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곡리
왜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그냥 이유도 없이 어렸을 적 고향마을이 미치도록 그리운 날 말이다. 아마 각박한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입거나, 혹은 급하게 변해가는 세상에 미처 적응하지 못하여 루저가 돼버렸을 때, 그래서 아무런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바로 그런 날이지 싶다. 그러나 어쩌랴, 내가 자란 마을은 도시가 되어버려 더 이상 고향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파트 단지가 돼 버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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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아무 생각 없이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회인면 용곡리다. 피반령과 대청호 사이에 꽁꽁 숨어서 거센 도시화의 물결도 미치지 못한 곳, 그래서 옛날 농촌마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쨍하고 해가 내리쬐는 날 보다는 흐리거나 안개가 자욱한 이른 아침, 혹은 저녁 무렵이면 더 좋겠다. 옛 모습에 몽환적인 분위기가 더해져서 잊혔던 고향의 추억들이 솔솔 피어오를 것이다.
용곡리는 세 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대청호 옆, 서당이 있는 마을이 1리요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3구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쇠푼이라고 부르는 2리다. 1리에서 좁은 도로를 따라 왼쪽길로 접어든다. 천연기념물 고욤나무가 있는 곳이다.
왼쪽 3구를 찾았다. 대부분 오래된 집이지만 비교적 단아하다. 집집마다 꽃을 가꾸거나 오목조목 가꾸어놓아서다. 막다른 시골마을이니 외부인의 출입은 거의 없을 테고, 주민들도 대부분 노인일 텐데 뜻밖에 깔끔한 느낌이다. 적당한 곳에 차를 대고 마을을 살펴본다. 함부로 남의 집을 들여다보기가 좀 망설여지긴 하지만, 사실 크게 걱정할 건 없다. 대부분 연로하고 사람이 그리운 분들이라서 젊은이 한 두 명이 마을을 어슬렁거리거나 카메라를 꺼낸다고 크게 역정 내실 일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전동 카트를 탄 할머니 한 분이 밝은 표정으로 슬금슬금 다가오신다. 인사를 건네니 순식간에 동네 사정과 자신의 80 평생을 술술 풀어내신다. 나중에는 사양하는 나를 그예 집 안까지 초대해서 달달한 커피 한잔을 정스럽게 담아내신다. 어쩜 처음 보는 외부인에게 이리 밝고 친절하신지 놀랍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리가 불편하시단다. 불편한 다리로 농촌 살이가 쉽지 않았을 텐데도 워낙 웃음이 많고 긍정적이시다. 방 한구석에 오래된 사진들이 걸려있다. 지금보다 훨씬 젊은 어머니가 당당하고 인자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신다. 순간 3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얼굴이 겹쳐 보인다. 평생 가난과 노역 속에서도 당당하게 자식들을 길러내신 어머니, 이제는 기억에서도 희미해진 어머니를 이곳에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