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의미

2025년 한국 여행 이야기 1 (부제: 서울 친구에게)

by memory 최호인

오랜만에 성당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오늘은 당신에게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1. I’m Still Here

그전에 영화를 본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낮에 CGV명동씨네라이브러리로 갔었거든요. 한국에서 영화관에 가는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제목은 ‘I’m Still Here.”


1970년대 브라질 군사독재정권 시절 유린된 인권과 강제실종을 다룬 작품입니다. 너무 자극적이거나 감정적이지 않고 그런 장면도 없이 꽤 담담하게 실종된 전 국회의원과 그의 가족을 그린 영화입니다. 경찰과 군부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이 고문 후에 살해되고 바다로 던져지거나 집단 암매장되어서 ‘실종’으로 처리되던 시대였지요. 국회의원 부인의 끈질긴 추적과 조사를 통해 결국 25년 만에 실종되었다던 남편은 군부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그러나 물론 시신을 찾을 수는 없었지요.


그 영화는 꼭 우리나라의 과거를 닮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과거가 있었잖아요. 우리나라에서도 군사독재 시절에 많은 사람이 강제로 끌려갔고 여러 사람이 실종되기도 했었지요. 불법 검문과 압수수색과 억류와 구타와 폭력과 고문이 일상적으로 자행되었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때 정권과 경찰과 군대에 의해 폭력을 당했던 사람들, 고문당했던 사람들, 투옥되었던 사람들, 사라진 사람들, 죽은 사람들이 언뜻언뜻 떠올랐습니다.


민주의식과 정의감을 가졌던 용기 있는 친구들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 이야기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이민 가기 전에 한 친구가 감옥에 간 친구를 잊지 말라고 나에게 했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감옥에 간 친구를 잊지 말라고 했던 말은 무슨 의미였을까요. 이민을 떠나는 나에게. 나는 또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잊지 않겠다고 대답했을까요.


실제로 나는 오랫동안 그 친구를 잊지 않았습니다. 광활한 미국 땅에서 내가 굳이 애써 뉴욕을 떠나지 않고 살았던 이유 가운데 하나도 그것이었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면 그만큼 더 한국과 한국에 있는 사람들을 잊고 살게 될 것 같아서 말이죠. 미국에서 아마도 정보 교류적 측면에서 한국을 가장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곳은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일 것이고, 또한 국제정세와 세계 경제상황을 이해하는 측면에서는 뉴욕을 따를 도시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훗날 결과를 보면, 나에게 주어진 결과는 그런 의도와 소망이 충분히 만족스럽게 이뤄지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것은 오로지 나의 부족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내가 한국을 떠날 때 감옥에 간 친구를 잊지 말라던 친구와 감옥에 갔던 친구를,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기대했던 것처럼 훗날까지도 정말로 높은 가치를 줄 만했는가 되새기게 됩니다. 시간은 시대를 변하게 하고 사람을 변하게 하기 마련입니다.


과거에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것을 아주 성스럽게 생각하고 가슴속에 길이길이 훈장을 달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한국사회가 지금처럼 평온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그런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꼭 그들로만 인해 세상이 긍정적으로 변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기 나름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세상은 우리가 의도했던 대로만 변하지 않는 듯합니다. 종교를 가지고 신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은 세상이 신의 의도대로 변한다고 믿을 것이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유물론에 입각해서 역사적 변증법에 따라 세상이 변하고 있고, 또한 사회는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생산양식의 단계적 변화에 따라 또 그와 더불어 계급투쟁에 의해 변혁된다고 믿을 것이며, 자본주의자들은 자본가의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투자와 이타적 인간들의 희생을 통해 경제적 성장이 이뤄지면서도 그 단계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불평등에 저항하면서 발전한다고 믿을 수 있겠지요.


어떤 눈으로 사회와 역사의 변동을 보고 해석하는가를 사관이라고 합니다. 한때 수많은 청년들의 경도됐던 사관은 이제 다시 수평을 되찾는 듯도 하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나에게는 모든 것이 불투명해진 듯합니다.


