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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곰 엄마 May 05. 2022

남이 해준 밥이 너무 좋다

집에서 너무나 편안한 차림으로 하루하루 보내던 것과 달리  출근 전 얼굴에 화장을 하고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며 펑퍼짐한 옷들에서 그나마 출근룩의 옷을 찾아 걸친 내 모습에서 긴장과 설렘을 느꼈다.


 우여곡절 끝에 출근한 나는 어제의 소심하고 자존감이 떨어져 축 늘어진 메마른 가정주부의 모습이 아니라 다소 생기 있는 모습의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딛는 사회 초년생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첫 출근 후 인사를 나누는데 회사 대표님, 그리고 내 또래의 남자 직원과 퇴사하실 분... 이렇게 딱 세분이었다....‘음... 정말 작은 회사가 맞군.... 그래도 이게 어디야, 어차피 사람 많은 회사에 가도 최저임금일 텐데... 작은 회사가 일이 많지 않아 천천히 배우기도 좋고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을 거고, 월급만 잘 나오면 괜찮지~’하며 나름 으싸으싸를 외치고 있었다.     


인사를 마치고 드디어 인수인계를 해 주신다며 설명을 하시는데, 여기는 조명회사고 이제 시작해서 전화도 하루에 몇 통화 없다며, 남는 시간이 많을 거라 공부 같은 거 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회계프로그램은 거의 기본으로 된 거라 몇 번 해보니 어려울 것 없어 보였고, 엑셀로 일계표, 자금 일보, 월 매입 표 등 아주 기초적인 것만 있어서 서류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매일매일 결제 올리는 것 빼고는 정말 일이 많아 보이지 않았다.

업무를 배우는 게 오전에 다 끝났으니 말이다....     


  뭐 오전 업무는 그렇게 끝나고 점심을 먹으러 근처 작은 식당으로 갔다. 거기는 구내식당이 없는 작은 회사들이 월말 결제하며 점심을 먹는 곳이었는데, 낡고 허름한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은  그런 곳이었다.. 뷔페식으로 본인이 먹고 싶은 음식을 담아가서 먹으면 된다.

 

 두 종류의 밥과 대여섯 정도 되는 반찬이 수북이 놓여 있는데 다들 줄 서서 맘에 드는 반찬을 골랐다.  난 잡곡밥 조금과 김치 몇 조각 생전 처음 보는 정체불명의 생선 튀김, 김말이, 오이무침과 무 몇 조각 들어간 뭇국 이렇게 받아 들고 대표님 포함 네 명이서 오붓하게 앉아 밥을 먹었다.


 솔직히 집에서 내가 만들어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먹이는 반찬에 비하면 너무도 부실하고 맛도 없는 그런 점심이었다. 하지만, 나의 회사 출근 후 첫 점심은 눈물 나게 행복했다..


 남이 해 주는 밥.. 시간이 되면 난 그냥 가서 먹기만 하면 되는 그런 밥. 무급의 끝나지 않은 집안일 후의 점심이 아닌 나의 노동의 대가인 월급을 받으면서 먹는 밥.


 여하튼 이 초라한 식판 위에 부실한 밥과 반찬도 그 어떤 진수성찬의 음식보다 값진 밥이었다.     

나의 첫 점심은 그렇게 감개무량한 마음으로 끝났다....     


 이젠 식당 밥이라면 머리부터 절레절레 흔들게 되는 맛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어서 그저 고픈 배를 살짝 채우는 정도의 밥이지만, 그날의 점심은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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