니다. 그러면 아이의 복통은 씻은 듯이 낫곤 했습니다. 정말로 ‘할머니 손은 약손’이겠는지요? 그렇습니다. 평소 따뜻하고 인자한 할머니와의 신체적, 심리적 접촉이 아이의 복통을 낫게 한 것이지요. 할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 이외에도 신체 접촉으로 인해 엔도르핀이 분비되면서 육체의 안정을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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