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를 미화하지 않는다

서른한 번째 이야기

by 이지

우리는 이기고 싶어 합니다. 최소한 지는 것 보다는 이기는 걸 좋아합니다. 논쟁에서, 관계에서, 일에서, 심지어 신앙 안에서도 이기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이긴 뒤에는 말이 많아집니다. 의미를 붙이고, 정당화를 하고, 자신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노자는 그 순간을 가장 경계해야 할 때로 봅니다.

"좋은 군대란 불길한 도구다."

이 말은 군대가 나쁘다는 선언이 아니라 승리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묻는 말입니다. 전쟁은 어쩔 수 없이 치를 수는 있어도 결코 즐길 수는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생명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자는 말합니다.

"이겨도 아름답다 하지 말라. 그것을 아름답다 여기는 자는 사람 죽임을 즐기는 자다."

이 문장은 아주 차갑게 들리지만 사실은 인간의 마음을 꿰뚫는 말입니다. 승리를 미화하는 순간, 우리는 상실을 보지 못합니다. 내가 얻은 것만 보고 누군가가 잃은 것을 잊습니다. 그래서 노자는 승리를 장례의 예로 치르라고 말합니다. 이겼을 때 기뻐하지 말고, 조용히 죽은 자의 자리에 서 보라는 것입니다. 그 침묵을 통과하지 않은 승리는 곧 자기 도취로 변합니다.

이 장에서 노자는 왼쪽과 오른쪽의 자리를 바꿉니다. 길한 일은 왼쪽, 흉한 일은 오른쪽. 전쟁은 흉한 일이므로 높은 장수가 오른쪽에 섭니다. 즉, 가장 높은 자리가 가장 슬픈 자리입니다. 이것이 도의 품격입니다.

진짜 강함은 이겼다고 외치지 않는 힘이고, 진짜 승리는 침묵할 줄 아는 절제입니다. 노자는 이긴 자가 아니라 멈출 줄 아는 자를 성인이라 부릅니다.

신앙도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싸움을 피하지 않으셨지만 무기로 싸우지 않으셨습니다.그분의 승리는 상대를 꺾은 승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어준 승리였습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이 말은 두려움의 경고가 아니라 삶의 구조에 대한 통찰입니다. 폭력은 언젠가 반드시 자기 자신을 향해 돌아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승리의 깃발이 아니라 사랑의 장례식이었습니다. 거기에는 환호가 아니라 침묵이 있었고, 정복이 아니라 눈물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싸움입니다. 그 싸움에서는 이겼다는 말보다 “견뎠다”는 말이 어울립니다.

복음의 승리는 항상 슬픔을 통과합니다. 눈물을 건너가지 않은 부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에 선 사람은 이기고도 웃지 않습니다. 그는 승리의 자리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입니다.


사유의 한마디

승리는 기쁨으로 소유할 것이 아니라 슬픔으로 통과해야 할 사건입니다. 이겼다고 웃지 마십시오. 사랑은 이기는 힘이 아니라 멈추는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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