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스쿨> 전예슬의 이야기
배우 김명민이 로스쿨의 교수, 양종훈으로 출연하여, 양크라테스 식 교수법으로 화제가 된 <로스쿨>, 하지만 로스쿨의 볼거리는 김명민만이 아니다.
짧은 시간 수많은 법적 사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미래의 법조인이 되어야 하는 학생들은 늘 시간과의 전쟁을 벌인다. 당연히 각자도생의 시간, 처음 등장한 학생들은 그들이 함께 스터디를 해도 각자 저마다 짊어진 실존적 삶의 무게로 허우적거린다. 하지만 '법꾸라지'를 만들지 않겠다는 양크라테스의 신념은 개별적 존재였던 학생들을 매 장면 등장하는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어 앞에 선 미래의 법관들로 변모시켜나간다.
전예슬(고윤정 분)은 얼떨결에 로스쿨에 입학했다. 고형수 의원의 아들 고영창이 남친이었던 그녀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법대를 나와야 해서 로스쿨에 입학하려던 남친과 함께 공부를 했다. 그런데 결과는 그녀는 합격하고 남친인 고영창은 실패했다.
붉은 립스틱에 진한 화장, 높은 하이힐에 패셔너블한 옷차림, 그리고 성적은 늘 바닥, 로스쿨 공부보다 남친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로스쿨에 입학한 이후로 남친은 자신이 입학하지 못한 열패감을 그녀에게 풀었다. 폭력적인 남친의 행동으로 인해 검은 선그라스를 쓰고 학교 수업에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조차도 '사랑'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사랑'은 도를 넘어갔다. 자신의 열등감을 그녀를 폭력적으로 괴롭히는데 쏟아붓던 남친은 금지된 그녀의 방에 드나들었고, 급기야 그녀의 사생활을 '몰카'를 통해 녹화했다.
그런 그의 행동이 동급생 준휘 등에게 들켰고, 서약서까지 쓰기에 이르렀다. 폭주한 남친은 늦은 밤 그녀를 불러내 둘이 함께한 성관계의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그녀를 협박한다. 그 실랑이를 벌이던 와중에 남친 고영창은 뒤로 넘어져 머리를 다쳤다. 결국 하지마비의 판정을 받았다.
고형수 의원은 전예슬을 '살인범'으로 기소하겠다며 노발대발한다. 결국 법정에 서게 된 전예슬, 고형수의 사주를 받아 그 누구도 그녀의 변호를 맡으려 하지 않은다. 특별변호인으로 등장한 양크라테스는 고형수 의원의 농간을 막기위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다.
재판정에 선 그녀, 하지만 불리하다. 무엇보다 피의자가 되었음에도 전예슬의 증언이 일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범죄자가 되어 수감이 되느냐, 정당방위로 무죄가 되느냐라는 기로에 서있음에도 여전히 전예슬은 혼란스럽다.
무엇보다 그녀는 여전히 고영창과 자신의 관계를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성관계 동영상을 몰래 찍었으며 심지어 그녀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자 유포하려 했음에도 '사랑'이라는 터널 안에 갇혀있다.
그러기에 학창 시절 자신을 따라다니던 학생을 스토커로 신고했을 만큼 의연했던 전예슬은 지금 자신의 상황에 주도적이지 못하다. 심지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고영창의 사주를 받아 양종훈 교수의 살인 목격자로 거짓 증언까지 할 뻔했다.
하지만 양종훈 교수의 법정에서 만년 꼴찌의 전예슬은 '법관'으로서의 양심을 스스로 깨운다. 그동안 마지못해 외웠던 법조문 속 법의 정신이 그녀 속에서 '양심'이 되어 그녀가 거짓 증언을 하는 늪에서 빠져나오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다시 피의자가 되어 법정에 선 그녀는 고통스럽기만 하다. 심지어 재판 중에 도망치려고까지 한다. 검사 측의 교모하고도 혹독한 심문 과정에 '그만하고 싶다'고도 한다. 결국 그녀를 변호하려던 양종훈 교수가 변호인의 자리를 걷어차려고 할 정도로.
변호인인 대신, 그녀의 교수로 돌아온 양종훈 교수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사랑하는 이를 불구로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전예슬을 법을 공부하는 학생 전예슬로 다시 세운다. 그녀 스스로 자신의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아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있던 전예슬은 변호인 양종훈의 도움없이 자기 스스로 자신을 '변호'한다.
그 과정을 통해 전예슬은 비로소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분리해내기 시작한다. 고영창과 오랫동안 연인 사이었기에 그녀가 느껴왔던 사랑이라는 감정, 그리고 그런 오랜 연인을 하지마비의 평생 불구로 만들었다는 죄책감, 하지만 그렇게 오래도록 사랑했던 연인이 진단서를 받아야 할 만큼 자신을 폭력적으로 대했으며 자신을 몰칼로 감시하고 심지어 둘 사이의 은밀해야 하는 사생활 영상을 유포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를 옭아맸던 일관적이지 않았던 진술, 사랑했던 사이이기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더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웠던 마음조차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된다.
흔히 사랑을 하는 상태를 '사랑의 노예'라고 말한다. <로스쿨> 중 전예슬의 상황이야말로 딱 사랑의 노예다. 그 어렵다는 로스쿨을 사랑하는 연인 때문에 입학한 여성, 하지만 그녀에게는 법관이 되는 것보다 사랑이 더 우선이다. 심지어 그 사랑이 폭력적이며, 그녀를 부당하게 살인의 목격자로 만들어도 그 '노예'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심지어 그 사랑하는 이가 자신 때문에 '불구'가 되어버렸으니 더더욱 고통스럽다. 남들은 다 그녀의 사랑을 '폭력'이라고 해도, 여전히 그녀는 '사랑의 역사'로 인해 그 사랑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로스쿨> 속 전예슬의 에피는 우리 사회에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벌어지는 숱한 폭력적 남녀 관계의 대표적 사례이다. 폭력적 관계에 걸려있으면서도 여전히 당사자는 '사랑'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전예슬에 양종훈 교수는 그녀 자신을 변호인으로 법정에 세운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직시하도록 한다.
사랑이 끝났다는 관용적 표현에 '콩깍지가 벗겨졌다'가 있다. 전예슬은 스스로 변호인이 되어 자신의 사례를 법적으로 해석하며 비로소 그녀 자신을 억압했던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적 감정과 수치스러움으로부터 자신을 일으켜 세운다. 그렇게 스스로 자신을 드러낸 전예슬, 그렇게 '정당방위'를 쟁취한다.
물론, 그럼에도 그렇게 법정에 선 경험은 여전히 전예슬을 위축시킨다. 정당방위 후 함께 특강을 들으러 가는 상황, 여전히 고개를 숙인 예슬에게 강솔B는 말한다. 그렇게 범죄자연 하지 말라고. 그 말을 들은 전예슬은 위축되는 대신, 고개를 든다. 사랑에 매달리며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던 전예슬은 그렇게 또 한 발을 내딛는다. 그렇게 한 명의 법조인이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