그러나 사회와 역사적 단계가 어찌 됐든, 또 사관이 어찌 됐든, 불평등과 차별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 신체적 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당장, 즉각적으로 억압과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 그래서 사회적으로 고통을 덜고 분담하는 것이야말로 위정자들과 권력자들이 추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각 개인과 사적 집단들은 거의 모두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 사적 이해관계에 얽혀 있게 되므로, 여기서는 국가가 가장 중대하고 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나는 믿습니다. 니힐리스트나 아나키스트와는 매우 다른 견해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체주의로 경도되는 것은, 나 같은 개인주의자들이 극도로 혐오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사회적 수평과 균형과 평화를 추구하고 구축하는 일이야말로 현대국가의 권위이자 위상이며 역할과 기능일 것입니다. 현재 나는 그 이상으로 논쟁을 벌일 만큼 지식과 지혜를 발휘하면서 논쟁하기 어렵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꽤 들었고, 머리는 총명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WQLCHMHy_o.jpg



2. 사라진 사람에 대한 추억


그런데 그런 복잡하고 거대담론적이고 복잡한 사유 외에도,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사라진 아버지에 관해 대화하는 남매의 대화를 들으면서 나는 문뜩 슬퍼졌습니다. 아버지가 끌려가서 실종된 후 시간이 꽤 흐른 후에 아버지를 잃은 남매가 정든 집을 떠나서 이사하기 전에 나눈 대화였지요.


“아버지가 사라졌다는 것을 언제부터 받아들이게 됐니?”라고 누나가 물었을 때였지요.

남동생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가 끌려가고 나서 1년 반 지난 후 어머니가 아버지 옷을 모두 기부했을 때.”

그 말을 들은 누나가 맞장구치듯 대답했습니다.

“나는 엄마가 우리 집을 팔고 상파울루로 떠나면서 텅 빈 우리 집을 보았을 때였어.”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살던 그 가족은 아버지가 사라진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집을 팔고 상파울루로 이사 갔지요.


그때 나는 갑자기 엉뚱하게도 나의 아버지 어머니를 떠올리곤 왈칵 눈물이 솟아올랐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라진 (사실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사망하여 사라진) 것을 나는 언제 받아들이게 됐는가. 오래전이라 그런지, 아주 까마득하게 느껴집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앓다가 결국 병원으로 이송되어 사라졌던 순간, 이후 그들이 점점 잊힌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습니다.


내가 매일 밤 전화로 안부를 묻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어머니 혼자 사시는 아파트 거실에 카메라를 달고 밤마다 걱정스레 지켜보던 일,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프던 순간, 아파서 쓰러지던 순간, 병원으로 이송되던 순간, 산소마스크를 쓰고 병원 침상에서 돌아가시던 순간, 심장박동을 재던 기계 수치가 갑자기 뚝뚝 떨어져서 제로로 변하고 삐 하는 소리가 들리던 순간이 생각납니다. 아, 난 참 불효자로서 살았군요.


어두운 영화관에서 나는 아득한 기분이 들었고 눈물이 계속 나왔어요.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면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겨우 맨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갑자기 매우 고독하게 느껴졌습니다.


KakaoTalk_20250913_235119257_02.jpg


KakaoTalk_20250913_235119257.jpg


3. 명동성당에서의 기도


영화를 보고 나서 명동성당으로 갔습니다.

거기에 가면 조금 마음이 가라앉을까.


마침 어떤 커플이 본당에서 결혼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성당 청년부에 속한 사람들이겠지만, 괜스레 매우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에서 결혼했는가 물었을 때 “명동성당에서”라고 대답하는 것은 아무래도 뭔가 성스러움을 넘어 권위스러운 측면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여행의 순간이 아니라 해도 나는 어릴 때부터 가끔 힘들 때 교회로 가서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있곤 했습니다. 세상이 어지럽다고 느낄 때, 내가 뭔가 해결하기 힘든 어려움에 봉착했다고 느꼈을 때, 극복하기 힘든 어떤 어려움이 나를 압도할 때, 나는 조용하고 다소 어두운 공간, 교회 아래층 교육관에 있는 긴 나무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고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이 어지러운 마음이 가라앉게 해 주세요.

