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결혼식 참석차 미국 유학 1년 만에 귀국한 친구 A를 만나러 인천공항엘 다녀왔다.
B와 함께 만난 A와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헤어졌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언제나 그렇듯 각자 주위의 호감과 애정 사이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담백(??)한 이야기들.
맞장구도 쳐보고 핀잔과 웃긴 비난도 주고받으면서 길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1년 만이었지만 부재가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었다.
본가가 지방이라 늦게까지 있지 못하고 버스를 타는 A의 뒷모습에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공항 주차장으로 들어가면서 B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도 공항까지 마중 나와서 봐야 하는 친구가 아직 남아있구나. 다행이야."
"이렇게까지 챙길 수 있는 친구가 이제 몇이나 남았을까."
친구 B는 옆자리에 앉아 몇 해 전 결혼했지만 근래 좋지 못한 소식이 있는 C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전에도 들었지만 이제는 모든 게 정리가 된 이야기를 들으며 C에 대해 B보다 덜 우호적인(사실 더 비판적인) 나를 발견했다. (지나친 비판을 하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C를 만나 그간의 일을 듣고 위로와 격려를 해준 B의 전언에 내가 너무 지나치게 날카로웠던 걸까.
아직도 같은 동네에서 지내는 B를 내려주고 나서도 C에 대한 나의 태도를 곱씹어 봤다.
'좀 지나친 것 같아도 친구라고, 아는 사람이라고 무조건 편을 드는 게 좋지만은 않잖아...'
아...
같은 무리에서 지낼 때도 C와는 그렇게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다.
핀잔은 주고받았어도 맞장구 칠일은 서로 간에 별로 없었다.
지속적인 연락을 할 만한 이유를 서로 알지 못했다. 당연히 멀어졌다.
B가 '친구'로 생각하는 C는 내게 '아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시간이 맞아 떨어지지 않아도, 넉넉하지 않아도 A를 보겠노라고 공항까지 마중가는 마음과
내밀한 이야기지만 친구를 통해 전해 들은 C에 대한 마음은 실로 같지 않았다.
A의 지나치게 솔직하고 재미있는 애정사에 보내는 애도와
C의 안타까운 일에 보내는 애도는 안타깝게도, 미안하게도 같을 수가 없었다.
C를 타자화 시키기 쉬운 것도 이제는 그가 친구라기 보다는 아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솔직한 마음으로 일주일간 한국에 머무는 A를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C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크다.
(물론 A에 대해서도 너무 안타까워 안달이 날 지경은 전혀 아니다. 우린 이제 어쩔 수 없는 30대니까)
30보다 많은 나이의 분들이 보기에는 웃기는 애송이의 소리일지 모르나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를 만들기 어려워지고 있다.
오히려 비극에도 쉽게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는 아는 사람이 늘어날 뿐이다.
아는 사람이 가짜는 아니지만
때론 아는 사람들에게 가짜 위로나 가짜 격려, 가짜 칭찬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가식적인 내 모습에 진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경우도 거의 없다.
(차라리 솔직한 비판을 던지고 만다.)
사실 나라는 인간은 누구라도 쉽게 타자화하거나 이분화시키는 (쓸데없는) 태도를 견지한다.
타자화란 우호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고
이분화는 개인적 친분관계 & 객관적인 상태를 나눠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
아직까지 내 곁에 남아있는 친구들이 갑자기 고맙다. 감사하다. 사랑하는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