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J.M 바스콘셀로스
새해의 첫 달이 속절없이 저물어 간다. 본래 성격이 느긋한 편인 나는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당최 따라잡을 수가 없다. 요즘 SNS에서는 10년 전 사진을 공유하는 게 유행이라던데, 사실 나는 2016년,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 벌써 10년 전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그 시절 나는 지금의 내 나이가 되었을 때의 모습을 꽤 구체적으로 상상하곤 했다. 로맨스 소설처럼 뜨거운 연애를 한다거나, 즐겨 듣던 힙합 음악의 가사처럼 거칠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모습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정작 28살의 평범한 청년이 되어, 이렇게 현실적인 고민을 안고 살아가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크게 달라진 건 없는 듯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활자를 사랑하고, 힙합의 비트에 가슴 뛰며, 현실을 책임지는 삶보다는 꿈을 좇는 삶을 동경하는 '몽상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주 사이, 이제는 과거의 몽상가인 나를 놓아주어야 할 때가 왔음을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다.
최근 설계와 포트폴리오 작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글을 읽을 시간도, 쓸 시간도 없었다. 원래 퇴근길 전철은 나에게 유일한 독서의 공간이었지만, 최근 내 손에는 책 대신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지금은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는 자극적인 영상들. 그것이 내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아니 어쩌면 알기 때문에 나는 멍하니 액정만 바라보았다.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었으니까. 알고리즘은 더욱더 자극적인 것들을 내어주었고, 그 자극조차 무뎌진 뒤에는 눈을 감은 채 그저 전철의 진동에 몸을 맡겼다. 여전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렇게 텅 빈 머리로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어김없이 공허함이 밀려왔다. 내가 인생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죄책감, 무언가 소중한 것을 어딘가에 두고 온 것만 같은 상실감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2주를 보냈다. 무기력은 필히 자격지심과 자기비하라는 불청객을 동반한다. 동료들보다 설계를 못 한다는 열등감, 성과를 위해 비열한 방법이라도 쓰고 싶은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 그리고 결심한 것을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나를 휩쓸었다. 크리스천으로서 이럴 때일수록 기도를 해야 함을 알지만, 무력감이라는 악마는 그 작은 기도조차 막아선다. 인간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다.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일지 몰라도, 유독 예민한 기질을 가진 나는 평소에도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몽상가답게 나만의 상상 속으로 도망치곤 했다.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속 다섯 살 제제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나무, '밍기뉴'가 있었다. 가난과 학대라는 차가운 현실에서 유일하게 그를 숨겨주던 환상의 세계. 나에게도 그런 밍기뉴가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막연한 '꿈'이 나의 밍기뉴였고, 최근에는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었던 '스마트폰 속 영상'들이 나의 밍기뉴였다. 제제가 나무 등걸에 기대어 현실의 아픔을 잊으려 했듯, 나 역시 멍하니 액정을 바라보며 '설계가 잘 풀리지 않는 현실', '취업이라는 높은 벽'을 잠시나마 잊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무는 나무일 뿐 현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지 못하듯, 나의 도피처 또한 나를 구원해주진 못했다.
이 깊은 무기력의 늪에서 나를 건져 올린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그 느낌, 그 온기 덕분에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소설 속 제제 역시 뽀르뚜가 아저씨를 만나 비로소 '사랑받는다는 것'을 깨닫고 성숙한 인간으로 변화했다. 나에게도 수많은 뽀르뚜가가 있었다. 평소 본인답지 않게 나의 눈치를 살피며 걱정해 주시는 아버지, 매일 힘내라고 응원해 주시는 어머니,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여자친구, 너는 뭐라도 될 거라고 확신해 주는 친구들, 그리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는 동료들까지. 내가 과분할 만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다시 책상 앞에 앉을 힘이 생겼다.
소설의 끝자락, 제제는 더 이상 밍기뉴와 대화하지 않게 된다. 나무가 죽어서가 아니라, 제제가 자라버렸기 때문이다. 밍기뉴가 평범한 나무로 보이게 되는 그 순간, 제제는 유년 시절의 환상에서 걸어 나와 비정한 어른들의 세계로 발을 딛는다. 나에게도 그 순간이 왔다. '설계는 어렵고, 세상은 차갑다'는 핑계 뒤에 숨어 몽상만 하던 나의 밍기뉴를 베어낼 시간이다. 이제 나는 상상 속에서만 행복을 느끼는 몽상가가 아니라, 냉정하고 두려운 현실 속에서도 서툴지만 묵묵히 행복을 찾아가는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한다. 밍기뉴와의 작별은 슬프지만, 그 이별을 겪어내지 않고서는 결코 뽀르뚜가 같은 '진짜 어른'이 될 수 없음을 이제는 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릴 적에는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간다고 불평했지만, 지금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할 겨를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삶에 대해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어찌저찌 나아갈 수밖에 없다. 줄 건 주고, 취할 건 취해야 한다. 인생에 지름길이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