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했기에, 해냈습니다

by Robin 임봉규


한여름 장맛비가 쏟아지던 연병장 위에 저는 진흙투성이가 된 채 엎드려 있었습니다. 빗물과 땀이 뒤섞여 눈을 따갑게 파고들었고, 숨은 목구멍 끝에서 거칠게 터져 나왔습니다.


대학 시절 ROTC 하계 입영훈련 중이었습니다. 스물두 살의 청춘이 ‘책임’이라는 단어를 머리가 아니라 근육으로 배워내던 시간이었습니다.


유격 체조가 반복될수록 제 팔다리는 더 이상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허벅지는 경련하듯 떨렸고, 진흙에 박힌 손바닥은 떨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주저앉고 싶어 하던 순간, 교관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빗줄기를 뚫고 들려왔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문장은 뜨겁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늘할 만큼 담담했습니다. 그래서 더 깊이 박혔습니다.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 무심한 문장이 훗날 제 직업과 인생을 관통하는 문장이 될 줄은 알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는 오랜 시간 회사에서 인사업무를 맡았습니다. 영업처럼 숫자로 증명하는 자리도 아니었고, 연구처럼 성과가 눈에 보이는 자리도 아니었습니다. 대신 제 책상 위에는 구조조정, 인력 조정, 갈등 중재, 퇴직 면담처럼 누군가의 삶과 직결되는 무거운 과제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어느 날, 구조조정 대상자와 마주 앉았습니다. 조직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저를 바라보던 그 눈빛은 오래 남았습니다. 설명은 담담해야 했고, 논리는 흔들림 없이 분명해야 했습니다. 면담이 끝나고 상대가 문을 나선 뒤, 텅 빈 회의실에 홀로 남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유난히 멀게 느껴졌습니다. 조직을 위한 결정이라는 명분 뒤에서, 타인의 일상이 바뀌는 순간을 직접 전달한 사람으로서의 무게가 어깨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그 여름의 연병장을 떠올렸습니다.


진창 위에 엎드려 단 한 뼘의 팔도 들어 올릴 수 없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기어이 한 번 더 몸을 일으켰던 기억이었습니다. 할 수 있어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해내야 했기 때문에 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내야 함’이 결국 저를 ‘해내게’ 만들었습니다.


돌아보면 제 삶은 성과를 드러내는 시간보다 책임을 완수하는 시간에 더 가까웠습니다. 화려한 박수는 없었지만, 누군가는 그 자리를 지켜야 했습니다. 제가 버틴 덕분에 조직이 다시 숨을 쉬고 움직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했습니다.


젊은 날의 유격이 몸을 단련하는 시간이었듯, 인사업무는 마음을 단련하는 훈련이었습니다.


두 시절은 저를 같은 선택 앞에 세웠습니다.

멈출 것인가, 아니면 한 번 더 움직일 것인가.

저는 매번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흔들렸고, 자주 고뇌했습니다. 그러나 도망치지는 않았습니다.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해내야 했기 때문에 마주했습니다.


지금도 삶은 또 다른 유격을 준비합니다. 예상치 못한 비가 내리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그래도 저는 압니다.


해내야 할 이유가 있는 한, 저는 다시 일어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