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묻다

장례는 망자의 남은 삶 만큼이나 무겁다.

by 뿡빵삥뽕




중1 여학생이 세상을 떠났다.




소아암 환자였던 그 아이는 마지막 일주일간 폐로 전이된 암 때문에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지내야 했다.




나이 든 노인이 말기암이면 병원과 가족은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라고,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으라고,

가고 싶은 데 마음껏 다니라고 퇴원이라도 시켜주련만


고작 열두 해 보낸 아이의 남은 삶이 아까워 부모와 병원은 마지막까지 희망도 놓지 못하고 병원에서 지새웠다.




엄마가 아이를 꼭 껴안은 모습은 결코 아이를 떠나보내지 않으리라 부여잡는 듯 했다.

아빠는 벽에 얼굴을 묻었다.

어리고 어여쁜 조카의 임종예배를 인도해야 하는 목사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말도 잇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을 한다.


나보다 어린 사람의 장례를 자주 다니진 않았지만,

그리고 그런 장례가 자주 있으면 안되지만



참지 못한 오열을 터뜨리는 부모의 모습에서

죽은 자식은 가슴에 묻을 수도 없는 그런 아픔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부모의 가슴이 삼일을 이기지 못한다 해서 아이의 장례는 이틀을 한다고 했다.








장례는 망자의 남은 삶 만큼이나 무겁다.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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