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켓 소년단>우리가 잃어버린
'우리'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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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톺아보기

5월 31일 첫 선을 보인 sbs월화 드라마 <라켓 소년단>의 서막은 현실적이다. 친구의 빛보증을 시작으로 이제는 다달이 내는 월세마저 쪼들리는 형편에 놓인 윤현종(김상경 분) 씨네 집이다. 아들 해강(탕준상 분)은 양현종 선수를 로망으로 삼는 유망한 중학 야구 선수이지만 전지훈련비조차 낼 수 없어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신세이다. 땅이 꺼져도 솟아날 구멍인지, 아니면 더 늪으로 빠져들어갈 운명인지 아버지 윤현종 씨가 땅끌마을 해남 서중 배드민턴부 코치 자리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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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마을까지 가는 거야?'


조금만 더 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해강이를 정말 땅끝 마을까지 데리고 갔다. '야구만 하면 돼!'라고 했는데, 거기에는 야구부가 없다. 심지어 한 술 더 떠서 아버지가 맡은 배드민턴 부에 인원이 부족해서 경기에 나가려면 해강이가 선수로 뛰어주어야 한다. 야구도 못해, 인터넷도 안돼, 도무지 뭐 하나 맘에 드는 게 없는 땅끝 마을 생활, 그래도 해강이는 '와이파이'에 볼모가 되어 '라켓소년단'이 된다.



그렇게 졸지에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해남 땅끝 마을에 살게 된 해강이네 식구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어우러져 이야기라 펼쳐진다. 빛보증에 월세마저 내지 못해 서울에서 쫓겨난 한 가족은 하지만 우리나라 최남단 시골 동네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논리'를 만난다. 바로 우리가 잃어버려가는 '우리'이다.



<라켓 소년단>이 지향하는 주제 의식은 2회 해강이네처럼 서울에서 내려온 도시 부부 에피소드에서 잘 드러난다. 핏기하나 없는 얼굴의 아내와 매사에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부부는 고추 농사를 짓는다며 집을 빌려 땅끝 마을로 왔다.



이장님은 농촌에 살러온 부부가 반가워 그들이 원하는 농사에 필요한 로프니, 제초제니를 아낌없이 빌려주신다. 이장님의 친절에도 불구하고 거저 주실리가 없다며 경계를 풀지 않는 부부, 사실 이 부부는 농사를 지으러 온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잃은 채 생을 함께 마치기 위해 내려온 것이다.



거실에 함께 목을 매기 위해 이장님에게 얻어온 밧줄을 묶어놓은 채 생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부부, 그때 문을 두들기던 소리와 함께, 해강이가 카레 냄비를 들고 온다. 자기도 이사오던 날 먹을 게 없었다며.



사실 그 카레는 밥당번이 된 해강이가 망친 카레이다. 합숙하는 친구들 모두 한 입도 먹지 못한 채 뱉어냈던 카레, 그 카레를 인심쓰듯 해강이가 동네에 돌린 것이다. 동네 개도 그런 걸 준다며 항의하듯 짓어대는 카레, 그런데 생을 마치려던 두 부부는 지금까지 먹어본 카레 중 제일 맛있다면서 먹는다. 그러다 울컥 아내가 먼저 사실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행복론을 연구하는 서은국 교수는 말한다. 행복 그거 사랑하는 이와 함께 맛있는 걸 먹는 시간이라고, 그렇듯 모든 걸 잃고 죽음을 선택했던 부부는, 생의 마지막에서 모두가 못먹는다 했던 카레를 놓고 마주한 밥상에서 '삶'을 건진다. 그리고 이제 '생의 축배'처럼 다시 함께 먹는 카레, 문득 카레에 어울리는 김치를 떠올리는 아내, 그 말이 마치기가 무섭게 '김치' 한 통이 배달된다. 이번에는 아까 길에서 부부와 아웅다웅하던 '오매' 할머니(차미경 분)의 솜씨다.



생을 마치려던 두 부부를 구해준 카레와 김치, 그건 또 또 다른 '정'의 도미노이다. 해강이 말대로, 서울에서 내려와 밥도 굶고 낯선 환경에 두려워하던 해강이를 그 퉁명스럽던 오매 할머니가 데려가 저녁밥을 먹여줬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의심스러웠던 문 뒤에 할머니가 손자를 위해 준비해둔 와이파이 잘 터지는 놀이방을 기꺼이 해강이네 오누이에게 열어주셨다. 그 함께 함이 이제 해강이에게 카레 나눔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런가 하면 홀로 생전 처음 광주 동생네 잔치를 갔던 오매 할머니, 낯선 광주에서길잃은 어린애처럼 갈곳몰라하던 할머니를 젊은 청년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며 할머니의 행선지를 찾아주었다. 왜 그런 친절을 베풀었냐는 질문에 '처음이시라면서요'라고 대답하던 청년의 한 마디가, 오매 할머니의 뇌리에 남아, 자신에게 인사도 하지 않던 새로 이사온 부부에게 할머니는 겉절이를 만들어 그들의 생명을 '구제'해 주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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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으로 이어진 '우리'의 이야기


<라켓 소년단>의 에피소드들은 '미담'처럼 이어진다. 피씨방에서 만난 권투부에게 얻어터진 용태(김강훈 분)를 보고 해강이는 대뜸 그들을 찾아간다. 의기롭게 나섰지만 결국 해강이를 비롯하여 우찬(최현욱 분)이의 얼굴은 만신창이다.



그렇게 쌈박질을 벌였다는 사실 때문에 잔뜩 쫄은 아이들, 그걸 본 배감독(신정근 분)은 뜻밖에도 그들과 합류하지 않은, 평소에 총애해마지 않는 주장 윤담(손상연 분)에게 기합을 준다. 같은 팀인데도 함께 하지 않았다는 이유이다.



결국 윤담의 시간 내에 도전히 완수할 수 없는 기합은 나머지 팀 동료들의 '합류'로 역시나 마음 뭉클해지는 '우리'를 확인하는 시간이 된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하라며 돈 몇 푼에 쫀쫀하게 굴던 왕년의 '하얀 늑대'가 보여준 '팀 스피릿'의 단련 과정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코믹한 에피소드들은 자기 자신 밖에 모르는 사춘기 소년 해강을 '라켓 소년단'으로 성장시켜 나간다. 물론 매사에 까칠하고 아버지와 와이파이를 놓고 딜하는 해강 역시 알고보면 전지훈련비조차도 내지 못하는 아버지를 배려해주는 마음 따뜻한 소년이기도 하다.



<라켓 소년단>은 현실 속 땅끝 마을이지만 라디아의 옷장 속 환타지 공간처럼 이 세상에서 만나보기 힘든 환타지적 장소이다. 낯선 사람들이 어울려 한 집에 살고, 이웃이 서로를 들여다보아주고, 자기껏을 기꺼이 나누어 준다. 경기의 우승보다 팀원의 안위와 협력이 운동의 목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점점 찾아보기 힘든 따뜻한 연대의 정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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