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너머의 뒷모습

by 박재우

딸아이의 공연 날, DSLR 카메라를 챙겼다. 렌즈 속에 아이의 상기된 미소를 가득 담아 평생의 선물로 주고 싶었다. 연주가 시작되고 셔터를 누르려던 나는 당황했다. 뷰파인더에 들어온 것은 아이의 옆얼굴도, 땀방울도 아니었다. 거대한 파이프 숲을 향해 꼿꼿하게 펴진, 낯선 등 하나였다.


오만했다. 딸의 전공을 안다고 자부했지만, 그 악기가 연주자에게 강요하는 고독의 형태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벽면에 박힌 파이프 오르간은 연주자에게 관객을 볼 여유도, 단 한 조각의 옆모습을 내어줄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던졌던 ‘합리적인’ 걱정들이 부끄러워졌다. 사람들은 수익을 따지며 이 길을 ‘좁은 문’이라 부른다. 하지만 아이는 문 뒤에 숨은 것이 아니었다. 세상을 등지고 오직 소리의 본질로 파고들고 있었다. 수천 개의 파이프가 만드는 바람의 미로 속으로 홀로 당당히 걸어 들어가는 중이었다.


오르간은 공기의 흐름을 길들이는 악기다. 양손은 세 단의 건반을 훑고, 두 발은 베이스 위에서 춤을 춘다. 이 치열한 분투를 아이는 과시하지 않는다. 0과 1로 치환된 매끄러운 소리가 흉내 낼 수 없는, 거대한 관을 통과하는 ‘진짜 바람’의 전율을 온몸으로 지켜낼 뿐이다.


가짜가 정교해질수록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결핍을 느낀다. 그때 아이가 일궈낸 이 비효율적이고 땀 냄새 나는 아날로그의 숲은 그 어떤 유망 직종보다 귀한 안식처가 될 것이다. 좁은 땅의 통계 너머, 전 세계인의 영혼을 울리는 언어를 아이는 이미 몸으로 쓰고 있었다.


이제 나는 공연장에서 아이의 얼굴을 찍으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단단해진 등의 곡선을 조용히 기록한다. 그것은 딸이 선택한 삶의 무게이자, 아빠가 지켜줘야 할 고귀한 우주다. 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계산하는 ‘회계사’가 아니라, 그 등이 흔들리지 않게 지켜봐 주는 ‘1호 관객’이어야 함을 배운다.


관객에게 등을 돌린 채 소리에 침잠한 그 모습이 세상 그 어떤 표정보다 당당해 보였다. 나는 이제 아이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그 뒷모습만으로 충분히 그 진심을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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