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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그린 Jul 25. 2024

동실아, 잘하지 못해도 그냥 해 2

나의 나와 대화 나누고 응원 보내기

요즘 '동실'이의 속마음을 알고 싶어서 대화를 해봅니다.

(동실이는 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니에요. 동실이의 소개는 1화에서 만날 수 있어요.)













"동실아, 요즘 뭐 할 때 재밌어?"




'음... 재미?

재미라는 게 깔깔깔 웃고 신나는 걸 말하는 거라면 기억나지 않는데?'




"그럼 요즘 꾸준하게 하는 건 뭐야?"




'나는 사진 찍고 나의 온라인 공간에 내 생각을 글로 적을 때 입꼬리가 올라가.

산책할 때 내 눈에 예뻐 보이거나 특별한 건 다 사진 찍어.

새로운 물건을 만났을 때 사진 찍고, 맛있는 음식도 당연히 사진 찍어.

여행을 갔을 때 나는 정말 바빠.

눈에 보이는 새로운 풍경을 가슴으로 느껴야 하고, 뒤돌아서면 바로 싹 지워지는 몹쓸 기억력 때문에 특별한 장면들은 최대한 사진으로 담으려고 하지.


그렇게 찍어둔 사진들이 나의 공간에 올려지고 한 편의 글로 변해.

그런데 사진은 찰칵찰칵 금방 찍는데 비해서 글로 바꾸는 일꽤나 오래 걸리더라고.

지금도 사진 폴더에는 정성 들여 찍어둔 수천 장의 사진들이 잠자고 있어. 그 사진들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급해져.'




"동실이는 요즘 사진 찍고 글 쓰는 걸 꾸준히 하고 있구나! 그 일들이 좋은가보다.

뭐든 꾸준히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동실이 참 멋지네!"




'그래? 멋지다고 해줘서 고마워. 힘이 난다.

그런데 요즘 가끔은 그 일들을 할 때 내가 하찮게 느껴지는 날들도 있어서 좀 속상해.

나는 나랑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과 만나서 생각을 나누면 더 재미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어.

그동안 내가 해온 것들에 의미가 있다고 믿었고 나름 자신이 있었는데 말이야.

다른 이들이 해온 것들을 확인하고 그들의 대화 수준을 듣고는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긴장되더라고.

그들이 해오던 거창한 것들에 비해서 나의 것은 어쩐지 서툴고 수준이 안 맞는 것 같아서 숨고 싶었어.

그들의 언어 수준에 비하면 나의 언어는 어린아이 같았지.

그래서 나는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았어.

말을 적게 하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을 때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어.

내 것을 보여 달라고 하면 겸손한 척 보여주지 않고, 그들이 인정할 만한 다른 것을 보여주며 비슷해 보이려고 애썼어.

나는 나와 내가 해온 것들을 전부 부끄럽게 생각했나 봐.

그런데 그런 날들이 길어지니까 그들과 섞여 있는 곳에 진짜 나는 없더라고.

나는 한동안 속상하고 비참했어. '

 




"그랬구나. 그들과 만났을 때 그리고 그들의 대화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동안에도 마음이 힘들었겠다.

동실이는 다른 이들의 것들이 더 훌륭해 보이고 그들의 언어들이 수준 높아 보여서 겁이 났구나."





'응... 나는 그렇게까지는 할 자신도 없고 비슷해질 수도 없을 것 같았어.

그렇게 속상하고 비참해질 바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서만 지내고 싶었어.'



"동실이가 마음이 속상해서 마음 아프지 않게 하려고 혼자 있고 싶었구나.

그래, 마음이 편해지려면 그 방법도 나쁘지 않지."



' 응, 한참 동안 혼자 지내면 나는 다시 밝아져서 원래의 나로 돌아오더라고.

그런데 정말 이상해. 종류를 알 수 없는 어떤 자신감이 어느 정도 모아진 어느 날이 되면 또 그들과 만나서 대화가 하고 싶은 거야.

이제는 전보다는 괜찮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동실이와 대화를 해보니 살짝 느낌이 오는데?

동실이는 다른 이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스스로와 비교를 했던 것 같아.

그들이 동실이에게 상처를 주려고 나타난 것이 아니고, 상처 주려고 어떤 말을 한 것도 없는 거 같아.


단지 그들과 비교하면서 마음에 상처를 입히게 한 것은 동실이의 기준으로 만든 생각들이지.

동실이는 스스로 상처를 받아 멍들고 살짝 피가 났던 것 같아. 그리고 그 상처들이 아물면서 전보다는 단단한 마음을 가지게 된 거 같은데. 어때?"




'아! 대화하고 보니 맞는 것 같아.

내가 살면서 정해둔 기준의 생각들이 나를 아프게 한 건가 봐.

나이가 들면서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고 기준선을 두는 것 같아.

그러다 다른 이들의 준과 나를 비교하며 깜짝 놀라 당황하고 위축됐었나 봐.'





"나의 나, 동실아! 기죽을 필요 없어.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늘 하던 대로 그냥 해.


나보다 잘하는 사람 눈에는 그저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다 아예 안 해본 사람 눈에는 괜찮아 보일지도 몰라.


이 세상에는 우주 먼지만큼 다양한 취향들이 있는 것 같아.

같은 취향 속에 또 세세한 감성이 나뉘고 그만큼 다양해지고.


그 많고 많은 먼지 중 하나 정도는 동실이의 것을 좋아해 줄 거야.

난 믿어. 그리고 그 먼지 중 하나가 나야.

그러니 오늘도 동실이의 느낌 가는 대로 그냥 해.


그렇게 매일매일 그냥 하다가 보면

우주의 모든 기운이 너에게 모아지는 특별한 어느 날,

이거구나! 싶은 무엇을 만나게 되는 거야.


이번 회차의 삶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또 다른 모습의 동실이가 그 특별한 날을 만나게 될 거야.


살아 있는 내내 피할 수 없이 상처는 또 받게 될 거야.

하지만 다행인 건 그만큼 더 강해질 거라는 거!

나의 동실아, 지금처럼 힘내서 평범하게 그냥 하자!"









나의 나 동실이와 속마음 대화를 나누고 보니 마치 정신과 상담을 받은 듯 조금 마음 치유가 되었습니다.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을 그냥 두면 답답함과 우울함이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는데요.


이렇게 동실이와 대화하면서 글로 질문하고, 답변하는 도중에 무엇이 속상함의 원인이었는지 어떻게 힘을 낼 수 있을지 자동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마음은 내가 제일 잘 알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신과 전문의나 전문 상담사도 나의 입에서 나온 말들로 재해석해서 치료와 상담을 하는 것이겠지요.


가벼운 마음의 상처는 내 속의 동실이와 대화하며 치유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갖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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