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
이해는 언제 확신이 되는가
— 그물을 헤치며
아이리스 머독은 『그물을 헤치며』에서
무지나 악의를 묻지 않는다.
문제는 이해에 대한 확신이다.
주인공 제이크 도너휴는
세상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관계를 설명하며,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안다고 믿는다.
그는 정리하고, 해석하고, 설명한다.
그런데 바로 이 능력 때문에
타인은 그의 이해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제이크에게 타인은 공감의 대상이 아니라
설명되지 않는 변수로 남는다.
현실은 이해되지만,
그 이해는 제이크의 세계를 넓히지 못한다.
머독에게 위험은
이해가 아니라
수정을 거부하는 이해이다.
“나는 충분히 안다”는 감각이 굳어지는 순간,
질문은 멈추고
확신만 남는다.
확신이 된 이해는
경청하지 않는다.
상대의 말은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
굳어진 인식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이때의 설명은
소통이 아니라 차단이다.
이 소설이 불편한 이유는
제이크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너무 그럴듯하다.
말은 논리적이고,
해석은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독자는 너무 편히
그 자리에 자신을 겹쳐 놓는다.
『그물을 헤치며』는
여기서 멈춘다.
확신이 관계를 지배하기 전,
이해가 사람을 대체하기 직전에.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이 질문이 남는다.
나는 정말로 이해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해했다고 믿고만 있는가.
이 질문을
서둘러 닫지 않는 것.
이 소설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윤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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