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없는데 말이 달립니다

주마등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았습니다

by Robin 임봉규



우리는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인생을 돌아볼 때도 쓰고, 기억을 말할 때도 씁니다.

그런데 정작 주마등을 실제로 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아는 말인데

아무도 본 적이 없는 물건입니다.


옛날 집 처마 밑에는 등이 하나씩 달려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조금 특별한 등이 있었습니다.

밝히기 위한 등이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등이었습니다.

주마등이었습니다.


이 등은 방을 환하게 만드는 조명이 아니었습니다.


명절 밤에 분위기를 살리고

아이들이 둘러앉아 구경하는

움직이는 장식이었습니다.


처마 밑이나 마루, 대문 안쪽에 달렸고

촛불을 켜면 혼자서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아이 하나가 물었습니다.

“왜 저 등은 혼자 움직입니까?”

어른이 말했습니다.

“안에서 말이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등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나 말은 없었습니다.

촛불 하나와 종이 통 하나가 조용히 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이가 말했습니다.

“말은 없는데 말이 달립니다.”

어른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래서 주마등입니다.”

주마등은 단순한 구조였습니다.

촛불이 공기를 데우고

따뜻해진 공기가 위로 올라가면서

종이 통을 돌립니다.

종이에 그려진 말 그림이 회전하며

밖에 그림자로 나타납니다.


실제 말은 없습니다.

그림자만 있습니다.

그런데 눈에는 분명히 말이 달립니다.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입니다.


전기가 들어오면서 이런 등은 사라졌습니다.

집을 밝히는 기능은 형광등이 대신했습니다.

명절 밤의 그림자 놀이는 텔레비전이 대신했습니다.


조명은 더 밝아졌지만

구경거리는 사라졌습니다.

물건은 사라졌는데

말은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말합니다.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실물을 본 적은 없어도

그 의미는 모두가 이해합니다.

시간이라는 공기가 움직이고

기억이라는 종이가 돌면서

장면이 하나씩 지나갑니다.


옛날 마당에서 뛰놀던 오후

첫 출근하던 아침

혼나던 순간과 웃던 순간이

차례로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주마등 속 말 그림과 같은 흐름입니다.


우리는 인생에 단단한 실체가 남을 것이라 믿습니다.

직함과 성과와 숫자가 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떠오르는 것은 다른 장면입니다.

야근 후 함께 먹던 국밥 한 그릇

비 오는 날 우산을 같이 쓰고 걷던 길

회의가 끝난 뒤 창밖을 보며 나누던 짧은 침묵

거창한 성취는 흐릿해지고

스쳐 지나간 순간이 또렷하게 남습니다.


말이라고 믿었던 실체는 사라지고

그림자처럼 남은 기억만 달립니다.


주마등과 같은 모습입니다.


주마등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합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밖에서는 계속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머릿속도 그렇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오래된 장면이 하나씩 지나갑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사람 머릿속에도 주마등이 하나 달려 있다고 말입니다.


이 등은 전기를 켜야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조용해지면 저절로 돌아갑니다.

주마등은 죽음의 순간에만 켜지는 등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지금도 계속 돌아가고 있습니다.

퇴근길 창밖을 멍하니 바라볼 때

잊고 지낸 이름이 문득 떠오를 때

오래된 노래 한 소절에 풍경이 펼쳐질 때

그때 이미 주마등은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등을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여러 번 겪었습니다.

말은 없습니다.

그림자만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인생이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