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의사 생활 2> 거, 사정 좀 봐줍시다

- 진상 환자 보호자에게도 사연은 있다.

by 톺아보기

소소하게 하지만 진정성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슬기로운 의사 생활>의 관전 포인트에는 여러가지 있겠다. 뭐니뭐니해도 마흔 줄에 들어선 99즈 5인방의 여전히 싱그러운 연애담이 암만해도 가장 큰 관심사가 아닐까. 하지만 그들의 애틋한 사연만큼이나 매회 시청자들의 시선을 끄는 건 그들과 엮이며 '병원'이라는 삶과 죽음이 오가는 공간에서 '희노애락'의 감정 곡선을 이끌어 가는 '환자'들의 에피소드이다.



그런데 항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상당수 환자 에피소드의 방식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진행된다. 즉, 환자의 상태에 따라 진행되는 에피소드 뒤에, 알고보면 이런 '사연'이 숨어있다는 식의 '반전 포인트'가 제시되면서 '감동'을 배가시킨다. 8월 5일 방영된 7회차 역시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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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환자 보호자에게도 사연은 있다


7회차에서 시선을 끄는 건 갑작스럽게 간이 나빠져서 간이식 수술을 받게 된 환자 가족의 이야기이다. 율제 병원의 '핵인싸'로 그 누구와도 친하고, 그만큼 그 누구에게도 친절한 이익준(조정석 분) 교수의 환자가 된 여성, 그런데 수술받아야 하는 여성 자신도, 그리고 여성에게 간을 이식해줄 아버지도, 어머니도 불안해 하긴 하지만, 이익준 교수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건만 정작 여성의 오빠가 보이는 태도는 불안을 넘어 '불신'의 경계를 오간다.



친구가 소개해준 병원을 마다하고 이익준 교수를 찾아 율제까지 왔다는 그는 환자와 관련 사소한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간호사와 인턴 등과 날을 세운다. 채혈한 환자의 팔이 멍들었다던가, 수액을 제대로 갈아주지 않는다던가 하는 그의 '부정적 어필'은 앞서 회차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사경을 헤매다 이제 겨우 의식을 회복한 여성의 어머니가 보이는 '낙관적 태도'와 대비되며 더욱 보는 이의 신경을 거스른다. 드라마 속 환자를 맡은 의료진의 반응 역시 다르지 않다.



꼭 성공하셔야 한다고 다짐하듯 '화이팅'을 외치던 오빠, 이전의 교통사고로 인한 장내 흡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수술은 무사히 마무리된다. 그리고 이어진 '반전', 의료진에게 오빠가 '떡 세트'를 보내며 '사과'를 한 것이다.



그런데 오빠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오빠로 인해 마음을 상한 의료진에게는 앙금이 남아있다. 그런 상황에 익준이 말을 보탠다. 조금만 더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급박하게 간이 나빠진 동생, 그런데 정작 간이식을 해줄 오빠는 b형 간염으로 이식을 해줄 수 없어, 연로하신 아버지가 자기 대신 동생에게 간을 주는 상황이니, 오빠의 마음이 어떻겠냐고.



'의료진'의 입장이 아니라,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서 한번쯤 생각해 보라고. 그런 익준의 말에 이제 인턴 생활을 갓 시작한 윤복(조이현 분)이 눈물을 터트린다. 어릴 적 어머님을 잃은 자기 자신 역시 의료진에게 마구 떼를 썼던 기억이 떠올라서이다.



겨우 '가운' 하나에 따라 입장이 바뀐 상황을 윤복을 통해 그린 드라마는, 바로 이어서 그 반대의 상황을 보여준다. 아이가 열이 높아서 응급실에 온 아이의 보호자인 엄마는 응급실에서 순서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아이가 열성 경기를 할 수도 있다며 먼저 봐달라며 난리를 친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 '난동'의 주인공은 현직 소아과 의사였다.



간이식 환자의 오빠나, 응급실 난동 보호자는 우리가 병원에서, 아니 사회에서 종종 마주칠 수 있는 '발암 불편러'들이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선을 긋고, 비난을 하며, 이상한 부류의 인간들로 '치부'해 버린다.



그런데 <슬의>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우리도 그런 상황이 되면 다르지 않을 것이다 라는 '아량'의 관점이다. 사람은 저마다 막다른 상황에 봉착하면 자신의 처지나, 지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민낯을 내보일 수 있다는 '전제'에 대해 조금은 너그러워지자고 드라마는 말한다. 그 흔한 '역지사지'를 통해 '비난'을 하기에 앞서 나라면 다를까 라고 한번쯤은 입장바꿔 생각해 보는 게 어떠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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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량'을 필요한 시간


이와 비슷한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응급실에 급작스럽게 들이닥친 노년의 환자, 응급처치에도 불구하고 '뇌사' 상태에 이른다. 장기 기증을 신청한 환자, 의료진은 어렵사리 환자의 보호자를 찾고 보니, 병원의 안전요원이었다. 그런데 막상 장기 기증을 했다는 모친의 결정에도 아들은 망설인다.



그의 망설임 앞에 장기 기증 센터 직원은 '시간'을 준다. 그리고 알게 된 진실, 아들인 그가 뇌사가 된 어머니와 연락이 된 게 30년 만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그는 고심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30년 만에 돌아온 죽어가는 어머니의 '장기 이식' 결정을 30년 만의 '아들 노릇'으로 받아들이기로.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시간'이다. 만약 그에게 시간을 주는 대신 다그쳤다면, 혹은 그가 30년 동안 연락이 끊긴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를 배제하려 했다면 30년만에 엄마를 만난 아들은어떻게 되었을까?



그 '시간'은 앞서 간이식 환자의 오빠에게도 주어졌다. 의료진과의 트러블 대신 시간을 가진 오빠는 '떡'과 함께 사과를 했다. 그래서 이익준은 말한다. 사람들은 다 안다고.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때로는 우리가 그들에게 주는 '아량의 시간'이 그들에게 '사과'를 하는 시간적 여유가 될 수도 있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슬의>가 '인도'하고자 하는 '휴머니즘'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온정적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불편러들은 드라마 속 그들처럼 '사과'를 하지도 않고, 석형의 모친(문희경 분)처럼 막무가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지레 벽을 쌓는 대신, 한 걸음 물러서서 혹시나 '사정'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고 등을 토닥인다.



문화 심리학자 김정운 박사는 우리 사회를 '분노 사회'라고 정의내린다. 압축적인 자본주의로 대변되는 근대화 과정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상실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홍길동 컴플렉스,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아비를 아비라 부르고 싶지 않은 게 우리 사회의 모습이라고 그는 말한다.



즉, 해방 이후 산업화 시대를 이끈 세대를 부정하며 586으로 통칭되는 민주화 세대가 등장했다. 그런데 이제 다시 MZ 세대로 대변되는 '아버지 세대보다 가난할'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의 아버지 세대를 부정하고 '분노'한다. 삼대의 세대가 서로를 부정하며 원망하는 사회,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저마다의 상실감을 안은 채 늘 자기 방어적 태도로 일관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의 상실감은 '불평'과 '분노'로 표출되는 것이다.



마흔 줄이나 되는 어른이들이 '밴드'를 하는 설정으로 시작한 <슬의>가 드라마를 통해 일관되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어쩌면 그저 '여유'일 지도 모른다. 그 바쁜 의사라는 직업군들이 밴드를 하고 사랑을 하며 환자들을 성의를 가지고 돌보듯, 우리도 각박한 삶을 살아가며 조금은 서로의 사정을 봐주며 살아가자고. 물론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자신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아가는 '불행'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지 않겠냐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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