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북부 지역에 대한 ‘임시 행정 통제’ 보도가 나온 지 하루가 지났다. 이른 아침, 서울 도심의 대형 전광판에서는 지도 위에 붉은 점들이 표시된 화면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자리에 멈춰 서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던 시민들이 낮은 목소리로 서로의 표정을 살폈다.
“저기는 중국 깃발이 올라가 있고… 저쪽은 러시아 군 표식이 보입니다. 지금 저게 실제로 통제되고 있다는 겁니까?”
“정부에서는 아직 ‘임시 조치’라고 발표했습니다. 확정된 건 아니라고 합니다.”
그 말에 한 시민이 고개를 저으며 낮게 말했다.
“‘임시’라는 말로 시작해서 그대로 굳어진 일이 한두 번입니까. 그렇게 시작해서 우리 땅이 영영 돌아오지 않은 사례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라면을 먹던 청년 둘은 TV를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화면 속 앵커가 뉴스를 전했다.
“정부는 현재 상황을 ‘사실 확인 중’이라고만 밝힌 상태입니다. 다만 국방부는 북부 지역에 대한 정찰 활동을 강화하고 있으며, 백두산은 지난 48시간 동안 추가 분화 없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파악됐다고 발표했습니다.”
말을 듣던 청년 중 한 명이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다행이네. 백두산이 다시 터지면 북한이고 뭐고 다 끝나는 거였잖아.”
다른 청년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산은 잠잠한데, 사람들 사이가 시끄러워지는 거지.”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서는 연속 브리핑이 이어지고 있었다. 서지훈 국가안보실장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중국군이 평안북도 일대에서 검문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은 함경북도의 항구 지역 기반시설을 군사 물류거점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강원도 북부를 ‘국제 공동 안보지대’라고 표현하면서 사실상 상륙을 지속할 계획입니다.”
박태식 합참의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국 측에 정식 항의는 전달했습니까?”
서지훈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항의는 했지만, 돌아온 답은 ‘핵 불확실성을 고려한 조치’라고 합니다. 핵을 찾는다는 명분을 버리진 않겠다는 뜻입니다.”
윤현우 대통령은 잠시 말을 멈추고 모니터에 떠 있는 지도를 바라보았다. 지도 위에는 북한 전체가 아니라 ‘새로운 선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어떤 선은 바다에서 시작해 산맥을 타고 올라갔고, 어떤 선은 국경과 맞닿아 있었다.
윤현우 대통령은 테이블 위에 놓인 상황보고서를 천천히 덮으며 물었다.
“백두산 상태, 확실히 안정된 게 맞습니까?”
합참의장 박태식은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위성 탐사와 지질 데이터 모두 같은 결론입니다. 마그마 상승은 멈춘 것으로 보입니다. 여진은 당분간 계속되겠지만, 큰 폭발 가능성은 낮다는 판단입니다.”
윤현우는 한숨을 내쉬며 등을 곧게 세웠다.
“그럼 이제 걱정해야 할 건 자연이 아니라… 사람들의 움직임이군요.”
테이블에 둘러앉은 참모들 사이로 짧은 정적이 흘렀다. 자연재해의 공포가 사라지는 순간, 누군가는 안도했지만, 동시에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 시작될 위험은 땅속이 아니라 국경 밖에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TV 화면에 서울 강남역 인근 모습이 잡혔다. 점심시간을 맞아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횡단보도 앞에서 한 방송국이 긴급 여론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화면 하단에는 자막이 떴다.
<북한 북부 지역, 외세 ‘임시 통제’ 논란… 국민 여론은?>
기자가 양복 차림의 직장인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지금 정부가 ‘북한 지역 구호와 통합 준비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남성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우리 경제도 버티기 어렵습니다. 물가, 주택, 일자리… 다 불안정한데, 북한까지 떠안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봅니다. 차라리 안정적인 분할 체제를 유지하고, 우리 국내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카메라는 곧바로 옆에 서 있던 20대 여성에게 향했다.
“그럼 지금 포기하자는 건가요? 이렇게 넘어가면 그 땅은 다시는 우리 땅이 아닙니다. 지금이 통일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데, 그걸 그냥 두자는 게 저는 더 위험하다고 봅니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시민들도 끼어들기 시작했다.
“통일은 이상이 아니라 생존 문제입니다. 북부가 외세 통제에 들어가면, 그다음은 바로 우리 차례예요.”
“생존이라뇨? 지금 당장 우리 살기도 버겁습니다. 통일하면 세금 폭탄부터 떨어질 텐데요.”
“세금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나라의 주권 문제입니다!”
“주권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먼저 살아야죠!”
짧은 거리 인터뷰는 금세 논쟁으로 번졌다. 카메라 밖에서 누군가는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라고 외쳤고, 다른 누군가는 “그 의무가 왜 지금 우리한테만 돌아와야 하냐”라고 맞받았다.
