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의자 생일
불과 5년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정겨운 의자가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사이, 나는 그 의자에 약국에서 사 온 커다란 방석을 깔고 앉아 불편함을 참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시간의 무게를 견디려고 사 온 방석, 가운데가 폭신하게 들어간 둥근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불편함을 더 참을 수 없이 켜졌고 결국 나는 결심했습니다. 새 의자를 하나 사자고 말입니다. 새 의자를 사려고 생각하니 지인이 해준 말이 생각났습니다. 인터넷에서 저렴한 의자를 검색해서 사려 했는데,
“의자는 꼭 앉아보고 편안함을 느낀 뒤에 사야 한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새기며 나는 가구매장이 모여 있는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고가의 의자는 나에게 너무 과분했기에 부담 없는 가격이면서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의자를 찾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바람은 산뜻했고 3월 19일, 결혼기념일이라는 뜻깊은 날이었지만, 나는 그날의 의미를 미처 챙기지 못했습니다.
출근해 컴퓨터 앞에 앉아 달력을 보며,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루 대부분을 컴퓨터와 마주하고 보내니 편안한 의자는 더 사치가 아닌 내게 필수였습니다. 나는 어떻게 이렇게 글 밭에 머물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나날 속에서 글과 접하는 일이 점차 부담스럽지 않은 놀이가 되었음을 느꼈습니다. 한 줄의 글이라도 읽고 한 줄의 글을 쓰는 일이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조금 못 쓴다고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고, 부담 없이 마음에 담아 놓은 일을 글로 풀어냅니다.
마치 어린 시절 일기장을 들여다보듯, 나 자신의 일기는 없지만, 자녀들의 일기를 모아 놓아 언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옆지기는 나보다 한 발 앞서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답니다. 결혼기념일을 생각하며, 나에게 의자를 사주려고 했던 것이지요. 내가 쓰던 의자에 깊숙이 앉지 못하고 끝부분에 걸터앉아 있으니 불편해 보였던 게지요.
수년 전 쓰던 의자가 자꾸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그 의자는 이제 볼 수 없고, 더 생산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딸아이 결혼 당시 그 의자를 선물했는데, 집에 가도 더는 의자가 보이지 않았답니다. 그때는 컴퓨터가 생활에 자리 잡지 않았고, 의자에 앉아한 코 한 코바늘로 뜨개질을 하던 나날이었습니다. 몇 시간이고 앉아 있어도, 전혀 불편함이 없던 시절이었지요. 아이들이 쓰는 컴퓨터 옆에도 얼씬거리지 않았고, 행여 잘못해 고장 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에 손을 대지 못했던 날들이 지금은 그리움으로 남았습니다.
그때는 아이들과 함께 어우렁더우렁 행복했으니까요. 이렇게 세월이 흘러 이 나이에 컴퓨터를 쓸 줄 몰랐습니다. 새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한 줄 한 줄 일기처럼 글을 쓰는 자신을 마주합니다.
때로는 연필로 그림을 그려 가며, 조용히 나를 기록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습니다. 글을 쓰면 나를 숨길 수 없습니다. 거짓된 글을 쓸 수 없기에, 그 사람의 진실만이 글 속에 선명히 드러난다는 사실을 압니다. 아무리 나의 미숙한 허점을 숨기려 해도 글은 나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맙니다. 나를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지키려면 오히려 글을 쓰지 말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까지 이릅니다.
하지만 결국 글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진실을 말하게 합니다. 의자가 없으면 어느 곳에서도 편하게 지낼 수 없다는 것을 몸소 느낍니다.
내가 머무는 곳에는 언제나 의자가 많습니다. 시골집에도 의자가 여러 개 있습니다. 가벼운 플라스틱 의자는 마당에서 쓰이고, 밭에서 채소를 뽑아와 다듬을 때도 쌓아 올릴 일거리를 올려놓을 의자. 다듬은 찬거리를 담는 대야를 올려놓는 의자. 적어도 세 개 이상의 의자가 있어야 일을 원활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 창고에는 의자를 놓을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우리 집 창고만의 특별한 곳입니다.
마치 집 안에서 따뜻한 숨결 같은 공간이지요. 평상을 펴 놓아도 의자는 항상 필수입니다.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의자, 의자가 없으면 방 안에서도 그저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누가 의자를 만들었을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무너진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것은 거창하지 않고, 값이 저렴한 의자, 그 안에 담긴 위로와 희망은 내 삶의 이야기를 앨범 속 사진을 보듯, 깊은 서랍에 쟁여놓은 이야기를 꺼내 보려 합니다.
의자
시장 골목, 나무 향기 깃들어 있는 곳
편안함을 따라 걸음 옮기며
부담 없는 마음으로
나에게 어울리는 그곳을 찾아가 갑니다
결혼기념일, 잊고 지낸 하루
달력 위 날짜 하나가
내게 속삭여 주듯
잔잔한 추억을 불러일으켜 줍니다
엉덩이 깊숙이 앉던 옛 의자,
못다 한 손길에 마음 묻고
딸아이 곁에 남겨진 조각은
흔적처럼 아련히 남아 있있습니다
글 밭에서 만난 옛 추억들
연필과 종이 사이에서 숨 쉬며
솔직한 마음 한 자락씩 펼쳐내어
글 속에서 다시 나를 찾아갑니다
의자, 나의 작은 보금자리
무너진 마음 일으켜 세우는
작지만 숨을 쉬는 깊은 위로
오늘도 조용히 나를 감싸줍니다
밭에선 플라스틱 의자 한편,
채소 다듬는 손길 머무는 자리
집 안 곳곳, 일상의 쉼표 되어
나의 삶에 따뜻한 다독임으로
누군가 만들어 준
편하게 쉴 수 있게 해 준 공간
감사의 마음 담아 오늘도, 내일도
의자에 조심스레 앉아
세월을 곱씹으며 고마움을 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