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사진작가와 함께하는 숲속 버섯 탐험
싱그러운 초록 내음과 기분 좋게 부서지는 햇살, 당신은 어느때처럼 숲길을 음미하며 걷고 있었는데, 정체모를 미지의 버섯이 눈앞에 등장했습니다.
영롱한 붉은빛을 뽐내는것이 아름답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죽음의 손길로 당신을 유혹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화려한 버섯은 독버섯이라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 버섯의 이름은 붉은달걀광대버섯. 고소한 맛이 일품인 고급식용버섯입니다.
길가다 정체모를 야생버섯을 만났을 때, 과감히 손을 내밀어 만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은 많이 없을 겁니다. 우리는 “야생버섯은 손 대지도 말고, 관심 갖지도 말라”는 어른들의 가르침을 받고 자라왔으니까요. 현명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야생버섯을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면, 그 위험한 존재를 집으로 가져와 요리 해먹을 일이 없을테니까요. 그리고 이 가르침은 곧, 우리 마음속에 버섯혐오증(mycophobia)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우리들은 그렇게 버섯을 보며, 어떤 이는 외면하고, 어떤 이는 공포를 느끼며, 어떤 이는 괘씸한 마음에 발로 차거나 짓이기기 까지 하죠. 버섯 또한 아름다운 꽃들, 지저귀는 새들 또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속에 반짝반짝 빛나는 모래알갱이들 처럼, 자연이 빚어낸 예술 작품중 하나인데 말입니다.
버섯혐오증 이라는 개념이 생긴 시기는 18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국의 균류학자 Willia Delisle Hay에 의해 만들어진 단어로, 버섯을 두려워하고, 혐오를 느끼며,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현상을 말합니다. 미국에서 사용되는 버섯혐오증의 예를 들자면, "우리중에 곰팡이같은 놈이 있다" 라는 말이 있는데, 학생들이 같은 반에 불량배가 있을 때 쓰는 얘기입니다.
또한, 버섯공포증은 최근에 생긴 현상이 아닙니다. 기원전 85년, 그리스의 의사 Nicander는 버섯을 "땅위에 발생하는 악마의 효모" 라고 표현하였고, 1200~1280년경 독일의 수사 Albertus Magnus는 버섯을 먹는 행위가 "즉각적인 광기"를 유발한다고 믿었습니다. 스웨덴의 위대한 분류학자 Carolus LInnaeus (1707-1778)는 버섯을 "거지" 라고 서술하였죠. 고대 힌두교 사람들은 버섯을 먹는 사람들을 최악의 죄인으로 생각했었고, 셜록홈즈의 저자 코난 도일은, '나이젤 경'이라는 그의 소설에서, 주홍색 버섯 밭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병든 지구가 더러운 여드름을 터뜨린 것만 같다." ..윽, 이건 마치 버섯혐오 웅변대회에서 1등 할 것만 같은 표현이네요.
이러한 생물학적 차별이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앞서 말했던 것처럼, 버섯은 관심 갖지도 말고, 손 대지도 말라고 선언 하는 것이 독버섯 중독사고를 예방하는 쉽고 빠른 길 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버섯이 좋아하는 먹이 중의 하나가 똥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버섯을 가까이 하기에 쉽지 않은 이유도 있겠죠. 그리고 마지막 추측으로는, 버섯이 좋아하는 어두침침하고 습한 환경, 그리고 무언가를 썩힐 때 나는 냄새들이 자아내는 오컬트적인 분위기도 있고요. (어떤이에겐 장점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섯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금지된(?) 사랑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저를 꼽을 수가 있겠네요. 제가 버섯에 빠지게 된 계기는 어느 날 우연히 버섯 도감을 보았을 때, 상상도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 색들과, 기상천외하고도 다양한 모습들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버섯 도감의 매 페이지를 넘기며 감탄사를 내질렀죠. “이.. 이런 것도 버섯이야?” 중요한 것은, 저는 식재료로서의 버섯이 아닌, 자연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써의 버섯에 빠져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를 통해서 시사하고 싶은 바는 바로 이겁니다. 어떤 버섯이라도 먹어야 된다는 강박감을 내려놓고, 그냥 꽃 한송이 보듯 감상하고 말자는 것이죠. 길가다 아름다운 꽃을 볼 때, 예쁘다는 말부터 나오지, 감히 먹을 생각도 들지 않을 뿐더러, 먹을 수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으니까요. 반면에, 야생버섯을 촬영하고 있다가 등산객들을 마주했을 때, 항상 듣는 질문은 “그거 먹을 수 있는 버섯 이에요?” 입니다. “그 아름다운 버섯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가 아니고요.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버섯만 보면 먹을 생각부터 합니다. 위험한 걸 알면서도 입에 넣을 생각부터 합니다. 목숨이 여러 개인 걸까요? 저도 목숨이 하나라서, 야생버섯을 시식할때는 굉장히 신중을 가하며 먹는 편인데 말입니다. 모르는 버섯을 먹는 다는 것은 마치 버섯으로 러시안룰렛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러시안 룰렛은 당첨자만 하늘로 보내버리겠지만, 버섯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한줌의 흙으로 돌려보내겠지만요.