기자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이 분열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앞으로 국가가 마주할 정치적 파열음의 시작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방송을 보는 모든 이가 느끼고 있었다.
난민 수용소에서도 갈등이 벌어지고 있었다. 경기도 고양시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수용소. 남한 자원봉사자와 북한 주민들이 섞여 있는 곳에서 말다툼이 시작됐다.
“우리가 여기까지 내려온 이유가 뭡니까? 다시 북으로 올라가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북한 청년이 목소리를 높이자, 자원봉사자가 진정시키려 다가갔다.
“지금은 아직 상황이 불안정합니다. 북부 지역은 중국군이, 동부는 러시아군이 통제하고 있고…”
“그러니까 왜 그 사람들을 놔두냐고요! 남조선 군대가 올라가서 그 사람들을 몰아내야지, 왜 가만히 있습니까!”
옆에 앉아 있던 노인은 눈을 감은 채 작게 말했다.
“또 남의 나라들이 우리 땅을 정한다는 말 아닙니까… 우리는 언제쯤 우리 운명을 우리 손으로 정할 수 있습니까…”
체육관 전체가 조용해졌다. 공기 속에는 분노와 절망이 동시에 흘러가고 있었다.
국회 역시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회의장 안에서는 야당 의원이 단상을 치며 외쳤다.
“지금 정부는 중국과 러시아가 북부를 차지하는 걸 보고만 있겠다는 겁니까? 이러다가 우리 영토 절반이 사라집니다!”
이에 여당 의원이 맞받았다.
“무모한 군사 행동은 국민을 전쟁으로 내모는 것입니다! 통일은 중요하지만, 그 방식은 신중해야 합니다. 감정이 아닌 전략이 필요합니다!”
의장봉 소리가 여러 차례 울렸지만 고성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회의는 정회되었고, 언론에서는 ‘국론 분열’이라는 자막이 화면에 떠올랐다.
SNS에서는 밤새 해시태그가 바뀌었다.
#이번에통일해야한다
#우리경제가먼저다
#또다시외세의도구가되다
#북한포기하지마라
댓글에는 욕설과 눈물 이모티콘, 그리고 긴 글들이 뒤섞였다.
누군가는 ‘한반도 운명을 외부가 결정하게 내버려 뒀다’며 분노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통일을 위한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느냐’며 현실을 경고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상황실.
지도 위에는 새로운 군사 배치 선이 표시되어 있었다. 강원도 북부 방어선에서 화살표가 여러 방향으로 뻗어 있었고, 군 표식은 평안남도까지 올라가 있었다. 서지훈 국가안보실장이 보고를 시작했다.
“현재 중국군은 자강도에서 병력을 재배치 중입니다. 직접 충돌은 피하고 있으나, 사실상 행정권 행사와 치안 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은 함경북도에서 항구 재개발 명목의 공사를 시작했고요.”
합참의장 박태식이 무전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미 우리 작전 반경은 휴전선이 아니라 백두산 남쪽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예비군 동원이 계속되면, 군사력은 확보할 수 있으나 복구 임무와 방어 임무가 겹치면서 현장 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
최민우 외교장관은 깊은숨을 내쉬었다.
“미국 또한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핵확산 방지’를 내세우지만, 강원도 일대에 전략 거점을 사실상 고정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윤현우 대통령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이 상황에서 어느 쪽에도 기대서는 안 된다. 이제는 한국 스스로 방향을 정해야 한다.’
같은 시각, TV 화면에서는 국방부 정례 브리핑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백두산 마그마 활동은 현재 안정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추가 대규모 분화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다만 미세한 여진은 향후 수주 간 지속될 수 있습니다.”
브리핑이 끝나자 화면이 전환되며 앵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중국과 러시아가 ‘임시 행정구역 내 장기 주둔’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미국 역시 강원도 주둔군의 철수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TV를 바라보던 한 시민이 낮게 중얼거렸다.
“저러다가 그냥… 우리 땅인데, 우리 동의 없이 그대로 결정되는 거 아냐…?”
옆에 있던 북한 난민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전에도 그랬습니다. 우리 없이, 우리 땅이 남의 책상 위에 올라간 적이 많았지요.”
그 말은 누구도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 밤이 깊어갈수록 국론 분열은 단순한 의견 충돌이 아닌 ‘정체성의 갈등’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지금은 통일이냐 분할이냐를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왜 우리 세대만 모든 부담을 져야 합니까?”
“이대로 두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없습니다.”
“무리한 통일은 또 다른 전쟁을 부를 수 있습니다.”
화면 너머로 쏟아지는 목소리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숨을 골랐다. 한쪽에서는 결의를 다졌고, 다른 쪽에서는 두려움을 삼켰다. 도시는 멈춘 듯 조용했지만, 그 정적 아래에는 언제 폭발할지 모를 긴장이 서서히 쌓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