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의 두 번째 폭발이 정점을 지난 지 닷새째 되던 아침, 서울의 하늘은 여전히 빛을 잃은 채 흐릿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태양은 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눈으로 보지 못한 채 스마트 기기의 시계 숫자로만 확인하고 있었다. 정부는 폭발이 더 이상 대규모 분화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근거로 ‘안정화 단계’로 판단했지만, 혼란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었다. 북한에서 남하한 난민 숫자는 백만 명을 넘어섰고, 수용소는 전국 곳곳에 끝없이 늘어나고 있었다.
국가위기관리센터 지하 벙커. 벽면 전체를 덮은 스크린에는 압록강 일대의 위성 영상이 떠 있었다. 압록강은 이미 얼음이 풀려 진흙빛 물결과 얼음 파편이 뒤섞인 채 흘러가고 있었다. 그 혼탁한 강 위로 급조된 부교가 설치되고 있었고, 붉은 별이 그려진 장갑차들이 신속히 강을 건너고 있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도강 준비 중입니다.”
정보국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명분은 난민 보호이지만, 병력 규모를 보면 단순 방어가 아닙니다.”
회의실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합참의장은 커다란 숨을 삼키며 상황을 정리했다.
“현재까지 남측으로 확인된 유입 인원은 공식 집계만 백삼십만 명입니다. 수용소는 모두 포화 상태이며, 북부 지역 행정 기능은 완전히 붕괴됐습니다.”
윤현우 대통령이 시선을 화면에서 떼지 않은 채 물었다.
“미국은 어떤 입장입니까?”
미국 측 연락관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워싱턴은 중국의 실제 진입이 확인될 경우, 한국군의 북부 진입을 평양 이남까지 제한적으로 승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핵시설 통제와 국제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국방부 장관의 표정이 굳어졌다.
“결국 중국이 평양 이북을 관리하겠다는 뜻입니까? 그건 사실상 ‘분할 점령’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스크린이 전환되며 미국 RAND 연구소의 분석 자료가 나타났다. 한반도 북부는 네 색으로 나뉘어 있었고, 각 색 위에는 미국·중국·러시아·한국의 국기가 표시되어 있었다. 지도는 더 이상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각국이 실제로 움직일 ‘예정선’이 되어가고 있었다.
윤 대통령은 스크린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백두산은 국경을 지웠습니다. 그런데 그 빈자리를 채우려는 건 우리가 아니라 다른 나라군요.”
그의 말에 회의실은 숨소리조차 줄어들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작전통제실에서 긴급 보고가 올라왔다.
“중국군, 자강도 일대에서 ‘인도적 개입’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러시아도 두만강 인근에 기계화 부대를 이동 중입니다. 미군은 평양 상공에 정찰 위성을 증강 배치했습니다.”
합참의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대통령님, 우리 군이 올라가지 않으면 평양은 중국이 선점하게 됩니다!”
윤 대통령의 눈빛이 변했다.
그 순간은 더 이상 ‘준비의 시간’이 아니라, ‘선택의 순간’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윤현우 대통령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조용히 일어섰다. 벙커의 공기가 미세하게 떨렸고,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벽면 스크린에 비친 잿빛 평야와 끝없이 이어진 난민 텐트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화면은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대통령은 그 침묵 속에서 수백만 명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백악관과의 화상 채널이 연결되었다. 미국 대통령은 인사를 생략한 채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중국군의 도하 준비가 확인됐습니다. 평양 북부로의 진입은 승인할 수 없습니다. 충돌 위험이 너무 큽니다.”
윤현우 대통령은 짧은 침묵 끝에 작전 문서를 내려다보았다. 손끝이 잠시 멈칫했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들고 화면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 판단은 존중합니다. 그리고 전시작전통제권이 아직 한미연합사 체계 아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숨겨지지 않은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렇다면, 우선 평양 이남까지만 진입하겠습니다. 목표는 명확합니다. 민간인 보호와 핵시설 안전 확보입니다. 작전 범위는 제한하고, 현장 통제는 철저히 준수하겠습니다.”
미국 측에서는 별다른 반론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오늘의 합의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합니다. 앞으로의 변화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어야 합니다.”
이어 미국 국방장관이 화상에 참여해 연합사 차원의 조건을 설명했다.
“작전 통제는 기존 연합사 체계를 유지합니다. 중국군과 접촉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협의 체계로 전환하며, 미군은 정찰과 공중지원, 핵시설 관련 정보 지원에 집중합니다.”
윤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조건을 수용합니다. 실시간 정보 공유와 상시 협의 체계를 유지하겠습니다.”
양측은 짧은 확인 절차를 거쳐 작전 개시를 ‘조건부 승인’으로 정리했다. 통화는 약 7분 만에 종료되었다. 방 안은 잠시 조용했지만, 분위기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 결단의 말을 내렸다.
“지금부터 북부 진입 작전을 개시하겠습니다. 이번 작전은 군사행동이 아니라, 인도적 구호와 안전 확보를 우선으로 하겠습니다. 즉시 실행해 주십시오.”
그 순간 지휘 체계는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송기들이 이륙했고, 해상 병력이 항해를 시작했다. 군인들은 방독장비를 점검하고, 의료단은 임시 야전병원을 세웠다. 민간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도 속속 집결했다. 노란 조끼를 입은 이들이 트럭에 식수와 담요를 싣고 출발했다. TV 화면에선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절박한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베이징과 모스크바의 반응도 즉각 나타났다. 중국은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추가 병력 배치를 예고했고, 러시아는 ‘지역 안정을 위한 감시 강화’를 발표했다. 유엔 긴급회의 소집 속보가 이어졌다. 국제사회는 숨을 죽이고 한반도의 다음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알지 못했다.
상륙의 첫 발자국이 찍히는 순간, 한반도의 지도가 어떻게 다시 그려질지. 그리고 그 대가가 무엇 일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