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구하겠다는 내 꿈은 몇 점인가
처음 세상을 구하겠다며 노동을 시작할 때는 1년씩 총 세 가지 노가다를 하며 3년을 보낼 생각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선행 사례로 삼은 『노동의 배신』의 작가, 바버라 애런라이크가 노동을 했던 기간이 3년이었기 때문이다. 선배 작가가 3년을 했는데 따라 하는 입장에서 그보다 적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 이상을 할 생각도 없었다.
나는 사회 초년생이기 때문이다.
원작가 바버라 애런라이크는 기자였다. 노동의 결과가 어떻든 다시 기자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렇기에 원작가에게 노동은 '사회적 실험'이었지만, 사회 초년생인 내게는 실험이 아닌 현실이다. 노동의 결과가 잘못되면 돌아갈 자리가 없다. 세상을 구하겠다는 나의 포부가 멋질지 몰라도 돌아갈 곳이 없다는 뜻은 그대로 노동 속에 갇혀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게다가 대학을 졸업한 내 나이가 서른이다.
안 그래도 서른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졸업했는데 노가다까지 하면 나이는 더 먹게 되리라는 건 정해진 미래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나이는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취업시장에서 이 문제는 더 두드러진다. 이왕이면 내가 부릴 부하직원은 나보단 나이가 적은 사람이 좋다. 괜히 나이 많은 부하직원한테 함부로 했다간 손가락질받을지도 모르는 게 이 사회의 규범이다. 그렇기에 노가다를 1년씩 총 3개를 하겠다는 건 나의 목표와 미래를 위해 꽤나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하지만 일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이 계획을 수정해야만 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런 거 아니었다. 그냥 힘들다. 도저히 이 미친 짓을 1년이나 할 자신이 없었다. 일을 시작할 때에는 어떤 힘든 일이든 참고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그냥 허세는 아니었다. 어릴 적 운동을 꽤나 많이 했기에 튼튼한 건 물론이고 감기 한번 걸리지 않는 놈이 바로 나이다. 실제로 주 100시간씩 일을 하면서 일을 마칠 때까지 몸살 한번 나지 않았다. 부장도 나 같은 놈은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였다.
하지만 도저히 버텨낼 수 없었던 게 바로 한겨울 추위였다.
내가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방송 무대의 철근 구조물을 세우는 일이다. 파주에 있는 창고에서 철근 자재를 싣고 방송국에 도착하여 무대를 세우고 무대가 끝나면 해체한 후 다시 파주에 있는 창고에다가 던져둔다. 그런데 회사가 취급하는 물건이 철근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화면상 선명한 무대 바닥을 연출하기 위해 바닥을 유리로 까는 경우가 있는데 선명함이 중요한 유리이다 보니 주기적으로 물로 세척을 해줘야 한다.
문제는 한겨울에 물로 닦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척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야외나 다름없는 파주에 있는 간이 건물 안에서 이루어졌다. 문을 닫아도 문 아래쪽으로 찬바람이 솔솔 불어 들어오는 그런 곳이다. 작업은 유리에 붙어 있는 시트지를 벗겨내면 되는 단순한 작업이다. 작업대 위에 유리를 올려두고 물을 뿌린 후 스크래퍼로 유리에 붙어 있는 시트지를 벗겨내면 된다. 문제는 모든 노가다가 그렇듯 해야 할 양이 너무 많다. 일을 할수록 체력이 빠지는 만큼 물을 더 많이 뿌린다. 물을 더 많이 뿌릴수록 시트지가 잘 벗겨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뿌려진 물이 흘러넘쳐 신발을 적신다.
간이 건물 안쪽엔 기름 냄새 풀풀 나는 난로가 있긴 했다. 문제는 그 난로 열기가 내가 서 있는 자리까지 오질 않는다는 거다. 애초에 젖은 발이 그 따뜻함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 쉬는 시간은 고작 몇 분, 잠깐 기대 쉬기에도 짧은 시간이었다. 대충 하고 집에 가고 싶어도 유리에 붙은 시트지를 다 벗겨야 끝나는 일이다. 저녁이 가까워질수록 기온은 더 떨어지고 몸은 더 굳어간다. 급기야 8개월도 힘들다고 칭얼거렸다.