세상 어느 생물 그룹이라던지 다 독은 있기 마련입니다. 동물도, 곤충도, 물고기도 맹독을 갖고 있는 놈들도 있고, 어여쁜 꽃들도 맹독을 갖고 있는 놈들도 있습니다. 애초에 감자도 잘못 다루면 솔라닌이라는 독이 생깁니다. 그렇게 보면 감자 또한 한낱 독성 식물일 뿐입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대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있죠.
버섯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독을 가진 개체의 비율이 다른 생물보다 더 많고, 쉽게 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즉, 아무거나 집어다가 입에 넣는 멍청한 짓만 안하면 두려워 할 것 이 없습니다. 물론 손으로 마음껏 만져도 상관 없습니다. (이론상 붉은사슴뿔버섯은 만져서도 안되는 맹독버섯이지만, 만날 일도 없을뿐더러 본인이 만져봐도 문제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버섯을 무조건 위험 하다고 손도대지 않게 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정보와 사용법을 숙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진취적인 시각으로 버섯을 바라본다면, 버섯은 더이상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때로는 귀여운 숲의 요정, 때로는 위대한 자연의 예술 작품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숲속 미술관을 걸으며 작품들을 찍어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정도 버섯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이른바 ‘고인물’이 되었을 때, 비로소 버섯 취미의 최종 컨텐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바로 발견한 버섯을 직접 요리하여 먹어보는 것이죠. 채집의 기쁨은 말할 것 도 없거니와, 어떤 식재료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식감과 풍미를 느껴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버섯은 삶은 계란 흰자같이 탱글탱글하며, 어떤 버섯은 납작한 쫀디기를 버터에 잘 구운 듯한 식감이 나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버섯은 탄 고무의 풍미와 함께 환상적인 식감을 선사해주기도 합니다. 요리를 하며, 이 버섯은 어떤 맛과 식감으로 날 즐겁게 해줄지 기대하는 것도 야생버섯을 요리하는 기쁨 중 하나이죠.
대부분의 자연과 함께하는 취미들처럼, 버섯과 함께하는 취미는 꽤 매력적입니다. 버섯을 좋아하게 되면 의외로 삶의 많은 부분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버섯을 좋아하게 된다면, 혐오했던 대상이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버섯은 보통 비가 온 뒤 등장하기 때문에, 그렇게 싫어 했던 비오는 날을 즐거워 할 수 있게 되죠. 그리고 어디서나 발견 할 수 있지만, 식물처럼 그 자리에 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보물찾기를 하는 듯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감에서나 보던, 보고싶던 아름다운 버섯을 실제로 발견 했을 때는 기분을 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버섯을 찾기위해 산을 오른다던지 숲을 트래킹 한다던지 저절로 운동이 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건전하고 아름다운 취미인지!
지금까지 버섯에 대해 아주 살짝만 얘기를 해보았습니다. ‘버섯이야기’라는 영화의 예고편만 본 수준이지요. 갑자기 버섯이 예뻐 보이거나, 호기심이 생기지 않나요? 앞으로 알려드릴 신기하고 재미있는 버섯이야기는 많이 준비 되어 있으니,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 (그리고 멋진 버섯사진들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