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레라> 어른의 자리

- 심덕출 씨의 '라떼는 말이야 '

by 톺아보기

가끔 어머니을 찾아뵌다. 이젠 연세가 드셔서 바깥 출입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시니 드시고 싶은 것을 사다 드리고, 집안 이곳저곳을 치워드리는 게 내 일이 됐다. 그러면 어머니는 '용돈'을 주신다. 그리곤 돌아오는 길에 다시 전화를 하셔서 돈을 넉넉하게 못주셨다며 안타까워하신다. 뭔가 어머니가 생각하는 '어른'의 몫은 '돈'을 주는거라고 생각하시는 듯하다.



나이가 들면 생산적인 삶에 '합류'할 여지가 줄어든다. 당연히 한참 일을 하며 살아가는 세대와 '삶'이 분리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급격한 삶의 변화가 이루어진 사회에서 노인들의 삶은 그저 시대에 뒤처진 '방식'처럼 여겨지기가 십상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노인'은 효용 가치없는 뒷방 늙은이에 불과할까? 12부작을 완주한 <나빌레라>에서 그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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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덕출 씨의 '라떼는 말이야'


<나빌레라>는 일흔이 된 심덕출(박인환 분) 씨의 발레도전기이다. 발레 도전기답게 12회, 심덕출 씨는 알츠하이머라는 '난제'를 딛고 무사히 꿈에도 그리던 '백조의 호수' 갈라 공연을 마친다. '해피엔딩'일까? 해피엔딩이라 단정하기에 무색하게 공연을 무사히 마쳤지만 심덕출씨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새드 엔딩'일까? 인생이라는 레이스가 결국 '죽음'에 이르기까지 끝나지 않는 과정이듯이 삶은 계속 된다.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는 삶의 여정에서 심덕출 씨의 도전이 보여주는 '가치'를 전한다.



<나빌레라>에 등장한 출연진들은 은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삶의 무게로 허덕인다. 젊은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대로, 아들 딸 세대는 그 세대대로. 드라마 초반 그들은 저마다의 무게를 홀로 견디며 방황한다.



특히 엔딩을 함께 한 두 사람, 심덕출 씨와 이채록(송강 분)은 발레 제자와 선생님으로 세대를 초월한 관계를 맺는다. 발레를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채록이가 스승이고, 심덕출 씨가 제자이지만, 발레가 끝나면 관계가 역전되어 심덕출 씨가 채록이의 매니저가 된다. 아침 알람콜부터 시작해서 일상의 모든 것을 함께 하며 매니저로서 채록의 생활을 체크하는 덕출 씨, 그 과정을 통해 채록과 덕출 씨는 서로의 처지를 알게 되고 세대를 초월한 '우정'을 나누게 된다.



특히 발목 부상으로 발레리나로서 위기를 겪는 채록이에게 덕출 씨는 자신의 '라떼는 말이야'를 통해 닫힌 채록이의 마음에 숨통을 트여준다. 드라마에서는 심덕출 씨의 라떼는 말이야가 곳곳에서 등장한다. 우리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경기'를 일으키는 '라떼는 말이야'인데 마법같이 심덕출 씨의 '라떼는 말이야'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연다.



채록이 아버지 때문에 축구를 못하게 되었다며 자신의 좌절을 화풀이하듯 채록이에게 쏟아붓던 호범(김권 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그에게도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고 덕출 씨는 말한다.



채록이를 비롯하여, 호범이, 그리고 손녀 은호(홍승희 분)에 이르기까지 드라마 속 젊은 세대들은 자신의 꿈과 관련하여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 상황에서 덕출 씨를 만난다. 그리고 덕출 씨와 젊은 세대는 덕출 씨의 '라떼는 말이야'를 통해 교감하고 공감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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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에 힘을 싣는 건 덕출 씨의 '과거에서 부터 현재까지 진행형'인 노력이다. 주저주저 다시 운동을 시작할까 싶어 공원을 뛰기 시작했던 호범이 숨이 턱에 까지 차올라 헉헉 거릴 때 눈 앞에 덕출 씨가 나타난다. 아침마다 그 누구보다 부지런히 운동을 하며 공원을 누비는 덕출 씨다.



