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관측 이래 제일 뜨거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며
대합실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광명역에서 서울보다 더 뜨거운 포항을 향해 기차를 탔다.
기차 안에는 친구들끼리, 가족들끼리 여행을 가는 듯
들떠있는 분위기의 사람들도 있었고,
일상적인 업무나 방문을 위해 기차를 탄 것처럼 보이는
무심한 표정의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창밖으로 스쳐 가는 산의 색깔들이
겨울의 갈색에서, 봄의 연두색을 지나,
아주 진한 녹색을 띠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그렇게 여름이 왔고,
2024년의 절반도 훌쩍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어젯밤 열대야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눈이 스르륵 감기고 있었다.
기차 안의 시원한 에어컨과 적절한 소음을 만나서
잠이 들었다 깼는지를 반복하다 보니
오송, 동대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이제 다음 역은 포항역이었다. 종점이다.
포항역에서 내린 사람들은
모두 여행을 온 사람들처럼 보였다.
간혹 해병대 모자를 쓴 군인들이 보였지만
대부분 선글라스에 형광색의 티셔츠,
어디로 가야 맛있는 물회를 먹을 수 있다는 등의 소리가
플랫폼을 지나, 역 대합실을 지나
택시 정거장까지 이어졌다.
택시 정거장에서 10분 정도를 기다리다가
택시를 타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포항시청 가주세요."
60은 넘기신 것 같은 택시 기사님은
대답도 안 하시고 운전을 시작하셨다.
경상도 남자의 우아함.
일주일 전쯤 포항역에서 포항시청으로 택시를 타보았었다.
시내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KTX 역에서
포항시청까지는 속도를 내서 달려도
15분은 걸리는 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네비게이션도 안 켜고 달리시는 기사님이 어련히 알아서 데려다주시겠지!'
하며 다시 몸을 뒷좌석 시트에 기대면서 눈을 감았다.
'오늘 발표는 잘 돼야 될텐데...'
'평가위원 중에 젊은 분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전부 4팀이 접수했다고 하는데, 지역회사가 몇 개나 들어왔을까...'
'이번에 일이 잘 안되면, 어떤 일을 찾아서 해야 하나...'
'발표 시간까지는 아직 3시간 남았으니까, 시청 앞에 도착해서 점심 먹고 발표 준비를 해야겠다'
눈은 감고 있지만,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이고 !"
잘 달리시던 택시 기사님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셨다.
"아, 이거 큰일 났네. 딴생각하다가 저쪽 길로 빠져야 했는데, 못 가버렸네.
손님, 미안합니다. 급하세요?"
"아니요. 천천히 가셔도 돼요. 얼마나 돌아가나요?"
기사님은 그때야 네비게이션을 켜고, 포항시청 가는 길을 확인해 보았다.
"한 4km 앞에서 돌아가면 되네요. 멀리 가지는 않아서 다행이네. 얼른 갈게요."
그리고, 갑자기 기사님한테 전화가 왔다.
"아, 이거 미안합니다. 꼭 받아야 하는 전화라서.... 잠깐만 실례할게요."
기사님에게 걸려 온 전화는 기사님의 형님이 거신 전화였다.
자세한 사연은 모르지만, 병원에 입원하신 형님이 치료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상태가 많이 좋아지셔서
동생에게 처음으로 전화를 하신 상황인 듯했다.
걱정과 안부를 서로 묻는 통화는 5분 정도 이어졌다.
형님과의 전화를 끊은 후 기사님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방금 전화한 사람은 우리 형이에요.
얼마 전에 멀쩡한 사람이 간암 3기 진단을 받아버렸어요.
동네병원에서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서울에 있는 병원 여러 군데 알아봤는데
다들 안 된다고 하다가, 겨우 대학병원 한 군데에서 받아줘서 거기서 수술했어요.
수술은 잘 돼서 항암치료 하고 있었는데
병원에서 폐렴에 걸려부렸네.
요즘 의사들이 파업하는 바람에, 아무리 큰 병원이라도 이게 협진이 안 된다네요.
그래서 폐렴 치료를 같이 못 받게돼서, 사람이 너무 힘들어진 거라.
식구들이 이러다가 사람 죽겠다고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다 물어봤는데
창원에 있는 병원에서 협진이 된다고 해서
환자를 데리고 보름 전에 창원으로 데리고 왔어요.
머, 작은 병원이니까 이렇게 저렇게 해준다고 해서 내려오긴 했는데
처음에는 못 미덥다가, 그래도 이렇게 좋아졌다고 전화도 하니 반갑네요."
"그러게요. 요즘 병원 가기 힘들다고 하고, 큰 수술은 엄두도 못 낸다고 하던데
그래도 잘 되셨네요."
"그러게요, 이게 뭔 일인가 싶어요. 아픈데 의사가 없어서 병도 못 고친다고 하고.
대학병원에 가도 안 된다고 하니.
우리도 온갖 빽을 써봤는데, 별수가 없더라구요.
그런데, 의사나 병원 사정을 보면,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나라가 어쩌려고 이러는지."
택시는 어느덧 건물들이 많은 곳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시청까지 가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기사님, 그런데 포항이 물회가 유명하잖아요.
제가 시청 근처에서 점심때 물회를 먹고 싶은데,
어디 식당이 유명해요?"
"어허, 시청 앞에는 유명한 집이 별로 없는데,
내가 한 군데 알고 있어요. 시청 바로 앞이에요."
"그러면, 그쪽에서 세워주세요."
"거기가..... 정확하게 생각이 안 나는데, 가서 보면 알아.
내가 길 잘못 들어서 미안하게 됐는데
괜찮은 식당 알려줄게요"
시청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사님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여기 어디였는데...."
시청 앞 블럭에서 우회전을 하시고, 좌회전, 다시 우회전을 하시더니
'여기 근처인데.....'
다시 한 바퀴를 크게 도신다.
"그게... 여기 있었는데, 없어졌나 보네.
병원 뒤쪽에서 돌아서 나오면 되는데.. 여기 맞는데"
"말씀하신 식당이 없어졌나요?"
"네, 그런가 봐요. 어허... 거기가 괜찮은데...
저기, 저기도 하나 있네. 저 집도 이 동네에서 오래됐어요.
시청 앞에서 오래된 집은 맛있을 거에요.
여기서 내리면 되겠네."
기사님은 시청 건너편 도로에 있는 물회 집 앞에서 세워주셨다.
시청으로 오는 길도 놓치고, 맛있다고 하던 식당도 없어졌는데
'이분 말을 믿어도 되는 건가' 하며 식당 간판을 바라보았다.
그때, 길 건너편에서 오던 몇 명의 사람들이
"물회 3개요"라고 소리 지르며 식당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나도 얼른 식당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