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을 잃어버린 민족

다시 ‘노는 법’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by Robin 임봉규

우리는 스스로를 흔히 흥의 민족이라 불러왔습니다. 농사일이 끝나면 마을 어귀에 사람들이 모였고, 꽹과리와 장구 소리가 자연스럽게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었습니다. 특별한 무대도, 관객과 연기자의 구분도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노래를 시작했고, 누군가는 박자를 맞췄으며, 아이들은 그 곁을 뛰어다녔습니다. 그렇게 놀고 웃는 일이 곧 살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일상에서 흥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근현대의 시간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과제를 한꺼번에 던졌습니다. 나라를 잃었고, 전쟁을 겪었고, 가난을 벗어나야 했습니다. 산업화의 속도는 빨랐고, 멈추면 뒤처진다는 공포가 사회 전체를 지배했습니다. 삶은 축제가 아니라 끝없는 과제 목록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놀 시간은 ‘쓸데없는 시간’으로 취급되었고, 성적과 등수가 삶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어른들은 취직을 걱정했고, 집을 장만해야 했고, 아이를 키우느라 자신을 돌볼 틈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살았지만, 돌아보면 즐겁게 산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 노는 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배울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흥은 사치가 되었고, 여유는 죄책감이 되었습니다. 주말에 쉬고 있으면 괜히 불안해졌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낭비처럼 느껴졌습니다. 웃음은 계획표에 없었고, 쉼은 성과로 환산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그 결과는 아이러니합니다. 평균 수명은 길어졌습니다. 의료 기술은 발전했고, 영양 상태도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병자로 살아갑니다. 몸은 오래 살지만, 마음은 이미 지쳐버린 상태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래, 너무 열심히만 살아온 것은 아닐지 모릅니다.


이쯤에서 한 번쯤 이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아무 이유 없이 즐거웠던 적이 언제였는가.”


대답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흥의 자리일지도 모릅니다. 노는 법은 단순한 유희가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리듬을 되찾는 기술이며, 마음을 숨 쉬게 하는 방법입니다. 흥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힘입니다.


잘 놀아야 잘 산다는 말은 경험에서 나온 말입니다. 웃고, 쉬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은 다시 일어설 힘을 가집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힘든 시절에도 노래와 춤을 놓지 않았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흥은 버티는 힘이었고, 다시 내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이제는 다시 배워야 할 시간입니다.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산책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 음악을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일, 오래된 친구와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그렇게 작은 흥을 일상에 조금씩 들여놓는 일입니다.


흥을 잃어버린 민족이라는 말로 자신을 규정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우리는 단지 너무 오래 흥을 미뤄두고 살아왔을 뿐입니다. 다시 흥을 깨우는 일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조금 더 가볍게 사는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 언젠가는 삶 전체를 다시 흥으로 채워줄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