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의사 생활> 시즌 1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뭉클했던 장면을 꼽으라면 시즌 1의 후반부 쯤, 익준(조정석 분)의 집에서 익준과 송화(전미도 분) 두 사람의 대화 씬이 떠오른다.
신원호 피디답게 <슬기로운 의사 생활> 시즌 1은 송화를 중심으로 99즈 네 친구 사이의 엇갈리는 사랑의 작대기를 보여줬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안타까웠던 건 반지까지 준비했으면서도 좌절된 석형(김대명 분)의 고백 앞에 자신의 마음을 꿀꺽 삼켜야 했던 익준의 사연이었다. 그렇게 송화와 엇갈린 익준은 결혼을 했고, 아내를 유학을 보내고 홀로 우주를 키우다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늘 자기 자신보다는 친구들을, 가족을 우선하는 익준, 그런 익준이 안쓰러운 송화가 익준에게 묻는다. '너는 너 자신을 위해 무얼 해주냐'고.
그리고 익준은 예전처럼 송화의 가장 친한 '벗'으로 남는다. 하루종일 수술에 지쳐서 잠에 떨어졌다가 물에 젖은 솜같은 몸을 추스려 속초로 돌아가려는 송화의 차 보닛 위에 친절하게 카페인, 디카페인 커피를 준비해 놓는다. 시즌 2 내내 부지런하게 송화와 밥을 먹는다. 정성도 이런 정성이 없다.
그런 익준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사랑'의 정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린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랑의 '대가'를 '관계'의 성취를 통해 발빠르게 얻으려고 한다. 하지만 늘 한결같이 송화 곁에서 그녀와 함께 밥을 먹고, 송화를 웃겨주는 익준을 보면서, '사랑'의 진정성에 대해 다시금 되짚어 보게 되는 것이다. 언제 뜨거웠던 적이 있느냐는 명시가, 한결같이 뜨거울 수 있냐고 다시금 묻는 듯하다.
그런데 익준의 진정성이 발휘되는 건 이성적 관계에서만이 아니다. 4회 엔딩, 드디어 익준은 동생 익순(곽선영 분)과 준완(정경호 분)의 관계를 알았다. 그런데 영국까지 유학을 가서 간에 무리가 생긴 동생이, 그동안 99즈의 준완과 연인 사이인 것도 놀라운 일인데, 헤어졌단다. 안그래도 준완의 여자 친구가 '이기적'이라고 말한 당자자가 익준인데, 그 이기적인 연인이 동생 익순이었다니.
그간 우리 드라마에서 이렇게 동생과 가장 친한 친구의 연애와 이별을 안 오빠는 대부분 안그러려고 하면서도 '감정적'인 태도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이른바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모습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내곤 했었다.
그런데 드라마는 늦은 밤 홀로 앉아있는 익준을 비추곤 만다. 그리고 익준의 일상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 변함없이 준완을 대한다. 함께 밴드를 하고, 송화의 방에 모여 투닥거리고. 어쩐지 전보다 친근하게 대화를 하는 모습은 줄어든 듯하지만 결코 흔들림이 없다.
그렇게 익순의 부탁대로 준완에게 전혀 내색을 하지 않는 한편, 아픈 동생을 위해 지극정성이다. 직접 비행기 표를 끊고, 병원에 온 동생의 부탁대로 조용히 검사를 하고, 치료를 위해 고향에 내려간 동생을 회복에 이르기까지 1년 동안 부지런히 돌본다.
그렇게 두 사람에 대해 한결같지만, 속을 내비치지 않는 익준의 모습을 통해 익준이 동생 익순도, 그리고 친구 준완에 대해서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가를 역설적으로 우리는 알게 된다. 늘 드러내고 쏟아냄으로써 내 감정을 전해질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며 산다. 그런데 익준을 통해 반대로 드러내지 않아서 더 애틋하고 안타까운 익준의 마음을 통해 관계 맺음의 '관성'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다.
익준의 속깊음이 또 드러난 건 의사로써 익준의 모습이다. 병원에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현실적'이라는데 공감을 할 만큼 친절하고 자상한 의사 익준, 그는 자신의 환자인 한 여성과 그를 돌보는 남편의 모습에서 이상함을 감지한다. 익준의 말에 따르면 '자상'한 듯 하지만 정작 내일 있을 아내의 시술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남편의 모습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심지어 남편은 차츰 회복하고 있는 아내의 보험 관련 무리한 조항을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알고보니 중환자였던 아내를 밤마다 술을 먹고 '폭력'을 휘두렀던 남편, 그 상황에 분노한 장겨울(신현빈 분)이 환자 남편과 맞대응을 하다 나뒹구는 상황에, 익준이 미리 부탁해두었던 병원의 안전 요원들이 상황을 제지한다. 이미 익준은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알리고, 혹시나 모를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결국 장겨울의 무모한 도발은 익준의 안전장치로 인해 더 큰 불상사로 이어지지 않고 마무리된다. 환자 역시 그 상황을 통해 '자신에게 '도움'의 기회가 있음을 깨닫고 도움을 청하는 한편, 삶의 의지를 붙잡게 된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 시즌 2에서 익준은 씬과 씬을 이어주는 접착제처럼 '핵인싸'의 모습으로 극의 활기를 불어넣는다. 얼토당토치 않은 개그는 물론, 거의 '약방의 감초' 격으로 모든 상황의 분위기를 이끈다. 99즈 밴드의 리드 싱어로서의 빼어난 가창력도 놓칠 수 없다. 가끔은 익준인가 조정석인가 누구인가 헷갈릴 정도로 배우 개인이 가진 발군의 역량이 매회 빛난다.
마치 축구장에서 화려한 개인기를 선보이는 메시나, 호날두처럼 개인기에 의존하여 극을 이끌어 가는 익준, 하지만 그 화려한 연기 속에 진짜 빛나는 건 우직한 인물 익준이다.
몇 십년에 걸쳐 사랑하는 이에게 한결같은 사람,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동생과 친구 사이의 '사랑' 앞에 결코 감정을 드러냄없이 자신의 몫을 다하는 사람, 그리고 의사로서 자신의 본분에 최선인 익준은 부박한 인간 관계에 상처받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깊은 '위로'를 건넨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 주는 진짜 매력은 매회 친구들의 정겨운 밴드와 시끌벅적 소동극같은 상황을 넘어 그 안에서 진득하게 서로를 지켜보고 지켜주는 '관계'에 대한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