그런 식이다. <나빌레라>의 심덕출 씨는 자신이 '알츠하이머'라는 걸 알게 되고 '발레'를 시작한다. 대부분 그런 병을 '진단' 받으면 주저앉아 통곡을 해도 시원치않을 시점에 심덕출 씨는 더 늦기 전에 '꿈'에 도전을 한다.



뒤늦은 발레만이 아니다. 드라마 곳곳에서 등장한 장면에서 심덕출 씨는 알츠하이머 진단 후의 발레 도전처럼 살아왔음이 보여진다. 사업에 실패하여 온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을 때도 덕출 씨는 심기일전했다. 처음 우편 배달부 일을 시작했을 때 집 주소를 몰라 선임에게 추궁을 당하자 불철주야 홀로 노력하여 그 어려움을 극복했다. 다리를 다쳤을 때도 마찬가지다. 뒤늦게 '백조의 호수'를 통해 만개한 덕출 씨의 삶의 태도이다. 빛나지 않았지만 '노오력'했던 덕출 씨의 삶이 바닥을 친 젊은 세대에게 '울림'으로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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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그라운드'가 되는 어른


또한 그렇게 살아왔던 덕출 씨여서 였을까 누구보다 그들의 맘을 헤아려준다. 레스토랑 지배인의 논문까지 봐주며 정규직이 되기에 애써왔던 은호가 바로 그 지배인이 자신에게 낮은 점수를 준 것을 알고 찾아가 항의했을 때, 그걸 목격한 할아버지 심덕출 씨는 군더더기 없이 잘했다고 해준다. 그리고 애썼다고 격려해준다. 은호가 무막정 시작한 보조 작가 일에 대해 '사연'을 보내 응원해 준 건 덕출 씨이다. 비오는 날 딸 성숙(김수진 분)에게 우산을 가져다 주듯 그런 '응원'이다.



막내 아들 성관(조복래 분)이 하던 '의사'일을 때려치고 방황하는데도 덕출 씨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그저 닳은 아들의 슬리퍼가 안쓰럽다며 새 슬리퍼를 사줄 뿐이다. 다니던 직장에서 위기에 몰린 큰 아들 성산(정해균 분)에게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기억조차 잃어가는 아버지이지만 그래도 아버지 심덕출 씨는 어린 시절 아들에게 사주지 못한 '야구 글러브'를 사준다. 그리고 말한다. 여전히 아버지는 너의 '백그라운드'라고.



'어른'은 어떤 때 '백그라운드'가 될 수 있을까? 드라마 속 아들 성관이 말하듯 아버지 심덕출 씨는 '존재감'이 없는 아버지였다. 자식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신의 꿈을 포기하기도 했으며 그래서 자신들을 넉넉하게 키워주지 못한 아버지에 대해 낮잡아보는 시선이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어른'의 자리라는게 드라마에서처럼 자식들에게 무언가를 해줘야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인식이 되기가 십상이다.



심덕출 씨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여전한 도전을 통해 '어른'의 자리를 되찾는다. '발레'를 통해 형상화된 덕출 씨가 보여주 어른의 자리는 포기하지 않는 삶에 대한 성실함이다. 알츠하이머가 심해진 덕출 씨가 그가 살아왔던 모습 그대로 오늘도 열심히 우편 배달을 하듯,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여전히 노력해야 할 삶의 과정에 대해 드라마는 말한다.



여담이지만, 12회를 완주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느 틈에 나이가 좀 먹었다고, 나 역시도 이렇게 살아왔는데 말이야 하고 거들먹거리려 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다. 알츠하이머가 걸려서도 발레를 하겠다고 나선 덕출 씨처럼 끝날 때까지는 끝나지 않는 삶의 여정이 실감이 났다. 살던 대로 살아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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