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와 인생의 변화
인생을 계절에 곧잘 비유한다.
태어나서 배우고 일하고 거두고 돌아간다.
물론 사람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인생(人生)을 사등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인생도 베토벤의 전원이나 차이코프스키의 비창과 같이 항상 좋지만도 항상 나쁘지만도 않다.
네개의 계절이 돌아가는 것처럼 사는 것도 때론 그렇지 않을까.
봄이면 자라나는 새싹들은 보살핌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에는 지지대를 세워주기도 한다. 가장 약할 때 어떤 보살핌을 받느냐에 따라서 거목이 되기도 많은 열매를 맺기도 하지만 그와 정 반대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토대를 갖추면 가장 활발하게 자라고 성장하는 여름이 온다. 가장 푸른 모습이 되기 위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가장 높이 넓게 펼쳐 오른다.
가을이 오면 그동안 일한 것들의 보상을, 결실을 거둔다. 봄과 여름에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서 다르지만 콩 한 알이라도 남기지 못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비 온 뒤 갑자기 자라는 버섯도 가을이 가장 향이 좋은 때라고 했다.
겨울이 오면 가을의 선물을 누린다. 그리고 곳간이 비기 시작하고 눈이 많이 내리게 되면 자기만의 종착역에 들어가야 한다.
계절이 변했다
옛날, 사실 80~90년대까지만 해도 계절은 큰 이변 없이, 이치에 어긋남 없이 잘 흘러왔다. 때가 되면 졸업하고 때가 되면 취업하고, 다시 때가 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고 다시 그 자녀가 그 길을 따라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가 못하다.
봄에 한창 피어나야 할 학생들은 어디선가 불어오는 황사바람을 피하려 어딘가에 꽁꽁 틀어박혀서 기계처럼 공부만 한다.
한 여름의 볕은 또 왜 그렇게 뜨거워졌는지, 한창 때의 청년들은 건강한 활동을 하기에 어려운 지나치게 뜨거운 날씨를 맞았다. 지엽적인 지식은 '상아탑의 전당'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이 더위가 언제 가실지 모를 정도로 매해가 될 때마다 더위의 화상과 습기의 무게는 활짝 펴야 할 가지를 축 늘어지게 만든다. 심지어 이런 여름의 더위는 날로 길어져 가을을 잡아먹고 있다.
봄과 여름에 누려야 할 충분한, 충만한 시간과 에너지를 얻지 못한 생명이 가을에 넉넉한 산물을 남기지 못하는 건 어쩌면 참 당연한 일이다. 가을 걷이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벌써 겨울을 염려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시절이다.
겨울이 찾아오면 비축했던 가을까지의 결실을 누려야 하는데, 추운 날씨에 외투를 입고 눈밭을 헤치고 음식을 찾는다. 굽은 허리와 어두워진 시력이 힘들지만 그것이 허기만 하랴. 야속하게도 심해진 여름의 더위를 보상받으려는 듯이 겨울도 한참이나 길어졌다.
백 년의 계절
팔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구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테니 재촉 말라해라
백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 이애란 노래 「백세 인생」중
한창 자라야 할 봄에 먼지바람을 마시고 산다.
한창 뜨겁게 펼쳐야 할 여름에 타들어간다.
한창 수확해야 할 가을이 짧아졌다.
한창 누려야 할 겨울에 다시 일터로 간다.
장수를 다짐하는 「백세 인생」이라는 노래 가사가 참으로 무색하다.
야속하게도 우리나라의 변해가는 사계와 우리 인생의 사계의 흘러가는 모양새가 비슷하다.
화창하고 생기 넘치는 봄이 탁해졌고
청년들의 여름이 불가마가 되었다.
한창 수확해야 하는 시간은 줄어들었고,
70, 80에 다시 일터로 가야 한다.
기후변화로 계절은 계속 괴로운 시절을 늘리게 될 것이다.
이상하게, 신기하게 닮은 두 계절이 계속 비슷해지면 우리네 삶은 얼마나 더 탁해질까.
우리 계절의 겨울은 얼마나 더 길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