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손수민, 〈캐치볼〉 Playing Catch
빨간 목도리를 한 여자와 검정 후드티를 입은 남자가 등장하는 화면이 있다. 남자가 있는 쪽에 놓인 헤드셋을 끼면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관람자는 남자의 입장이 되어 두 사람의 대화를 관찰하게 된다. 두 사람은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같은 공간에 앉아 정면, 아마도 카메라를 바라보며 대화한다. 마이크로 들어간 자신의 목소리는 헤드셋을 통해 작게 되돌아온다.
영상을 보기 전에는 헤드셋을 통해 상대(여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고, 화면 속 나(남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두 사람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 경험은 생각과 달랐다.
그래서 자리를 바꿔 보았다. 여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여자 화면 앞에 서 보기도 하고, 다시 상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남자 화면을 바라보기도 했다. 한참을 바꿔보다가 결국 여자의 음성을 들으며 남자를 바라보는 위치에 섰다. 애초에 헤드셋도 그렇게 놓여 있었다.
이 짧은 실험 속에서 내가 느낀 건, 대화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상대를 보며 말할 때 대화는 대개 설명하거나 설득하는 일이 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처럼 귀로는 상대의 목소리를 듣고, 눈은 나를 바라보며, 자막으로는 내 생각을 읽고 있으니 대화는 상대에게 묻고 답하는 방식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질문하고 답을 찾는 방식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상대가 아니라 나를 설득하는 대화가 되었다. 바꿔 말하면 나를 얼마나 잘 설명할 수 있는가? 상대가 내 말을 이해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는 대화는, 조금만 어긋나도 쉽게 무의미해진다. 반면 나에게 묻고 답한다고 느껴지는 순간, 대화는 갑자기 건설적인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상대의 목소리는 어떤 의미일까.
그건 내가 나와 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리 같았다.
깊이 있는 대화는 결국 나와하는 것이고, 상대의 목소리는 그 지점 바로 직전까지 나를 데려다주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