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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그린 Oct 16. 2024

깊은 속마음은 그냥 넣어둬

동실아 그동안 잘 지냈니?

(동실이는 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니에요. 동실이의 소개는 1화에서 만날 수 있어요.)












" 안녕? 나의 동실아!

너무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는구나. 미안.

내 안에서 너는 계속 뭔가를 말했고, 원했고, 수시로 소용돌이치고 있단 걸 자주 느꼈어.


그런데도 모르는 척, 안 들리는 척

하루만 이틀만 이번 주만 한 주만 더

이러다가 어느새 한 달 하고도 6일이 지났네.


예전에는 하루는 느리고 일주일은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하루도 참 빨라.

뭐가 이렇게 빠듯한지...  

   


내 깊은 속 안에서 살고 있는 동실아,

너의 현재 상태와 바람을 잘 듣고 반영하며 살아간다면 나는 하루를 끝마칠 때 그리고 아주 먼 미래에 후회 없는 삶이었다 말하게 될까?


현실 속의 나는 작은 목표라도 발견하면 그곳을 향해 달려가느라 너의 말들이 다 흩어지고 말아.

그리고 목표에 도착했는데도 기쁨은 잠시뿐이고 뭔가 허전하게 놓쳤다는 기분을 알아채지.

생각해 보면 늘 너야.

너를 모른 척하고 살면 나는 꽉 채워지지 않아.


한 달 동안 바쁘게 산듯 하지만 너를 챙기지 않은 한 달은 허전해.


그동안 나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었니?

하고 싶거나 바라는 거 내가 모르는 척했던 것들이 뭐였을까? "



 





'안녕! 드디어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구나.

나를 찾아주기를 계속 기다렸어.

난 네가 불러주지 않으면 점점 작아지거든.

지금도 이미 꽤 작아졌어.


나는 생각이 많고 바라는 것도 많아.

그래서 순간순간 너에게 전달하지만 전해지지 않으면 그대로 사라져 버려.

그럼 나도 기억이 안 나.

그냥 다음 생각과 바람을 말할 뿐이야.

그렇게 내 말을 듣지 못하고 찾지 않으면 난 자꾸 작아지고 전달하는 힘도 약해져서 점점 더 너에게 알려주기가 어렵게 되지. 하지만 이렇게 다시 나를 찾아주고 소중하게 불러주니 조금씩 힘이 나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거 바라던 게 뭐였냐고?

예전 꺼는 기억이 안 나.


그런데 어제의 마음과 바람은 이거였어.

너에게 전달했는데 조금은 들렸을까?'







"맞아! 사실 어제 동실이의 소리가 들렸어.

그래서 이렇게 다시 글을 쓰고 있기도 하지.

어제 지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네가 그랬어.


{ 너의 마음을 공감해 줄 거라고 기대하며 너무 깊은 속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거의 흡사한 상황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기억이 있어야 진심으로 공감하며 이해할 수 있는 거라고.

비슷한 경험이 전혀 없거나 상대가 털털한 사람이라면 민감하게 여겨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보게 될 거라고.}


이렇게 말해준 거 맞지?

안 그래도 만나고 돌아가는 뒤가 찜찜하고 기분이 안 좋았는데 네 이야기가 들려서 다시 나를 돌아보게 되었었지."








'힘 없이 돌아가는 너에게 얘기해주고 싶었는데 잘 전달 됐었구나. 다행이야.

한동안 분량 조절 잘해서 대화하던 너인데 어제는 상대에게 너를 다 보여주려고 하더라.

그런데 사실 그건 내 바람이 들어가서이기도 해.


나는 늘 멋진 어른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이 있거든.

너와 나를 잘 이해하고 공감해 주며 현명한 길을 안내해 주기도 하는 너그러운 큰 어른 말이야.


그래서 나이가 나보다 조금만 많으면 자꾸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겨.

혹시나 이분이 그런 어른일까 싶어서 기대하고.

이런 나의 바람이 너도 모르게 전달되었을 거고.

넌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상대에게 실망하고 본인에게는 후회를 남기며 한숨을 쉬었던거야.


나는 이미 어른이지만 나보다 더 큰 어른이 나를 품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어.


때로는 위로받고 조언을 구하고 싶고, 진심이 담긴 멋진 칭찬과 격려도 받고 싶어.

그래서 나보다 나이 많은 분만 만나면 늘 기대했다가 곧바로 실망하곤 했어.


어제 너에게 전하고 싶던 말은 깊은 속마음을 말로 다 전달하지 말라는 것과 나의 오랜 바람에 대한 것이었어. 미안해 너에게 혼란을 줘서.'







"내가 그래서 나이 많은 분만 보면 강아지처럼 예쁘게 보여 그의 손길을 받고자 노력했었구나.

그러다 내가 생각한 만큼의 성품이 아님을 파악할 때는 이미 나를 보여주고 난 후여서 난감할 때가 많았거든. 하하! 알았어. 이제부터는 집으로 돌아갈 때 찜찜하지 않도록 동실이 말대로 깊은 속내는 적당히 내비치는 걸로 할 게.


나는 이미 나이 많은 어른이고, 동실이도 일찍부터 성숙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둘 다 누군가의 품에 기대고 싶었나봐.


땅속에 뿌리는 제법 잘 내렸는데 이따금씩 비바람 불고 태풍 오고 눈 맞고 피할 곳 없는 강한 햇볕아래에 버티다 보면 우리는 바랐던 거야.


누가 나 좀 받쳐주기를, 차양막을 설치해 주기를, 따뜻한 뜨개옷으로 감싸주기를...

길을 걷다 보면 그런 대접을 받고 있는 나무가 있기는 하더라.

그런데 그러지 않고도 홀로 우뚝 당당히 서있는 나무가 더 많았어.


나는 오늘 동실이의 바람을 듣고 차차리 당당히 서 있는 나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


그리고 내가 좀 더 멋지게 나이 들어서 누군가의 큰 어른이 되어줄래. 이제 어른 찾기는 그만하자. 동실아. 우리가 하자. 그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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