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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톺아보기 Oct 15. 2023

빈둥지 증후군 엄마, '바다'에 새 둥지를 틀다

- <라이드; 나에게로의 여행>

엄마에게 '아이'는 또 다른 '나'이다. <라이드; 나에게로의 여행>의 엄마 재키는 아들 안젤로에게 자신의 '질'을 통과한 '소유권'을 주장하지만, 굳이 그 과정이 아니더라도 '아이'라는 한 생명이 탄생되기까지 '정자'의 역할을 제외한, 피와 살과 뼈가 이루어지는 과정 전체는 오롯이 엄마의 몫이다. 그러기에, 엄마는 아이를 세상 밖에 내놓아도 언제나 또 다른 나를 대하듯, 나의 일부로서, 그리고 나를 통해 등장한 새 생명에 대한 일체감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런 엄마의 '동일시'와는 다르게 엄마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한 생명으로 서고 자라난 '아이'는 어느덧 독립적 인격체로서 무럭무럭 성장해 가고 독자적인 삶을 향한 지향과 열망을 가지게 된다. 밤새 잠안자고 보채던 시절, 엄마의 사생활 따위 아랑곳없이 보살핌이 필요한 시절 '나의 시간'을 갈구했지만, 그런 갈증이 무색하게 어느덧 자란 아이는 '엄마'라는 둥지를 떠난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가고자 한다.

 

▲ 라이드; 나에게로의 여행 ⓒ 티캐스트

 

둥지에서 떠난 아이, 하지만 여전히 아이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엄마는 '빈둥지'를 감싸안고 허탈한 공황에 빠지고 만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바로 그렇게 '빈둥지 증후군'에 빠진 엄마에게 이 여름, 배우이자 감독인 헬렌 헌트가 새로운 둥지를 권한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을 위한 둥지를. 꼭 아이를 떠나보낸 엄마만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서 갈 길을 잃은 그 누군가라도 이 여행을 함께 떠나보자. 

엄마라는 둥지에서 날아가 버린 아들 
재키(헬렌 헌트 분)는 엄마이다. 그런데 이 엄마 이상하다. 아들 앤젤로의 방문 앞 그곳이 재키의 잠자리다. 아직 앤젤로가 어린 시절 엄마 앤젤로는 아들의 방문 앞에서 책을 읽다 잠을 청한다. 아직 어리면 어려서 그렇다 치지만 그런 재키의 잠 버릇?은 앤젤로(브렌튼 스웨이츠 분)가 이제 대학을 가게 된 스물 살이 될 때까지 지속된다. 심지어, 집에서 불과 몇 백 미터 떨어지지 않은 대학으로 들어가 기숙사로 옮기게 된 상황에 '멘붕'에 빠진다. 

그런데 '사고'가 생겼다. 그렇게 불면 날아갈세랴, 꺼질세랴 불철주야 지키던 아들이 사라졌다. 이혼한 전 남편이 사는 LA로 입학 전에 잠시 휴가를 떠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대학에 자퇴서를 내고 떠난 것이다. 당연히 재키에겐 청천벽력이다. 엄마 재키는 아들을 찾아 LA로 떠난다. 

LA로 떠나는 재키, 그런데 이 재키의 여행은 그녀에게는 보통 도전이 아니다. 뉴요커로 오랫동안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그녀는 '워커홀릭'이었다. 남들이 다 가는 휴가 한 번 안가고 헬스장에서도 원고 교정을 보던 그녀에게 자신이 하던 일을 멈추고, 살던 곳을 떠난 아들 찾아 가는 여정 자체가 버거운 도전이다. 

아들을 찾아 도착한 LA, 미행을 하듯 따라다니다 결국 마주치고 만 아들은 외려 엄마에게 큰 소리다. 자신은 작가가 되려고 하고, 작가는 꼭 대학을 다닐 필요가 없다. 그러니 이 여유로운 LA 바닷가에서 '알바'나 하면서 글을 쓰겠다는 것이다. 그런 아들에게 '대학'에 가지 않고 작가가 되었지만 말년이 불행했던 작가들의 목록을 줄줄 외어보지만 아들은 요지부동이다. 심지어 뉴요커에 워커 홀릭인 엄마를 비웃는다. 서핑 한번 해보지 않은, 아니 수영을 해도 물에 머리 넣는 것조차 하지 않는 엄마가 자신의 심정을 어떻게 알겠냐는 것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엄마의 불철주야 그 지독한 모성애가 숨막히단다. 

엄마라는 둥지에서 당당하게 떠나버린 아들, 심지어 그동안 아들을 애지중지 키웠던 둥지가 자신을 겁박했다고 고백하는 아들, 그 상황에 대해 엄마 재키는 뜻밖에도 서핑을 배우기 시작한다. 편집자로서 작가 지망생인 아들의 글에 시시콜콜 간섭을 하던 재키에게 아들이 그토록 좋다던 서핑에 대해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이, 그걸 빌미로 자신을 무시하는 아들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아들 앞에 서핑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결심으로 서핑을 시작하는 재키. 

