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증은 착각을 교정할 수 있다.
고등어구이는 별미였다. 어찌만든건지는 모르겠지만, 노인께서 직접 만든 증류주도 한잔 곁들이니 금상첨화였다. 준비하고 굽는데에도, 먹은 후에 정리에도 온 정신이 쏠리는 일이었다. 생각은 적었지만 오히려 더 살아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정리를 마치니 노인이 호숫가로 산책을 청했다. 우리는 함께 호숫가로 갔고, 한참을 말없이 호수를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어느샌가 노인이 말을 꺼냈다.
노인: 아까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해볼까? 공리의 간극은 어떤 것으로도 메울 수가 없다네. 공리 자체는 논리적인 설득에 의해 바뀔 수가 없어. 개인의 공리가 평생 유지되지는 않겠지만, 그 변화는 논증에 의해 촉발되지는 않을 걸세.
나: 그러면 독단적인 주장은 그냥 논증이 필요 없는 것 아닌가요? 공리에 합치되면 받아들일 테고, 그렇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을테니까요.
노인: 그렇지만은 않네. 어떤 사실에 대한 명제 또는 독단적 주장은 공리로부터의 거리를 가지고 있어. 물론 달리 표현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거리라고 한 걸세. 대략 말한다면, 공리에서부터 몇 단계의 논증으로 거쳐야 해당 주장에 도착할 수 있는지로 정의해볼 수 있겠지. 공리로부터의 거리가 가까운 경우 대부분의 사람은 논리적 오류 없이 공리에 합치되도록 쉽게 판단한다네. 직관이 논리와 잘 합치된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공리로부터의 거리가 먼 주장은 그렇지 않지. 수학에서도 그렇지 않나? 유클리드기하학의 초반부는 직관적으로 와닿지만, 후반부의 증명들은 앞에서부터 쌓여온 증명을 머릿속에 갖고 있지 않으면 공리들에 합치되는지 알기가 쉽지 않지.
나: 생각해보니, 과학공부란게 다 그랬던거같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기본 공리들을 중점적으로 잘 가르쳐주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나중에야 따로 알게됐던것같네요. 물리학 공부했던 과정들이 생각나네요.
노인: 그래, 그렇기에 논증은 의미가 있다네. 왜냐면 상대방이 어떤 주장에 대해 자신의 공리들과 합치되지 않는다고 착각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야. 혹은 합치되지 않는 것을 합치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수 있지. 논증은 이러한 착각들을 교정해줄 수 있네. 논증이 갖는 가치는 여기에 있지. 내 독단적 주장에 동의할 수 있는 공리를 가진 사람이 만약 착각때문에 반대하고 있다면, 교정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는걸세.
나: 음.... 참 신기하네요. 듣도보도 못한 말인데 듣다보면 딱히 반대할 말이 생각이 안난단 말이죠. 동의된다고 하는게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저도 선생님 주장에 동의할 수 있는 공리를 가지고 있는걸까요?
노인: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하하하.
노인은 잠시 또 말없이 호수를 보며 걸었다. 걷다 보니 새로운 생각이 들어 나는 입을 열었다.
나: 그런데, 어떤 독단적 주장에 동의하기 위해서 꼭 완전히 같은 공리들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노인: 그렇지. 여러가지 주장을 펼쳐나가면서 논의를 발전시키려면 공리가 전체적으로 공유돼야 하겠지만, 개별적 주장들에 대해서는 다른 공리를 가지고도 동의에 이를 수도 있을걸세. 그러나 대부분은 공리를 일부라도 공유할 거야.
나: 이해되네요. 이쯤 되니 과학 연구실은 과학지식이 많은 학생을 뽑아야한다, 이 주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싶어지네요. 저는 이 독단적 주장에 을 구성하는 공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근본적으로 이런걸까요, 어떤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 지식이 많아야 한다. 부가적으로, 일을 잘 할 사람을 뽑아야한다.
노인: 적절한 정리같군 그래. 내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여기라네. 어떤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 지식이 많아야 한다. 정확하게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내지는 최상위로 중요한 요소다, 이 정도로 얘기해볼 수 있겠군?
도대체 당신은 어떤 공리를 가지고 있는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