마음의 평정을 찾게 해 주세요.

이 힘든 시기가 빨리 지나가게 해 주세요.

이 어려운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도록 나에게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시고 길을 인도해 주세요.

그리고 나를 넘어서 남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누구누구가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누구누구가 시련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세요.

누구누구와 사이좋게 해 주세요. 누구의 잘못이든 빨리 갈등과 오해를 넘어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알게 해 주세요.


기도 말미에는 늘 붙이는 습관적 문구가 있었지요.

나의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아무튼 나는 진정 나만을 위해 기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나의 이익만 찾고자 기도하지는 않았어요. 가령, 시험을 앞두고 기도할 때조차 무조건 내가 좋은 점수를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내가 공부한 것을 잊지 않고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지요.


또한, 내가 신의 은혜를 받는 만큼 남들도 아프지 않게 힘들지 않게 고통받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은 막연하게나마 나와 남을 모두 불쌍하게 보고 신의 자비를 구하려는 태도였을 것입니다. 가련한 중생으로서 신의 자비와 은혜를 소박하게나마 바라던 어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 방식으로 열심히 기도했던 것은 아닙니다. 내가 어릴 때부터 교회를 가긴 했지만 진실로 신을 믿고 따른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교회와 성직자와 신앙의 선배들이 원하고 가르쳤던 방식으로 기도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적 신과 신앙 방식을 나는 잘 따르지 못했고 어색하게 느꼈던 게지요.


기도할 때, 나는 그냥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했다고 해야 맞을 듯합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꼭 문제가 해결되었거나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뭔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개운해지고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지럽고 복잡한 마음을 다소 순화시키고 평정을 되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요.


나는 그것이 기도의 힘이고 기도의 효과이며 기도의 의미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전통적 기독교 신앙에 귀속되지 못했고 교회의 가르침과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나는 분명히 인간의 나약함과 나의 한계를 의식하고 있었고 누군가에게 은혜와 자비를 빌고 싶었던 것입니다. 확실하게 단언컨대, 나는 교회가 나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신과 신앙을 받아들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나에게 특화된 ‘기도’는 아주 이따금 낯선 곳에서 실시되곤 했습니다. 이렇게 여행 중에 또는 길을 가다가 낯선 교회를 맞닥뜨렸을 때 나는 마음이 내키기만 한다면 기꺼이 그곳으로 들어갔습니다. 낯선 장소 낯선 의자에 앉아서 기회가 되면 잠시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단 몇 분이라도 눈을 감고 앉아 있으면 몸의 피곤도 풀리고 어느새 기도를 하는 나를 발견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기도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괜스레 눈물이 약간 나고 마음이 떨렸습니다. (나이 들면 눈물이 많다더니 나도 딱 그 짝인 듯합니다.) 명동성당에서 누군가가 결혼식을 하는 도중에 나는 엉뚱하게도 그 커플을 축복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떠오르는 여러 문제들을 놓고 나를 위해 기도했던 것입니다.


내가 너무 힘들고 외롭지 않게 해 주세요.

내 여행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요.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요. 이 여행의 끝은 있는지, 또 있다면 어디일까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너무 힘들거나 슬프지 않고 행복하게 살도록 해주세요.

혹시라도 나로부터 피해를 입었거나 고통을 당했거나 나를 미워하게 된 사람들에게도 평화와 사랑의 은혜로 감싸주세요.


전혀 계획한 것도 아니었고 의도한 것도 없었는데 어느새 물씬 떠오르는 기도는 그 긴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어느 커플의 결혼식 덕분에 나는 명동성당 긴 의자에 앉아서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여간 정말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이 누구이든, 어떤 신이든, 또한 신이 있든 없든, 당신에게도 삶의 축복과 은혜가 내려지기를.

사정이야 어찌 됐든, 이미 내가 알게 된 당신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명동성당 내부 전경.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