 

▲ 라이드; 나에게로의 여행 ⓒ 티캐스트

 

하지만 물 위에 서프보드를 띄우고 서면 될 것같은 그 만만해 보이던 서핑, 하지만 서프 보드에 올라타는 것조차 '난관'이다. 그래서 바닷가에서 만난 이언(루크 윌슨 분)에게 서핑을 배우며 아들 앞에 당당하게 나설 날을 기대하는데 녹록하지 않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락이 두절됐다는 이유로 그토록 오랫동안 휴가조차 가지 않은 채 일해왔던 직장에서 '해직' 통보조차 받게 되고 만다. 

결국 아들이 머물고 있는 남편의 집을 찾아가 폭발하고 마는 재키, 그 과정에서 재키의 '편집증적'인 모성애가 드러난다. 사실 앤젤로가 재키의 유일한 아들이 아니었던 것. 앤젤로의 위에 형이 있었고. 그 큰 아들은 앤젤로가 어린 시절,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 사고에 대해 재키 부부는 서로에게 '원망'을 했고, 재키는 남은 아들 앤젤로에게 '집착'에 가까운 모성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큰 아들이 죽고 남편과 이혼을 한 후 오로지 남은 아들을 지키고 자신을 들여다 볼 시간 조차 없이 일만 하던 재키, 아들을 찾아 LA로 온 그녀는 지금까지 그녀를 지탱해 왔던 '삶의 루틴'에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바다로 간 엄마 
재키는 파편만 남은 빈 둥지에서 망연자실하는 대신, 바다로 향한다. 아들에게 보란 듯이 보여주려고 시작했던 서핑이었지만 이제 직장도 잃고, 아들도 잃고 그녀에게 어느 덧 '위로'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서핑을 가르쳐 주던 '이언'도 함께.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재키는 벽장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 LA의 바다로 온다. 서프 보드를 타고 바다로 나간 재키, 상자 속에 들었던 오래 전 죽은 큰 아들의 흔적을 바다로 떠나보낸다. 그리고 찾아와 뉴욕으로 돌아가겠다는 앤젤로에게 엄마는  이곳 LA의 바다에 남을 것을 전한다. 이제 더 이상 아들을 지키려고 안달하던 엄마는 없다. 

아들 앤젤로와의 갈등으로 시작되었지만, 어쩌면 재키는 오랫동안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큰 아들의 빈둥지로 인한 상실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편집증적으로 고군분투해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매일 밤 아들의 방문 앞에서 책을 보다 지쳐 잠이 들며 지나왔던 시절은 앤젤로를 무사히 키워냈지만, 이제 성인이 된 앤젤로에게는 더 이상 방문 앞을 지켜주던 엄마 재키는 필요치 않았다. 

꼭 재키가 아니더라도, 엄마들의 숙명, 다행히도 재키에겐 아들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어느덧 그녀를 매료시켜버린 바다가 다행히도 있었다. 수영장에서도 머리가 헝클어질까봐 물 속에 머리를 담그지 않던 재키는 이언에게 서른 일곱이라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머릿빨'없는 나이든 모습을 바닷물 속에 여실히 드러내고 만다. 하지만 바닷물에 머리가 다 들러붙건, 파도에 얼굴이 한껏 우겨지건 말건, 이제 재키에겐 그게 중요치 않다. 파도에 휩쓸려 나동그라져도, 그 파도 속에서 한껏 느껴지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인, 존재에 대한 확신, 그것만으로도 재키는 충분히 족해보인다. 거기에 자신을 지지해 주는 남자까지 있으니 금상첨화다. 

 

▲ 라이드; 나에게로의 여행 ⓒ 티캐스트

 

빈둥지 증후군,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왔던 엄마들에게는 불가피한 통과 의례다. 늘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왔던 삶,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던 시간, 자신에게도 돌아가야 할 시간, 그곳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엄마들, 사람들에게 <라이드; 나에게로의 여행>이 주는 '힐링'은 담백하고 명쾌하다. 

이제 한껏 파도를 타는 재키, 그 자체만으로 가슴이 확 뚫린다. 문득 나도 올 여름 나이가 무색하게 서핑을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솟는다. 하지만 꼭 서핑이 아니더라도 어떠랴. 내 곁에도 서핑처럼 이미 내가 열중하고 있는 무엇이 있을지. 한동일 씨의 <라틴어 수업>에 '삶의 여집합'이란 말이 나온다. 나를 상실감에 빠뜨린 삶의 그 무엇, 하지만, 돌아보면 나를 슬프게 하는 그 무엇을 제외한 삶의 여집합이 여전히 나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삶의 나머지, 여집합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 그게 삶에 대해 오만하지 않은 태도라고 작가는 말한다. 아들을 위해 시작했지만, 이제 자신의 것이 된 서핑을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있는 표정으로 타는 재키, 그녀처럼 우리도 자신의 '서핑 보드'를 챙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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