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IDF 2021 - 감성 건축가, 알바 알토>
ebs가 매년 개최하고 있는 다큐 영화제 EIDF는 그 해 '화두'가 되는 세계적 이슈를 짚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하지만 그런 트렌디한 작품만이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국가 감독들이 만든 작품을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그 중에서 매년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이 세계 각국의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2020년에는 '예술하다'라는 부문이었다면, 올해 2021년에는 '클로즈업 아이콘'이란 부문을 통해 존 포드에서 부터, 송해, 그리고 뱅크시까지 시간과 공간을 주유하며 다양한 예술가들의 삶을 보여주고자 한다.
<감성 건축가, 알바 알토>는 핀란드의 비르피 수타리 감독이 만든 52분짜리 다큐로 EIDF 2021, 클로즈업 아이콘 부문을 통해 소개되었다.
지금이야 핀란드라고 하면 세계 최고의 복지 국가라거나,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이라는 독특한 문화적 스타일로 사람들에게 알려져있지만 알바 알토가 건축가로써 활동하기 시작하던 당시 핀란드는 이제 막 러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난 변방의 신생 국가일 따름이었다. 더구나 192, 30년대는 독일의 바우하우스를 중심으로 미니멀하고 금속적인 느낌이 강조된 '바우하우스' 풍의 디자인이 '주류'이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의 문화적 변방 국가 출신의 알토는 어떻게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을까? 다큐는 알토의 작업 과정과 작업의 결과물 들을 통해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알토만의 '감성'을 밝히고자 한다.
그의 디자인을 가장 잘 드러내는 '파이미오 체어'는 그가 맡았던 '파이미오의 사나토리움' 내부에 설치된 일광욕을 위한 의자였다. 290명의 결핵 환자들을 위한 요양원, 그 건축물의 디자인을 맡았을 때 알토는 자신이 병원에 입원했던 경험을 되살려 냈다. 그 뒤 미국의 MIT 공대 건축에서도 다시 한번 보여지듯이 공간을 사용하는 이들에게 일조권을 최대한 '공여'할 수 있게 물 흐르듯 펼쳐진 건축물, 거기에 그의 정의처럼 '건축의 악세사리'인 환자들이 편하게 일광욕을 할 수 있도록 합판 목재를 구부려 만들어진 '파이미오 체어'가 완벽하게 '요양'이라는 목적에 맞춰 알토 건축의 세계를 연다.
1,2차 대전을 경과하던 당시는 콘크리트와 철물 건축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산림관리업을 하던 집안 출신의, 그리고 그 어떤 나라보다 '삼림'으로 둘러싸인 핀란드에서 자라난 알바 알토는 '목재'라는 건축의 요소를 자신의 '장기'로 내세운다. 그리고 그가 주재료로 삼은 목재는 콘트리트나, 철물이 가질 수 없는 목재 특유의 '유려한 곡선미'를 십분 살려낸 것이다.
그가 만든 러시아의 도서관, 계단으로 이어지는 난간은 사람 손이 들어갈 정도로 옴폭 파여, 물 흐르듯 흘러간다. 목재를 구부리는 알토의 특징적인 디자인, 하지만 이 '곡선미'는 당시로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기술이었다. 특히 어렵다는 '자작나무'를 세계 최초로 구부려 그 위에 상판을 올린 '알토 스툴'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알토를 트렌디한 디자이너로 기억되게 한다. 나아가 목재의 특성인 유려한 곡선미를 알토는 자신의 건축물 전체의 '특징'으로 만들어나간다. 당시의 건축 트렌드를 따르는 대신 자신만의 고유한 디자인을 살려나간 알토의 디자인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인기를 끄는 이른바 '스칸디나비안 모더니즘'을 개척했다.
근대 건축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알바 알토, 하지만 다큐는 '알바 알토'라는 '위인전'이 아니라, 한 건축가의 삶과 그의 삶에 영향을 끼친 인물, 그리고 흥망성쇠를 담백하게 그려내고자 한다.
또한 알바 알토라는 명성 뒤에 가려졌지만, 센시티브한 인물로서 집의 작업실에서 자신의 작업에 몰두했던 알토 대신 그가 동료들과 설립했던 디자인 회사의 업무는 물론, 알토 작업에 있어 주요한 '영감'을 주는 인물로써 동지적 관계를 맺었던 아이노란 인물에 주목한다. 늘 자신이 첫 번째, 그 다음이 가정, 그리고 일이라는 요구를 하던 알토란 인물과 함께 살며 아이들을 키우고, 자신의 일도 해내던 아이노란 인물을 그 자체로 일과 가정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 애썼던 성공한 현대 여성의 전형으로 소개한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노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작업을 하던 알토는 그녀의 사후, 더는 미국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알토의 인생에는 또 다른 여성이 등장한다. 알토가 다수의 건축과들과 협업했던 작업 공간의 실장이자, 알토의 두 번째 아내가 된 엘리사 알토가 그 주인공이다. 텍스타일 디자이너였던 그녀는 알토 스튜디오의 실장으로 알토 디자인에 영감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그녀의 작품이 생산될 정도로 유능한 디자이너였음을 다큐는 짚는다.
전통과 유행을 따르는 대신, 자신의 나라, 자신만의 디자인을 통해 핀란드의 건축을, 알토라는 브렌드를 만들어 냈던 알바 알토, 하지만 그 역시 세월의 흐름을 비껴갈 수 없었다. 핀란드 대부분의 규모있는 건축물을 '수주'했던 알바 알토, 지금도 핀란드와 헬싱키에 그의 작품들이 '랜드마트'로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에는 신진 건축가들에 밀려났으며 그로 인해 칩거하는 말년을 보냈음을 다큐는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새로운 감성과 새로운 소재로 한 시대를 열었던 알토의 건축은 그렇게 또 다른 시대에 자리를 내주며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