그렇게 아침 10시에 시작한 작업은 저녁 9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너무 힘들었다. 상상 이상의 노동 강도를 경험한 내 육신이 이 일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8개월 차 직원에게 조용히 오늘 일의 강도를 1부터 10까지 중 몇이냐고 물어봤다. 이 질문은 내가 병원에서 수술 후 매일 아침에 들어야 했던 질문이다. 수술 후 환자가 1에서 10까지 말하는 숫자로 그날의 컨디션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질문을 받은 8개월 차는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 역시 작업 내내 힘들다고 칭얼거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 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음... 3 정도요?"
나는 고통을 굉장히 잘 참는 스타일이다. 군대에서도 장이 썩어갈 때조차 멀쩡해 보인다는 이유로 차량 후송을 거절당할 정도였다. 수술 직후에도 내 고통의 강도는 웬만하면 6을 넘지 않았다. 그런 나조차도 죽을 것처럼 힘들었는데... 게다가 자기도 힘들다고 칭얼거렸으면서 고작 3이라고 말하니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더 황당한 점은 이게 3이면 그 이상은 얼마나 힘들다는 거지? 문득 장마 기간에는 한 달 내내 비가 올 수도 있는데,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물어봤다.
"팬티만 입고 일해요."
충분히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었고 어떤 역경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팬티와 함께 잃어버릴 나의 존엄성을 생각하자니 도저히 이 미친 짓을 1년씩이나 할 자신이 없어졌다. 게다가 이 회사는 다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 각종 소송이 난무한다고 했다. 한술 더 떠 부장은 장난처럼 머리를 다친 사람 흉내를 냈으며 특유의 말버릇인 "정신머리 없는 놈"을 연발했다. 팬티만 입은 채 머리를 다쳐 바닥에 피 흘리며 쓰러진 내 모습이 그려졌다.
나는 아직 죽을 수가 없다.
바로 그때, 게임처럼 살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대학 때 썼던 글이 생각났다. 게임에서 우리는 언제나 세상을 구하니 게임처럼 살면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정신 나간 글이었다. 그런데 그 정신 나간 글이 공모전 수상을 하면서 시상식에서 세상 한번 구해보겠다고 말한 전설 같은 사건이다.
진짜 농담이 아니라 시상식에서 세상 한번 구해보겠다고 선언을 해버렸다.
단순히 노동의 비극을 기록하고 폭로하는 건 나의 방식이 아니다. 법을 논하는 순간 사람들은 거리감을 둔다. 그렇기에 내 글은 노동 현장의 비극을 폭로하는 게 아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노동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천대받는 이 노동을 통해 '누구나 선망하는 기업'에 들어갈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줄 것이다.
다시 말 하지만 내 글은 노동의 비극을 말하는게 아니다.
노동으로 누구나 인정받는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경로가 열린다면, 청년들은 나를 따라 노동을 선택할 것이다. 지금 그냥 '쉬었음' 청년이 40만을 넘고 도서관에서 문제만 푸는 취준생은 100만을 넘는다. 이들을 어떻게든 일을 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노동의 가치와 보상이 확실해진다면 청년들은 불안한 '스펙 쌓기' 대신 확실한 노동 현장으로 유입될 것이다. 이는 곧, 청년 취업난과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동시에 해결한다. 노동 현장이 곧 미래를 보장하는 가장 빠른 길임을 몸소 보여줄 때, 국가는 안정적인 인력을 확보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인력난과 취업난을 동시에 해결 할 수 있다.
일단 일을 하게 되어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자살률도 줄어들 것이다. 이 나라 10대, 20대, 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언제까지 이를 두고 볼 것인가? 청년들에게 노동을 통한 경제적 자립이라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열어주어야 한다. 희망이 없으니 출산율도 낮은 거다.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어야 비로소 다음 세대를 책임질 돈과 시간을 벌 수 있고, 출산율도 올라가는 거다. 노동의 가치를 증명하여 모든 청년이 안정된 삶을 누리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회를 근본부터 회복시키는 길이다.
말 그대로 세상을 구하는 거다.
그리하여 현실을 게임처럼 레벨업하듯 100일, 200일, 300일, 이런 식으로 100의 배수로 근무를 하며 누구나 선망하는 기업에 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노동으로 사회의 정점을 오르는 것, 나의 목표가 마침내 정해졌다. 제갈량의 천하 삼분지계를 들은 유비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나 너무 멋지다. 보이지 않았던 세상을 구하는 길이 보였다.
아무래도 나 전생에 제갈량이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