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능력은 필요 없는 것일까

by Robin 임봉규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기업의 임원은 소시오패스이고

오너는 사이코패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은 의학적 진단을 의미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조직에서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공감이 점점 필요하지 않게 되는 현실을 빗대어 하는 이야기입니다.


리더십 교육이나 소통 코칭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공감능력입니다.
관리자는 구성원의 감정을 이해하고 충분히 경청하며

인간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교육을 반복적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정작 조직의 현실은 그와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가와 보상은 공감보다 성과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비인기 결정을 미루기보다 신속하게 실행하는 관리자가

더 높은 평가를 받기 쉽습니다.


공감을 강조하는 교육과 공감을 사용하기 어려운 구조 사이에서 관리자는 늘 미묘한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기업이라는 조직에서 직급이 올라갈수록

사람 냄새가 옅어진다는 말은 낯설지 않습니다.
이는 특정 개인의 성격 변화라기보다

자리가 요구하는 역할의 변화에 가깝습니다.
조직은 성과를 중심으로 설계되며,

그 과정에서 공감은 점차 판단의 기준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부장과 임원급 관리자는 대부분 평범한 직장인으로 출발합니다.
그러나 승진의 사다리를 오를수록 누군가를 평가하고

때로는 배제하며 조직의 생존을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위치에 놓입니다.
이 과정에서 감정을 유지한 채 비인기 결정을 반복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집니다.


결국 많은 관리자는 감정을 조절하고 거리를 두는 방식을 학습하게 됩니다.
이때 나타나는 것이 흔히 말하는 소시오패스적 선택입니다.
이는 타인의 고통을 즐기거나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라

감정보다 기준과 숫자를 앞세우는 역할 적응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의 도덕성 문제라기보다 자리의 요구에 대한 반응입니다.
관리자는 악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구조 안에서 버티기 위해 감정의 사용 범위를 조정해 나갈 뿐입니다.


조직은 성과를 이유로 공감을 점점 덜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사람을 재구성합니다.


오너의 세계는 이 경로와 다릅니다.
오너는 변한 존재라기보다 출발 조건이 다른 존재입니다.
처음부터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오너는 평가받지 않고 승진하지도 않으며 탈락하지도 않습니다.
결정의 결과는 아래로 분산되고 성취의 보상은 위로 집중됩니다.


이 구조에서는 공감이 필수 역량이 아닙니다.
오히려 판단을 지연시키는 요소로 간주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너에게서 보이는 사이코패스적 특성은 변질의 결과라기보다

공감이 요구되지 않았던 환경의 자연스러운 산물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이코패스 역시 의학적 진단이 아니라

공감 없이도 의사결정이 가능하고

그 선택이 불이익으로 돌아오지 않는 자리를 가리키는 은유입니다.


이 현상은 한국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서양 기업에서도 성과 압박과 주주 책임 속에서 유사한 장면이 반복됩니다.
다만 서양 기업에는 이사회, 노조, 법률 시스템, 내부 고발 문화 등 공감이 완전히 제거되기 전에 작동하는 견제 장치가 존재합니다.


이제 질문은 개인을 향해서는 안 됩니다.
왜 저 사람은 변했는가가 아니라

왜 이 조직에서는 공감을 줄이는 선택이

합리적으로 보이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공감을 유지한 관리자는 소진되기 쉽습니다.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관리자는 조직 논리상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기 쉽습니다.
이 보상 체계 안에서 인간성을 유지하는 선택은 점점 어려워집니다.


문제는 그 비용이 조직 내부에 축적된다는 점입니다.
구성원들의 신뢰는 약해지고 위기 상황에서 서로를 지탱할 기반은 줄어듭니다.

단기적 효율은 얻을 수 있으나 장기적 회복력은 저하됩니다.


결국 공감능력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공감이 필요 없는 자리가 만들어지고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